'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당신의 야마모토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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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히는 직장생활에 지친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PD저널=신지혜 시네마토커(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아직 인생이 창창한 다카시. 하지만 그는 번아웃 상태다. 고향의 부모님은 철마다 식재료를 보내주지만 눈길 한 번, 손길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식재료들은 방안에서 썩어가고 있다. 출근해서 퇴근까지 정신없이 허겁지겁 지내다가 집으로 돌아온 다카시는 쓰러져 잠들기 일쑤다.

취업하기 어려운 시대, 별 생각 없이 지원한 곳에서 연락이 오고 별 생각 없이 출근하게 된 다카시는 그렇게 영업사원이 되었다. 빽빽하게 책상이 들어선 넓지 않은 사무실, 오직 실적으로 직원들을 평가하며 경직된 분위기를 조성하는 부장, 입 한 번 벙긋하지 않은 채 고개를 떨구고 시선을 자기 책상 위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는 직원들…. 그 틈에서 다카시는 점점 정신을 잃어간다.

▲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스틸컷.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초등학교 동창인 야마모토가 ‘짠’하고 나타난다. 정신을 잃고 선로에 떨어질 뻔한 그를 구해준 야마모토는 싱글벙글한 얼굴에 하와이안 셔츠, 편하디 편한 반바지 차림으로 다카시의 일상에 끼어드는데 그의 미소와 명랑 쾌활한 태도가 점점 다카시의 일상을 물들여간다.

그렇게 다카시가 안정을 되찾아갈 즈음 문득 알게 된 사실. 야마모토가 이미 3년 전에 죽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과연, 야마모토는 누구이고 그는 왜 다카시의 삶에 끼어든 것일까.

제목이 마음을 확 치고 들어온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별 일 아니라는 듯 손을 살짝 들어 할 말이 있음을 알린 후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라고 말하는 얼굴이 눈앞에 그려지니 말이다.

키타가와 에미의 소설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는 2014년 작가 데뷔와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일본의 직장인들을 울리며 화제를 모았다. 작가 역시 평범한 취업준비생이었지만 개인을 희생하고 개인의 삶을 앗아가는 기업문화에 회의감을 가지고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하는데 작가의 감정과 경험이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리라.

또한 감독은 소설을 읽고 과거를 떠올리며 마음 아파했다는데, 가장 친한 친구 2명이 소설 속 주인공과 비슷한 상태에서 스스로 목숨을 잃고 만 것이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친구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남아있던 차에 이 소설을 접하게 된 감독은 삶에 지친 회사원들에게 이 영화가 야마모토와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연출 의도를 전하기도 했다.

걷잡을 수 없이 달려가는 21세기의 시간은 주위의 풍경을 돌아볼 겨를조차 주지 않는다. 속도가 높아지니 시야가 좁아지고 충전이니 완급이니 하는 것조차 생각하지 못할 만큼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다카시의 일상에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뭐가 이렇게 바쁜 걸까. 어째서 이렇게 정신없는 걸까. 왜 유독 이 시대는 회사원들에게 가혹할까. 하긴, 회사원 뿐이랴. 소설 속에서 영화 속에서 ‘다카시’로 대변되는 이들은 우리 모두이니….

만약 이 영화가 숨 막히는 직장생활, 정신없이 달려가는 현대사회, 쪼개고 또 쪼개어 쓰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놓았다면 별 볼 일 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작은 숨구멍이 되는 것은 제목이 주는 통쾌함과 짜릿함 때문만은 아니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은 ‘야마모토’이다.

▲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스틸컷

영화를 보면서 점점 밝은 표정이 되어가고 삶의 활력을 조금씩 찾아가며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는 다카시를 보면서 나도 야마모토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생각한다. 어딘가 수상한 야마모토이지만 그래도 저렇게 순수함과 진실함으로 신선한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라면 괜찮지 않겠어, 하고 말이다.

영화의 후반부로 가면서 야마모토는 3년 전에 세상에 둘도 없는 쌍둥이 형을 잃었으며 그 형이 탈출구 없는 영업사원의 생활을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잃게 된 것에 충격을 받았고 그 때 형의 표정과 같은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다가 선로 쪽으로 다가가던 다카시를 그냥 놓아버릴 수 없어서 그를 구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어쩌면 진부한 클리셰처럼 느껴지는 부분이지만 바로 그 점이 작은 희망을 던져주기도 하는데 누군가의 작은 친절이,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고 삶의 활력을 줄 수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메시지를 전해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일종의 판타지다. 원작 소설과 다른 결말이어서 소설에 열광했던 사람들이나 조금 더 현실적인 결말로 해결책을 제시해주기를 바랐던 관객들에게는 조금은 뜬구름 잡는 식이거나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마지막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숨통을 트여준다. 조금은 이상적이어도 좋지 않은가. 조금은 뜬구름 같아도 좋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우리는 어디에서 숨을 돌리고 고를 수 있을까 말이다.

영화가 끝나고 “마음이 있기에 누구도 혼자가 아니‘라는 주제가가 흐를 때 작은 위안을 받게 되는 것은 아마도 이 영화가 전해주는 가볍지만 따스한 공기 때문일 것이다.

신지혜 (시네마토커.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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