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 촬영, 다른 세상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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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수중 촬영 실습을 마치고

우리나라 어디에서 출발해도 가장 먼 곳이 어디일까.

작가 김연수는 소설 <7번국도>에서 평해가 바로 그곳이라 했다.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지도를 보면 KTX도 비행기도 닿지 않는, 서울에서도 부산에서도 대구에서도 먼, 참 절묘한 위치. 어디에서도 가장 먼 곳, 그곳에서 PD들을 위한 수중촬영 교육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난 마치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보내온 초대장을 받은 느낌이었다. 이런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장소가 사람을 부른다고 하던가.

“옛날에는 붉고 큰 게가 잡히면 흉측 하게 생겼다고 망치로 다 깨버렸어. 그게 요즘 그 비싼 대게야 대게! 지금은 영덕대게냐 울진대게냐를 놓고 이름 싸움도 벌이지만 말이야.”

“여기가 울진군 후포읍 거일리인데, ‘거일’은 ‘게 알’에서 왔지. 그만큼 게가 많았던 거야. 이 동네가.”

“후포리, 몰라? 후포리! <백년손님>에 나왔던 그 후포리! 남서방! (...) 어? 백년손님 모르면 우리나라 국민 아닌데??”

꺽쇠처럼 탁탁 꺾이는 특유의 억양으로 운전하는 내내 동네 이력을 읊어대던, 이 열정 넘치는 사나이는 후포리 이장님이 아니고 이번 교육의 책임강사인 울진TV 김영규 PD였다.

▲ 수중촬영 단체 사진. ⓒ문동현 PD

<PD들을 위한 디지털(VR) 수중촬영 실습>이 한국PD교육원 주관으로 지난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4박 5일간 경상북도 울진에서 열렸다.

첫날은 오리엔테이션, 조 편성 및 스쿠버다이빙 기초 이론 및 안전교육을 시작으로 수중 교육이 시작됐다. 강사 세 분이 각 조별로 맡았는데, 여자회원은 여자 강사분이 맡았고, 남자 회원들은 내가 속한 왕초보반과 숙련자반으로 나뉘었다. 5M Pool에서 스쿠버다이빙 교육과 함께 VR을 비롯한 여러 장비로 수중촬영 실습을 했고, 날씨가 안 좋아 멀리 나가지는 못했지만 4일차에 포구 앞 바다에서 개방수역(Open water) 실습을 했다.

수중촬영 제작활용사례 발표에서 박성웅 PD(EBS)는 PD가 수중촬영작업을 함께 하면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고 했다.

첫째, 촬영팀과 함께 현장(수중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소통하며 진행할 수 있다.

둘째, 촬영자의 안전에 관한 사항들을 지원, 분담할 수 있다. 수중에서 기압 점검, 시간 점검, LINE과 장비 점검 등은 촬영팀의 안전과 직결된다.

셋째, 보조촬영자로서 주변 답사, 주변 풍광과 Making 촬영, Still(정사진) 촬영 등 한정된 시간 안에 더 다양한 촬영 내용을 확보할 수 있다.

▲ 수중촬영 실습 장면. ⓒ문동현 PD

20년 전에도 바다에 꼭 들어가 보라고 권하던 선배가 있었다. 자연다큐를 만들던 그 선배는 유독 바다를 좋아해서 끝내는 <한국의 고래를 찾아서>란 다큐를 만들었다. 보이지도 않는 고래를 찾아 한 컷도 못 찍고 헤맸고, 배 빌리는 삯이 엄청 비쌌고(제작비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단다.), 배 위에서 며칠씩 밥인가 라면인가를 해먹는 게 고역이었다는 얘기가 기억난다. 그런데 내 눈에는 그 얘기를 하는 새카맣게 탄 선배의 얼굴이 행복해 보였던 거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 말 하나는 또렷이 기억이 난다.

“바다에 들어가 보면, 다른 세상이 보일 거야.”

백령도에서 가마우지와 물범을 찍을 때, <조간대의 비밀>이란 자연다큐를 찍으며 남해와 서해, 제주 바닷가를 돌아다닐 때, 그 후로도 갯벌 생태나 해파리를 찍을 때 수중촬영을 몇 번 한 적이 있다. 물론 나는 촬영팀이 물속에 들어가고 나면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현장에서 모니터로 연결해 얕은 물속을 보기도 했지만 대개는 나중에 편집실에서 봤다. 내게 바다 속은 늘 모니터 안에 있었고, 어쩌면 나는 모니터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는 게 더 편해진 것도 같았다. 그 선배가 보라고 한 ‘다른 세상’은 이런 건 아니었을 텐데...

‘극장에 들어가면 특유의 공기 밀도가 느껴진다.’고 윤태호 작가는 말했다. 나도 그 느낌을 안다. 웅~ 하고 누르는 공기의 압박. 비록 공기통 열두 개 밖에 안 써본 왕초보지만 물속도 비슷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내 몸으로 느껴 봤으니까.

모니터로만 보던 바다 밑바닥을 코가 닿을 듯 가까이 보는 기분, 손끝으로 비벼보는 기분, 고막이 직접 울리는 기분, 차가운 물의 감촉, 우주 공간처럼 붕 뜬 몸의 감각들.. 이런 건 모니터로는 느낄 수 없는 세상이었다.

그래서일까? 전 세계 어디서나 물에 함께 들어간 동료를 ‘버디(BUDDY)’라고 부른단다. 발 딛고 선 땅과는 다른 낯선 중력과 밀도의 감각, 묘한 긴장감이 압박해오는 공간 탓일까?

서울, 부산, 제주, 창원 등등 어디서도 먼 곳에서 모여 울진에서 4박 5일을 함께 한 나의 ‘버디’들은 다시 ‘바다 벙개’를 도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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