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8.9.24 월 15:00

수중 촬영, 다른 세상과의 만남

디지털 수중 촬영 실습을 마치고 문동현 EBS PDl승인2017.11.13 16:48:24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우리나라 어디에서 출발해도 가장 먼 곳이 어디일까.

작가 김연수는 소설 <7번국도>에서 평해가 바로 그곳이라 했다.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지도를 보면 KTX도 비행기도 닿지 않는, 서울에서도 부산에서도 대구에서도 먼, 참 절묘한 위치. 어디에서도 가장 먼 곳, 그곳에서 PD들을 위한 수중촬영 교육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난 마치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보내온 초대장을 받은 느낌이었다. 이런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장소가 사람을 부른다고 하던가.

“옛날에는 붉고 큰 게가 잡히면 흉측 하게 생겼다고 망치로 다 깨버렸어. 그게 요즘 그 비싼 대게야 대게! 지금은 영덕대게냐 울진대게냐를 놓고 이름 싸움도 벌이지만 말이야.”

“여기가 울진군 후포읍 거일리인데, ‘거일’은 ‘게 알’에서 왔지. 그만큼 게가 많았던 거야. 이 동네가.”

“후포리, 몰라? 후포리! <백년손님>에 나왔던 그 후포리! 남서방! (...) 어? 백년손님 모르면 우리나라 국민 아닌데??”

꺽쇠처럼 탁탁 꺾이는 특유의 억양으로 운전하는 내내 동네 이력을 읊어대던, 이 열정 넘치는 사나이는 후포리 이장님이 아니고 이번 교육의 책임강사인 울진TV 김영규 PD였다.

▲ 수중촬영 단체 사진. ⓒ문동현 PD

<PD들을 위한 디지털(VR) 수중촬영 실습>이 한국PD교육원 주관으로 지난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4박 5일간 경상북도 울진에서 열렸다.

첫날은 오리엔테이션, 조 편성 및 스쿠버다이빙 기초 이론 및 안전교육을 시작으로 수중 교육이 시작됐다. 강사 세 분이 각 조별로 맡았는데, 여자회원은 여자 강사분이 맡았고, 남자 회원들은 내가 속한 왕초보반과 숙련자반으로 나뉘었다. 5M Pool에서 스쿠버다이빙 교육과 함께 VR을 비롯한 여러 장비로 수중촬영 실습을 했고, 날씨가 안 좋아 멀리 나가지는 못했지만 4일차에 포구 앞 바다에서 개방수역(Open water) 실습을 했다.

수중촬영 제작활용사례 발표에서 박성웅 PD(EBS)는 PD가 수중촬영작업을 함께 하면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고 했다.

첫째, 촬영팀과 함께 현장(수중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소통하며 진행할 수 있다.

둘째, 촬영자의 안전에 관한 사항들을 지원, 분담할 수 있다. 수중에서 기압 점검, 시간 점검, LINE과 장비 점검 등은 촬영팀의 안전과 직결된다.

셋째, 보조촬영자로서 주변 답사, 주변 풍광과 Making 촬영, Still(정사진) 촬영 등 한정된 시간 안에 더 다양한 촬영 내용을 확보할 수 있다.

▲ 수중촬영 실습 장면. ⓒ문동현 PD

20년 전에도 바다에 꼭 들어가 보라고 권하던 선배가 있었다. 자연다큐를 만들던 그 선배는 유독 바다를 좋아해서 끝내는 <한국의 고래를 찾아서>란 다큐를 만들었다. 보이지도 않는 고래를 찾아 한 컷도 못 찍고 헤맸고, 배 빌리는 삯이 엄청 비쌌고(제작비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단다.), 배 위에서 며칠씩 밥인가 라면인가를 해먹는 게 고역이었다는 얘기가 기억난다. 그런데 내 눈에는 그 얘기를 하는 새카맣게 탄 선배의 얼굴이 행복해 보였던 거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 말 하나는 또렷이 기억이 난다.

“바다에 들어가 보면, 다른 세상이 보일 거야.”

백령도에서 가마우지와 물범을 찍을 때, <조간대의 비밀>이란 자연다큐를 찍으며 남해와 서해, 제주 바닷가를 돌아다닐 때, 그 후로도 갯벌 생태나 해파리를 찍을 때 수중촬영을 몇 번 한 적이 있다. 물론 나는 촬영팀이 물속에 들어가고 나면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현장에서 모니터로 연결해 얕은 물속을 보기도 했지만 대개는 나중에 편집실에서 봤다. 내게 바다 속은 늘 모니터 안에 있었고, 어쩌면 나는 모니터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는 게 더 편해진 것도 같았다. 그 선배가 보라고 한 ‘다른 세상’은 이런 건 아니었을 텐데...

‘극장에 들어가면 특유의 공기 밀도가 느껴진다.’고 윤태호 작가는 말했다. 나도 그 느낌을 안다. 웅~ 하고 누르는 공기의 압박. 비록 공기통 열두 개 밖에 안 써본 왕초보지만 물속도 비슷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내 몸으로 느껴 봤으니까.

모니터로만 보던 바다 밑바닥을 코가 닿을 듯 가까이 보는 기분, 손끝으로 비벼보는 기분, 고막이 직접 울리는 기분, 차가운 물의 감촉, 우주 공간처럼 붕 뜬 몸의 감각들.. 이런 건 모니터로는 느낄 수 없는 세상이었다.

그래서일까? 전 세계 어디서나 물에 함께 들어간 동료를 ‘버디(BUDDY)’라고 부른단다. 발 딛고 선 땅과는 다른 낯선 중력과 밀도의 감각, 묘한 긴장감이 압박해오는 공간 탓일까?

서울, 부산, 제주, 창원 등등 어디서도 먼 곳에서 모여 울진에서 4박 5일을 함께 한 나의 ‘버디’들은 다시 ‘바다 벙개’를 도모하고 있다.

 


문동현 EBS PD  webmaster@pdjournal.com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여백
여백
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158-715] 서울 양천구 목동 923-5번지 한국방송회관 10층l대표전화 : 02-3219-5613~5619l구독문의 : 02-3219-5618l팩스 : 02-2643-6416
등록번호: 서울, 아00331l등록일: 2007년 3월 5일l발행인: 류지열l편집인: 이은미l청소년보호책임자: 류지열
PD저널 편집국 : 02-3219-5613l광고 문의(PD연합회 사무국 · 광고국) : 02-3219-5611~2l사업제등록번호 : 117-82-60995l대표자 : 류지열
Copyright © 2018 피디저널(PD저널).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d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