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규찬 in 타르투⑪] 지역MBC, 내버려 둘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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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한예종 방송영상과 교수)] 서울 MBC의 변화 움직임이 빠르다. 이사장과 사장이 퇴출되니 그 아래 사람들도 줄줄이 떠난다. 허둥지둥 임시직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기득권에 빌붙어 능력에 맞지 않은 영화 잠시 누리던 자들. 권력에 빌붙어 안녕을 바라던 허무맹랑한 것들, 무능한 군상. 사필귀정이다.

그렇게 저들이 허겁지겁 쫓겨나는 한편, 말도 되지 않은 엉터리 한직에 유배되어 있던 능력 있는 언론인, 실력 갖춘 방송인들이 속속 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자신의 전직으로 명예롭게 귀환하고 있다. 감동적인 순간, 아름다운 풍경은 이때 딱 어울리는 표현일 테다. 아무튼 서울 MBC는 아주 희망적이다.

그렇지만, 이런 희망적인 동향에 도취해, 샴페인마저 일찍 뻥 터뜨려버리는 우는 절대로 저지르지 말기를. MBC,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풀어야 할 것들이 수두룩하다. 절망적인 구악들이 도처에 산적해 있다.

어둠의 지역이 특히 그러하다. 희망을 만들어내며 파업을 접은 서울과 달리, ‘희망을 만들어 낼 때까지는 결코 파업을 접을 수 없다’고 결의한 지역 MBC 노동자들이 남아 있다. 그들에게 희망은 운동의 목표이지 현실의 인식이 절대 될 수 없다. 희망은 현재의 것이 결코 아니다.

어떤 해결책도 찾지 못한 채 절망적 상황 타개를 위해 성실히 기동 중인 그들 앞에 샴페인은 흉물. 힘든 싸움 이어가는 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지역 MBC 독립. 참으로 오래된 명제다. 너무나 당연한 과제다. 그럼에도 서울사람들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한 주제다.

결국 지금까지 별반 싸움의 무게가 실린 적이 없는, 그래서 늘 지거나 흐지부지되어 왔던 토픽으로 전락했다. 그 지겨운 문제를 다시 끌어내 이번에는 반드시 희망을 이뤄내겠다 일떠선 사람들이 남았는데, 그들 앞에서 우리는 최소한 동지의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는가?

▲ 전국 17개 지부 지역MBC 구성원들이 지난 2월 28일 '낙하산 지역사 사장' 선임구조를 규탄하며 신임 사장 선임을 거부하고 있다. ⓒ언론노조 MBC본부

지역 MBC의 싸움은 늘 이중의 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공영방송 MBC를 침탈하는 부당한 외부 권력 및 부정한 내부 권력과 맞붙는 첫 번째 싸움에 덧붙여, 지역의 문제를 뒷전으로 미루는 서울중심주의의 구조화된 냉대와 지역의 화두를 낮춰보는 수도패권주의의 정치적 무의식에 맞서는 두 번째 싸움을 함께 벌여야 한다.

첫 번째 싸움은 서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기에 외롭지 않지만, 두 번째 것은 지역 사람들로부터도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이기에 너무나 힘든 싸움이 된다.

사실, 첫 번째 싸움은 시민사회나 정치권이 합세해 주니 그래도 이길 가능성이 좀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싸움은 운동진영으로부터도 전혀 도움 받지 못한 채 오히려 운동장에서 소외되다보니 질 공산이 훨씬 크다. 10년에 걸친 지역방송과 지역MBC의 싸움이 늘 그랬다.

외부 부정한 권력에 대항하는 서울에서의 싸움이 끝나면 앞서 투쟁하던 지역 노동자들만 딸랑 남겨진다. 서울 중심 수직적 권력에 의한 지배종속의 구조를 떨어내려는 지역 방송 구성원들의 결기는 계속해 미디어운동장에서 외면 받는다. 버려지는 카드.

사실, 한국에서는 지역 그 자체가 박탈감의 지대다. 놀라운 소외, 배제, 단절의 대지다. 한국에서 서울을 빼면 생기는 공백, 그게 바로 지역의 실상이다. 요즘 유행하는 소위 ‘비장소성(Placelessness)’이라는 표현은 사회는커녕 공동체로서도 존치하기 불가능해진 서울 바깥 지역에 제격이다.

허무와 냉소의 공간, 분노와 좌절의 장소로 전락한 지역. 서울의 가진 것들에 대한 지역민들의 슬픔과 분노, 유감과 적대는 지극히 당연하다. 그들의 수구적 보수주의는 서울중심 모순 체제에 대한 불만의식의 반동적 표출일 뿐이다.

그 핵심 모순을 풀어내는 파업이 계속 중인 것이다. 지역사회를 살리고 지역 공동체를 일으키며 지역 문화를 되살리는 파업. 그래야만 한국사회 전체가 제대로 정상화되고, 한국사회가 진정으로 평화로워질 수 있음을 잘 아는 파업 대오. 촛불은 풀뿌리에서, 변방에서, 지역에서 완결될 때 그 혁명적 사명을 다한다. 그 전에는 영원한 미완성이다.

지역 MBC 노동자들은 이 혁명의식으로 똘똘 뭉친 파업대오다. 지역 MBC의 독립과 해방을 성취하기 위한 노동중단. 서울 종속의 고리, 서울 식민의 구조를 분쇄하는 파업은 아직 끝을 모른다.

그들은 ‘우리’에게 묻는다. 어떻게 할 것인가. 지역 방송 해방, 지역 언론 정상화, 지역 MBC 독립의 중대사를 과거처럼 이번에도 남 일처럼 떠맡기고 돌아설 건가.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서울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너희는 이제 너희가 처한 지역 문제에 집중해 계속 싸우는 게 맞다’는 지극히 상투적이고 이기적이며 무책임한 논리를 반복하며 빠질 것인가. 선심 쓰듯 지켜봐 줄 텐가. 그러면, 서울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 너머 컴컴한 운동장 변두리의 우리는 따로 모여 외치고 싸우고 버텨 결국 스스로 이겨내고 말 것인가.

이제 그런 배신의 놀음은 그만 두자. 권력의 방자한 짓거리는 삼가자. 지역의 동무들에 대한 무관심은 그 자체로 하나의 폭력임을 대놓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의 일에 몰두하다 가끔 방문하거나 눈길 돌려 겸연쩍게 내뱉는 ‘끝까지 함께 하겠다, 투쟁!’ 구호조차 서울사람들이 상투적으로 던지는 기만적 구호임을 부끄럽게 실토해야 한다. 또 다른 권력의 행사, 권력의 또 다른 행사에 불과하다. 영혼 없는 말풍선. 신체의 움직임 없는 영혼의 구두선 따위는 차라리 현실 변화를 가로막는 패악이 될 뿐이다.

촛불은 우리 내부 적폐구조의 철저한 청산을 지시했다. 서울지배, 서울주도, 서울종속의 모순 혁파를 명령했다. 지역해방, 지역독립, 지역분권. 서울에 쏠린 외눈박이 체제를 청산하지 않는 적폐청산의 구호는 허망한 껍데기일 뿐. 지역의 멸망을 방조하고 지역의 공동화에 공모하면서, 입으로는 권력을 비판하고 권력을 거부한다는 주장 또한 궤변일 따름이다. 이 이중성을 인정하고 또 극복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내부의 권력관계, 주중관계, 식민관계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적극적 시정의 노력을 회피하는 건 촛불에의 명백한 배신행위가 된다.

지역 MBC의 싸움을 지역사람들의 싸움으로 치부하고 만다면, 우리는 결국 패배하고 만다. 공멸로 이어진다. 지역에 똬리 튼 반동주의는 창궐해 결국 서울에 안주한 우리를 가격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주의의 무서운 복수. 그런 미래를 원치 않는다면, 지역에 새로운 사회와 공동체, 문화가 가능토록 하는 과제를 책임지는 것만이 정답이다. 지역 MBC 독립의 파업대오와 끝까지 함께 하는 게 해답이다.

이번에 실패하면, 단언컨대, 두 번 다시 그들의 부활 기회는 없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식민지 맹주로서 안녕히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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