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해직자들, 웃음과 눈물 속 2000일만에 첫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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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2012년 파업 과정서 해직된 5명 노란손수건으로 맞이한 동료들

▲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의 2012년 파업 과정에서 해직된 MBC 언론인 5명이 11일 모두 복직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의 2012년 파업 과정에서 해직된 MBC 언론인 5명이 11일 모두 복직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PD저널=이미나 기자] 이른 아침부터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주변에는 노란 손수건들이 펄럭이고 있었다. 특별한 손님을 위해서만 준비된다는 레드카펫도 깔렸다. 레드카펫 양쪽에는 노란 손수건을 목에, 손에 두른 사람들이 늘어섰다.

12월 11일, 지난 2012년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아래 MBC본부)의 파업 과정에서 해직된 언론인 5명(강지웅, 박성제, 박성호, 이용마, 정영하)이 약 2000일 만에 복직했다. 이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연신 박수 소리와 환호성이 일었다. 약 600명의 MBC 구성원들과 지난 7일 선임된 최승호 사장도 해직언론인들의 첫 출근길에 함께 했다. 

11일 오전 8시 30분께 MBC에 도착한 5명의 해직 언론인은 후배들로부터 꽃다발과 출입증을 건네받고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소감을 말하는 순서에서도 MBC 구성원들의 환영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한편 시청자의 신뢰를 잃은 MBC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힘을 보태겠다는 다짐도 분명히 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의 2012년 파업 과정에서 해직된 MBC 언론인 5명이 11일 모두 복직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박성제 기자는 "많은 분들이 환영해 주셔서 기쁘고 행복하면서도 '지금부터 MBC가 제대로 하겠지'라며 지켜보실 분들이 많아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라며 "오늘 하루만은 모든 걸 다 잊고 돌아왔다는 행복함을 느끼고, 내일부터 MBC의 재건을 위해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박성호 기자도 "우리를 응원하고 지지해준 시민 여러분들이 제 뒤에서 (이 자리에) 함께 들어온 것 같다"며 "앞으로 우리가 받은 관심과 응원을 돌려 드리고자 한다"고 각오를 밝혔다.

그간의 마음고생이 느껴지는 발언도 있었다. 정영하 전 MBC본부장은 "다 잘 될 거라고는 말했지만 겁도 났다. 걱정도 많이 했지만 내색하기 힘들었다"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눈물을 글썽이는 정 전 MBC본부장의 모습을 보며 MBC구성원들 몇몇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복막암으로 투병 중인 이용마 기자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였지만, 여느 때보다 환한 미소로 구성원들 사이에서 등장했다. "해고된 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오늘이 올 것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복직이) 현실이 되고 보니 정말 다시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꾸는 것 같다"며 입을 연 이 기자는 약 7분간 힘찬 목소리로 언론의 역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2012년 우리는 170일 동안 파업을 했습니다. 그때 기성언론, 주류언론은 우리 문제를 어떻게 다뤘습니까. 철저히 무시했습니다. 파업 100일이 지나도 MBC가 파업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분들이 당시 상당수였습니다. 당시 우리의 비통하고 억울한 심정을 하소연할 데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자신들의 억울한 목소리를, 아무리 외쳐대도 이 사회에 반영하지 못해 고통 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과거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 분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대변하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눈물' 보인 한정우 보도국장...이용마 기자 "회사 오니 힘이 난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의 2012년 파업 과정에서 해직된 MBC 언론인 5명이 11일 모두 복직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이날 해직언론인 중 3명(박성제, 박성호, 이용마 기자)이 소속된 보도국에서도 별도로 환영 행사를 열고 오랜만에 돌아온 동료들을 맞이했다. 몇 주 전까지 김장겸 전 사장의 해임 후에도 남아 있는 보도국 간부들의 퇴진을 요구하며 매일 손 팻말 시위를 벌였던 이들은, 이날에는 노란 손수건을 들고 동료의 귀환을 함께 기뻐했다.

보도국 복도에는 "박성호 캡(현장취재를 총괄하는 기자를 이르는 속어-기자 주)의 귀환, 다들 긴장하라!" "박성제 면도했다, 다들 긴장하라!" "듣고 싶다 'MBC뉴스 이용마입니다'" 등의 환영 문구가 쓰인 종이가 붙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은 세 사람에게 경량 패딩과 지압 슬리퍼, 소형 가습기 등이 담긴 '보도국 생존 키트'와 손 편지를 모은 앨범 등 미리 준비한 선물을 건네기도 했다. 세 사람이 기자들이 리포트를 촬영할 때 쓰는 마이크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여러 번 고쳐 잡자,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유쾌하게 시작된 이날 자리에도 결국 눈물은 빠지지 않았다. 2012년 파업 참여로 이른바 '유배지'를 전전하다 최근 보도국으로 돌아온 한정우 새 보도국장은 세 사람에게 환영의 말을 전하다 끝내 눈물을 글썽였다. 앞서 의연한 모습을 보였던 박성제 기자조차 "정말 행복하다. 나만 돌아온 것이 아니라 모두 같이 돌아왔으니 MBC 뉴스를 되살릴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며 말끝을 흐렸다.

이용마 기자는 동료 기자들 앞에서 언론의 사회적 역할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해직 기간 동안 과거의 나를 반성했다"고 운을 뗀 이용마 기자는 "(그동안)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에 너무 치중하다 보니 사회적 약자를 돌아보는 부분에는 너무 취약했더라"고 털어놨다.

이어 이 기자는 "기득권을 가진 권력자는 소수지만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다수다. 소수에 대한 감시도 좋지만 다수를 배려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반영해서 억울한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며 "복직한다면 이 부분에 힘을 써서 따뜻한 뉴스를 많이 만들어내고 싶다"고 말했다.

또 이용마 기자는 "사실 (건강) 상태가 그렇게 썩 좋지는 않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회사에 오고, 여러 선후배 동료들을 보니 정말로 힘이 난다"며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이 기자가 "MBC뉴스, 이용마입니다"라는 말로 소감을 맺자 구성원들은 다시 한 번 큰 박수로 화답했다. 모든 행사를 마친 세 사람은 최승호 사장과 함께 뉴스 스튜디오를 방문하는 등 처음 들어오는 상암동 MBC 사옥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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