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짝이 내게로 온 날 34] '50+ 인생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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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 2017년 늦은 여름, 전주시 평생학습관에서 근무하는 창의교육지원팀의 김삼현, 김지영 선생이 방송국을 찾아왔다. 전주시 평생학습관에서 진행하는 교육프로그램에 수강생으로 참여하기도 했고, 몇 번 특강의 강사로, 또는 외부행사 진행 등의 인연으로 직원들과 안면이 있는 터라 반갑게 맞이했다.

전주에서 익산까지 출장을 나와서, 두꺼운 수첩을 연신 뒤적이며 어렵게 꺼낸 이야기는 ‘전주에서 50+ 인생학교를 개최하고 싶은데 교장선생님이 되어달라’는 요지였다.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내 반응은 ‘50+ 인생학교는 뭣이고, 교장선생님은 또 무엇일까?’였다. 생소했으나 신선했다. 학교라는 단어가 문득 유년시절을 연상시키며 정겨움으로 다가왔다. 다른 단체나 동아리와는 다르게 순수함도 느껴졌다.

어디서 무얼 하든지 가슴에

가득 꿈을 안고 살아라 음~~

선생님 가르쳐주신 그때

그 말씀 잊지 않아요

언제나 그렇듯이

비 개이고 나면 무지개가 뜬다

결석은 하지 말아라

공부를 해야 좋은 사람 된단다 음~~

선생님 가르쳐주신 그때

그 말씀 잊지 않아요

(양희은노래 / <내 어린날의 학교> 가사 일부)

50+ 인생학교는 100세 시대를 맞아 길어진 인생 후반기를 미리 생각하고 준비해보자는 취지에서 기획한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이미 서울에서는 2016년 4월에 서울시 50 플러스 재단을 설립하고 서부, 중부, 남부 캠퍼스를 중심으로 50세에서 64세 세대를 돕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전주시 평생학습관는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다가 50+ 인생학교에서 모델을 찾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전주시민들을 위한 삶의 전환기, 인생 후반기 설계를 돕고자 한다는 취지였다.

다만 이 사업을 기획하고 준비하면서 서울 50+인생학교 담당자의 조언에 따라 전주시의 특성과 정서적 감성을 배려한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를 찾는 것이 중요한 관건인데 바로 그 교장선생님의 역할을 맡아달라는 부탁이었다. 두 사람은 내가 2015년 3월에 PD저널에 쓴 ‘우쿨렐레 연주하는 책방 할머니’라는 글을 보고, 더욱 믿음이 굳어졌다며 전주 ‘50+ 인생학교’에 함께 해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했다.

이틀만 시간을 달라는 부탁을 하고 생각했더니 다음과 같이 정리되었다.

첫째, 나는 30대부터 노년의 삶에 관심을 갖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여전히 어려운 문제이고, 답을 찾지는 못했으나 나의 고민의 선상에서 연마할 가치가 있는 과제였다.

둘째, 항암 기간을 거치면서 내가 받은 은혜를 되갚기 위해 내게 손을 내밀면 어떤 일이든지 보은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지역사회에 보은 할 수 있는 기회다.

셋째, 나는 ‘실버’니 노인세대니 하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50+는 신 문화세대로서 공익적인 가치를 창출 할 수 있는 모델이 될 것이다. 세대 공감에 동참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담당자들에 대한 무한 신뢰가 마음을 움직였다. 전주시 평생학습관은 2004년 교육부(당시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평생학습도시로 선정된 이래, 13년째 평생학습관 운영을 비롯하여 인문학강의 등 창의적이고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온 전문기관이다. 전국적으로 일 잘하기로 손꼽히는 데다 김삼현, 김지영 선생은 전문성과 성실함을 겸비한 일꾼이어서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직원이었다. 오죽 많이 고민하고 준비했을까 싶어서,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기로 했다. 마침 강의시간이 저녁 7시부터 시작되어 업무에 큰 차질이 없는 것도 다행이었다.

그렇게 의기투합하여 준비과정을 거쳐 “뭔가 할 수 있다면 지금 시작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50+ 인생학교>의 돛을 올렸다. 이 슬로건은 괴테가 이야기 한 “꿈을 품고 뭔가 할 수 있다면 그것을 시작하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용기 속에 당신의 천재성과 능력과 기적이 모두 숨어있다”는 말에서 차용했다.

50+ 세대는 만 50세에서 65세 베이비붐 세대를 칭하는 말이다. 50+ 세대는 은퇴했거나 혹은 은퇴를 앞두고 부모봉양과 자녀양육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세대다. 급변하는 세상은 변화를 강조하지만 발 빠르게 변화를 받아들이기에 몸이 둔하다. 일과 삶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지만 무엇을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암담하다. 이런 상황을 공감했는지, 1기 출범 시에 40여 명이 등록을 마쳤다. 특이한 것은 40대 후반의 참가자가 많았다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적극적으로 타개하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된 듯하다.

 

어떤 이름은 세상을 빛나게 하고

또 어떤 이름은 세상을 슬프게도 하네

우리가 살았던 시간은 되돌릴 수 없듯이

세월은 그렇게 내 나이를 더해만가네

한때 밤잠을 설치며 한 사람을 사랑도 하고

삼백예순하고도 다섯날을 그 사람만 생각했지

한데 오늘에서야 이런 나도 중년이 되고보니

세월의 무심함에 갑자기 웃음이 나오더라

훠이 훨훨훨 날아가자 날아가보자

누구라는 책임으로 살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안타까워

훠이 훨훨훨 떠나보자 떠나가보자

우리 젊은 날의 꿈들이 있는 그 시절 그곳으로

(박상민노래 / <중년> 가사 일부)

 

8차에 걸쳐 진행되는 전주 <50+ 인생학교>는 입학식과 마음열기를 시작으로, 주제 포럼, 워크숍, 졸업여행, 나의 50+ 인생 스토리텔링 발표회와 졸업식 등으로 짜였다. 목적의식이 뚜렷한 사람들끼리 만나서인지, 첫 시간부터 자신을 내려놓고 주제에 몰입하는 분위기였다.

나이, 성별, 직업 등을 떠나 새로 시작하는 마음가짐에 크게 감동했다. <50+ 인생학교>의 문을 두드리기까지 저마다 처한 각박한 입장을 가감 없이 드러내 놓아 많은 사람의 공감을 샀다. 그날 사직서를 제출한 수강생은 제2의 인생을 <50+ 인생학교>에서 시작한다고 해서 큰 박수를 받았고, 큰 수술을 앞둔 남자 분은 용기를 얻어가고 싶다고 했다.

장수에서 깨를 털다가 왔다는 분은 경찰공무원 퇴직 후 사회 초년생으로 인생 1학년을 다시 살고 있다고 했다. 66세의 남자 분은 ‘우리 동네에서는 내가 청년’이라고 해서 웃음을 주셨다. 대체로 삶의 전환기에 인생 후반기를 설계하고, 잘 살고 잘 죽기 위해, 인생의 쉼표이자 여백을 위해 지원했다는 소개였다. 무엇보다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첫 번째 워크숍 ‘영화를 통한 자아탐색’은 서울 50+인생학교 정광필 학장이 <건축학 개론>을 중심으로 진행을 해줬다. 무심히 봤던 영화의 장면들이 한 컷 한 컷 많은 의미와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각자의 삶을 반추하며 아픔과 대면하기도 하고. 못다 한 이야기를 보완하기도 했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은 진지하고 숙연하기까지 했다. 소통과 배려의 미덕을 발견하기도 했다. <건축학 개론> 영화 삽입곡 ‘기억의 습작’을 들을 때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이젠 버틸 수 없다고

휑한 웃음으로 내 어깨 기대어 눈을 감았지만

이젠 말할 수 있는 걸

너의 슬픈 눈빛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걸 나에게 말해 봐

너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볼 수만 있다면

철없던 나의 모습이 얼만큼 의미가 될 수 있는지

많은 날이 지나고 너의 마음 지쳐갈 때

내 마음속으로 쓰러져가는 너의 기억이 다시 찾아와 생각이 나겠지

너무 커버린 미래의 그 꿈들 속으로

잊혀져 가는 나의 기억이 다시 생각날까

(전람회 노래 / 기억의 습작 가사 일부)

두 번째 워크숍 ‘연기를 통한 자신의 내면 찾기’는 연극인 김경민 백제예술대 겸임교수의 지도로 진행됐다.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지금의 나를 직면하고 인정할 때 비로소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내면의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나를 찾아서 당당하게 드러낼 때 새 출발이 의미 있다.

만나고 싶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것은 용기다. <50+ 인생학교>는 차마 혼자서 할 수 없는 ‘그것’을 마주할 수 있는 작은 용기를 부여하고자 했다. 때론 웃음으로 때론 눈물로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면서 조금씩 용기를 얻어갔다. 그러면서 실질적으로 ‘4차 산업혁명시대 나의 일자리’ ‘사회적 경제’와 같은 주제 포럼을 통해 실질적인 계획 수립에 도움을 주고자 했다.

자치회의 주도로 진행된 졸업여행은 모처럼 ‘졸업’이라는 단어에 개인을 밀봉해서 힐링으로 재무장한 알찬 시간이었다. 자치회의 용의주도한 준비 아래 하루 일정으로 경남 통영의 연지도와 만지도를 다녀오는 여행이었다.

육지는 한겨울 칼바람이 냉혹한데, 남해안에 조용히 들어앉은 연지도와 만지도는 아직 해맑은 가을을 간직하고 있었다. 흔들다리를 건너며, 혹은 몽돌 해수욕장에 주저앉아 학창 시절 졸업여행의 기분은 만끽할 수 있었다. 순수하고 명랑한 모습에서는 도저히 40대 후반에서 60대의 나이를 느낄 수 없었다.

마음은 하나요 느낌도 하나요

그대만이 정말 내 사랑인데

눈물이 나네요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어느 날 우연히 거울 속에 비춰진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오승근노래 / 내 나이가 어때서 가사 일부)

 

마지막 시간 <50+ 인생 스토리텔링 발표회>에서는 <50+ 인생학교>를 통해 변화된 나, <50+ 인생학교>를 마치며 인생 후반기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구체적인 실천, 평생학습관에 바라는 점 등을 발표했다.

발표회에서 사용된 단어는, 더불어, 소통, 긍정, 희망, 용기, 공감, 자신감, 자긍심, 가치 전환, 당당함, 변화 등의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단어가 유독 많이 사용되었다. 수강생들이 각자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이지만, 미래를 지향하는 문제 인식과 가치관은 비슷하기에 더 발전적인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개개인이 천착한 문제를 해결하고 답을 제시할 수는 없겠지만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면서 실질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도 우선은 50+ 세대의 고민과 어려움을 이해하고 소통의 장으로서 기여하고 나아가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용기를 줄 수 있었던 것 같아 큰 보람을 느낀다.

UN이 정한 새 연령 분류표에 의하면, 0세~ 17세까지는 미성년자, 18세~65세까지 청년, 66세~79년 중년, 80세~99세까지는 노년, 100세 이후 장수노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아직도 많다. 100세 시대를 준비하며 더 유익하고 알찬 삶,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기 위해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천 방안을 갈구하게 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은 개인이지만 함께 소통할 공간이 필요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나이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존경받고 유익한 존재가 될 수 있도록, 개인과 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

분자화한 현대사회, 더구나 50 이후의 인생의 전환기와 정책적으로 심리적으로 사각지대에 놓인 세대를 아우르고, 그 기운을 끌어 모아 사회에 선한 에너지로 환원할 수 있다면 이는 고령화 시대 매우 새롭고 신선한 패러다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난해 10월16일부터 11월27일까지, 8회에 걸친 전주<50+ 인생학교>에서 교장이라는 이름으로 봉사할 수 있어 참 행복했다. 1기를 거쳐 간 30여 명의 졸업생은 거듭남의 기쁨으로 좋은 소식을 보내주고 있다.

교육기간에 소통했던 닉네임을 불러본다. 하얀 배나무꽃, 지구별 여행자, 스피노자, 긍정여사, 엘사, 기록적인 삶, 맑은 소리, 늘 푸른 솔, 오킴스, 개근, 후리지아, 지니, 미래, 보통사람, 빛나는 구슬, 소무, 스윗제이, 반야, 대나무, 로드맨, 아자, 붓다, 장자, 진주, 하회탈, 비타민 C, 나루터, 로즈, 나를 찾아가는 여행의 길라잡이, 산소, 미나리, 철이, 이기자…….

한 사람 한 사람 그리운 얼굴이 스쳐간다. 우울증에서 탈출했다는 소식이 제일 반가웠고, 바라던 바 SNS 강사로 새 삶을 시작했다는 어르신의 사연도 기뻤다. 50+를 거쳐간 후 힘을 받아 NGO 활동에 더욱 열심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50 이후, 삶에 윤기를 더하고 친구를 더하고 희망을 더하는 귀한 인연이 있다는 것이 매우 행복했다. 그 기운으로 2018년 한해도 플러스 인생이 되기를 염원해본다.

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지금껏 달려온 너의 용기를 위해

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찬란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

내일은 더 낫겠지 그런 작은 희망 하나로

사랑할 수 있다면 힘든 1년도 버틸 거야

일어나 앞으로 나가 니가 가는 것이 길이다

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지금껏 살아온 너의 용기를 위해

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찬란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

고개들어 하늘을 봐 창공을 가르는 새들

너의 어깨에 잠자고 있는 아름다운 날개를 펼쳐라

(봄 여름 가을 겨울 노래 / <Bravo Bravo my life> 가사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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