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 보도 논란, 취재윤리만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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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보도 논란, 취재윤리만 문제인가
  • 전규찬 언론연대 공동대표(한예종 교수)
  • 승인 2018.01.04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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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전규찬 언론연대 공동대표(한예종 방송영상과 교수)] 촛불로 활성화된 시민들은 TV를 그냥 시청하지 않는다. 더욱 더 비판적으로 독해한다. 주체적으로 읽어낸다.

새로 서는 MBC 뉴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되어 가는지, 바르게 하고 있는지 지켜보고 또 감시할 것이다. 그러면서, 새해 첫날 MBC 기자가 뉴스 보도를 하며 자기 친구를 인터뷰이로 내세운 사실을 칼 같이 잡아낸다. 함께 일한 인턴 기자를 ‘학생’ 신분으로 바꿔 카메라 앞에 세운 처사에 대해 경악과 비난을 금치 못했다.

기자 신상에 관해 심지어 사실과 다른, 확인되지 않은 별별 의혹들이 제기된다. 그가 ‘시용직 출신이고, 특정 정당 열렬 지지자이며, 계약이 해제되어 징계가 어렵다’는 등의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빠르게 인터넷을 통해 회자된다.

나아가 분통 터진 다수의 사람들은 채 돌아오지 못한 MBC 뉴스 자체에 대해 배신감을 토로한다. ‘기레기’론을 되풀이하며 비난의 원성을 높일 것이다. 과도하다, 억울하다는 말로 삭힐 수 없는 냉소와 비난, 거부의 반응이었다.

MBC가 빠르게 응대했다. 다음 날 바로 다시 사과가 이어졌다. “기자가 자신의 지인을 섭외해 일반 시민 인터뷰로 방송한 것은 여론을 왜곡할 우려가 있는 보도 행태일 뿐만 아니라, 취재윤리를 명백히 위반한 행위”라고 <뉴스데스크>의 박성호 앵커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보다 객관적이고 명확한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한국방송학회에 경위 조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기자 취재윤리 위반의 인정.

▲ 지난 2일 박성호 <뉴스데스크> 앵커가 전날 보도에 대한 사과방송을 하고 있는 모습 갈무리.

그러면 끝나는가? 외부에서, 학회까지 나섰으니 진상규명을 지켜보면 되는가? <미디어스>의 한 블로거는 이런 빠른 사과를 칭찬한다.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곧바로 사과하는 모습에서 그래도 여전히 희망을 보게” 된다는 이야기다.

한편 <미디어오늘>은 사설을 통해 좀 더 엄중하게 MBC를 질타한다. 공식사과에 그치지 않고 “하루빨리 재발방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언론’ 모두가 불신을 극복하고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이 글을 쓸까 말까 망설였다. 같은 말을 하고 싶지 않았고, 당분간은 애정을 갖고 봐 줘야하지 않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MBC의 사과내용은 물론이고 주변의 관전 방향이 모두 필자가 생각하는 중요한 포인트를 비껴간다는 느낌이 자꾸 든다. 본질 파악이 뭔가 제대로 되어가지 않는 것 같아 찜찜하다. 그래서 사견을 덧붙인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문제의 원인과 책임을 취재윤리 위반이라는 기자 개인의 것으로만 돌리는 건 아니라는 공론의 제기이기도 하다.

신년 첫날 “무술년 최대 화두 ‘개헌’”을 다루는 아주 중요한 <뉴스데스크> 꼭지였다. 그 핵심 현안을 둘러싼 정치권의 일정을 짚기 전에 “주권자인 시민의 생각부터 먼저 들어보자”는 게 의도였으리라.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웠던 촛불 시민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로 상징되는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했습니다. 시민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그 국정농단을 막아내지 못했던 정치시스템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무능하고 부정한 정치, 미디어 대의체계를 넘어 직접행동으로써 촛불혁명을 완성시킨 대중을 ‘주권자 시민’의 이름으로 소환한다. 그들의 개헌에 관한 의견을 들어 보자. 바람직한 태도다.

새로 서고자 하는 MBC뉴스의 마땅하고 당연한 스토리 전개방식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구현의 방법론. 과연 대의정치 초월의 공통 경험을 지닌 ‘주권자 시민’ 대중의 여론을 공영방송이, <뉴스데스크>가, 현장기자는 어떻게 파악하고 또 표현해낼 것인가.

여론은 민주주의 정치에서 가장 흔히 이야기되는 주제지만 실상은 가장 짚어내기 어려운 난제다. 여론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만큼 정치적으로 난해한 문제는 없다. 대체 수많은 차이들과 그럼에도 가능한 공통성으로 복잡하게 직조되어 있는 주권자 시민들의 살아있는 여론, 움직이는 의견을 어떻게 잡아낼 것인가. 대중여론은 통계 처리된 이른바 여론조사를 통해서도 결코 쉽게, 완벽히 표현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기본적인 양적자료로서의 효용성을 지닌 여론조사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기자는 개헌에 관한 이른바 “주권자인 시민의 생각”을 듣는다면서 대뜸 마이크 들고 ‘거리’로 나간다. ‘시민들’에게 다가가 인터뷰한다. 마치 촛불정신을 따르는 듯한 직접 대면의 행동이다.

그러나 문제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기자는 제대로 시민들의 거리로 나가지 않았고, 기사는 진정한 시민들의 목소리도 듣지 않았다. 시간이 부족했나.

▲ 인터뷰 조작 논란이 불거진 지난 1일 <뉴스데스크> 보도 화면.

기자는 졸속의 여론수집 테크닉을 발휘한다. 편의적으로 선택된 샘플을 통해 가상의 ‘시민’ 여론을 가까이서 임의 추출해내는 기술. 자신과 함께 일했던, 앞서 최승호 새 사장과의 당돌한 인터뷰를 통해 인터넷으로 크게 회자되고 최소한 MBC 내부는 물론이고 얼굴까지 알려졌을 공산이 큰 인턴기자가 먼저 인터뷰이로 나선다. 학생 신분으로 재설정된 그녀는 꽤나 또박또박하게 준비된 자기 의사로써 ‘시민’ 여론을 대변할 것이다.

재현, 재연의 행위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촛불혁명을 지나면서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폐해를 인식했는데, 그런 사건들이 헌법 정신에 담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대 또래의 대학생 두 명이 다시 출연해 ‘국민’ 안전권과 성 평등권의 헌법 명시를 주장할 것이다. 한편, 30대 회사원은 ‘근로’를 ‘노동’이란 단어로 대체하자는 과감하고 진보적이며 개인적으로는 적극 동의할만한 의사를 밝힐 텐데, 취재기자의 지인으로 곧 그 신분이 밝혀진다.

위장과 가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 중임제와 이원집정부제를 각각 주장하는 50대 공무원, 70대 지역시민도 인터뷰에 나선다. 물론 선별, 선택의 결과일 것이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국민 의견을 효과적으로 반영하고 수렴할 수 있는 정치제도의 설계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하는 정치학자의 멘트가 덧붙여지면서 ‘시민들’의 여론 청취, 정확하게 말해 개헌여론 구성의 뉴스가 완료된다. 지인으로부터 시작된 개헌여론시민 표상화의 작업이다.

내용적으로는 그럴 듯하지만 형식에서 부정한, 불의의 형식으로 온당한 내용을 포장코자 한 ‘주권자’ 대상화의 인터뷰. 그 엽기적 (조)작품은 그러나 방송되자마자 당장 주권자 시민, 시청자 당사자들에 의해 옳지 않은 것으로 지목 당하고 만다. 부정한 장난으로 규정되고 비난받는다. 사필귀정. 시민들은 자신을 ‘주권자’로 호명하면서 막상 여전히 구태의연하고 기능적이며 기만적인 방식으로 동원하는 대의뉴스 생산, 대리뉴스 구성의 방식을 용인하지 않는다.

설혹 그것이 새롭게 일어서려는 MBC의 것이라도, 그러기에 오히려 더욱 엄격하게 시비한다. 취재윤리의 기본을 지키지 않은 기자의 잘못을 당장 묻는다. MBC가 “조사결과가 나오는 대로” “그에 따른 엄격한 후속조치를 취할 예정”이라 응대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호된 꾸짖음이다. 당연한 결과다. 마땅한 처사다. 그러나 이번 사안을 두고, 그 원인을 기자 개인의 윤리적 문제에서 찾으며 그 책임을 기자 일인에게만 묻는 것은 과연 온당하고 충분한가.

그와 함께 짚어야 할 구조적 결함, 함께 따져야 할 근본적 책임은 또 없는가. 이 래디컬한 질문이 이번 공론의 장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이유다. 다음과 같은 질문, 의문이 여전히 남아 있다.

개헌이라는 정치적으로 중차대한 의제에 관한 새해 첫날의 뉴스 아이템 선정은 애당초 어떻게 이루어졌나. 기자가 제안한 건가, 아니라면 위로부터 선택된 것인가. 만약 후자의 경우라면, 실패 원인의 공유와 다 못한 책임의 분담이 마땅하다.

<뉴스데스크>의 데스킹 과정은 지금 제대로 작동 중인가. 그렇다면, 왜 잘 알려진 인턴 기자의 인터뷰조차 최소한 걸러지지 않았을까. 그 실수, 그 잘못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방송에서는 ‘주권자 시민’의 이름으로 등장한 사람들이 디테일은 다르지만 모두 개헌에 찬성 의견을 표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은 꼭지에서 스튜디오에 직접 출연한 기자는 앵커와 대담하며 “지금 개헌을 요구하는 국민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강조한다.

이런 구성은 현실의 여론, 여론의 현실을 진실하게 표현하고 있는가. 이것이 촛불혁명 이후, 개헌이라는 정치적 사안에 관해, 공영방송이 취할, 주권자 시민여론 대변의, 진지하고 책임있는 뉴스구성 방식인가? 개헌에 반대한다는 주장, 모르겠다는 의견, 관심이 없다는 여론은 부재하다. '압도적‘이란 표현으로 생략되고 만다. 현실에서는 분명 실재할 이런 여론의 소외를 데스크는 왜 주목하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뭘까. 균형의 원리는 어디로 갔는가.

‘인터뷰 조작 논란’이라고 명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단언컨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주권자 시민’을 앞세운 아주 이상한, 중요한, 징후적인 사건이었다. 그것을 ‘기레기 기자’의 실수, 잘못으로만 모는 게 옳은가.

사실은 제작거부에 동참했던 기자의 윤리적 자질 문제로 환원할 수 없는, 정상시스템 작동 실패의 구조적인 문제는 아닌가. MBC 정상화가, MBC뉴스의 귀환이 아직 요원하다는 방증으로 모두가 겸허히, 냉정히 받아들일 사건은 아닐까.

개헌 주체인 ‘주권자 시민’을 도구화한 사건, 민의를 편의적으로 수단화한 사건이다. 진실한 여론대의, 여론 구성에 실패한 개인과 시스템이 공범. 그만큼 MBC 내부 취재의 ABC가 오랫동안 망가져 있었고, 정상적 뉴스제작의 코드가 심각히 왜곡되어 있었다. 저널리즘의 기본윤리가 체계적으로 훼손된 상태였다.

그 시스템의 붕괴, 그 시스템적인 공백이 개인을 통해 사건적으로 표현됐다. 그렇게 봐야 제대로 된 복구의 해답이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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