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이 또 다른 유족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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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416가족협의회 공동기획한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 첫 녹음 현장

▲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 진행을 맡은 세월호 유가족 '예은이 아빠' 유경근 씨. ⓒPD저널

[PD저널=김혜인 기자] 두 명이 마주 앉으면 가득 차는 녹음실 안에 웅장한 배경음이 깔리기 시작한다. 3분 남짓한 내레이션이 나오고 떨리는 목소리로 세월호 유가족 유경근 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전 유경근입니다. 예은이 아빠라고 해야 많은 분들이 아실 거 같아요. ‘세상 끝의 사랑’이라는 제목 하에 ‘유족이 묻고 유족이 답하다’라는 부제로 시작합니다. 매 번 방송마다 재난 재해 참사 유가족들이 출연합니다.”

지난 2일, 서울 양천구 CBS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CBS와 416연대 미디어위원회가 공동기획한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 첫 녹음이 진행됐다. <세상 끝의 사랑>은 세월호 참사 4주기를 앞두고 세월호 유족이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겪은 유족들을 차례로 인터뷰하는 프로그램이다.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인 ‘예은이 아빠’ 유경근 씨가 진행을 맡았다.

이날 녹화에는 2명의 유가족이 출연했다. 1회는 tvN<혼술남녀> 故 이한빛 PD의 동생 이한솔 씨가, 2회에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막내 여동생을 잃은 조종규 씨가 나왔다.

▲ 지난 2일 첫 녹음이 진행된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 진행자 유경근 씨와 출연자로 나온 이한솔 씨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CBS

“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남은 가족들은 조용히 슬픔을 억누르는 법, 작은 희망으로 버티는 방법,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쓸쓸히 뒤돌아서는 법, 꿈속에서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짧은 위안을 겪는 방법을 알아갔습니다. 고통스러운 기억과 진실의 다른 이름은 사랑입니다.”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 시작 내레이션 중)

<세상 끝의 사랑> 기획 의도는 내레이션에 잘 드러난다. 특히 내레이션 배경 음악인 영화 <반지의 제왕> OST 'May it Be'는 정혜윤 PD가 특히 신경을 쓴 부분이었다.

정혜윤 PD는 “이번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을 ‘재난 원정대’라 생각했다"며 "개인적으로 소설 <반지의 제왕>에서 간달프가 호빗에게 ‘네가 길을 떠날 때 모든 선한 힘이 너를 돕도록 하겠다’라 말하는 대목을 좋아한다"고 배경음악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어떤 사람이 재난을 당했을 때 이런 말을 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유족들이 각자의 짐을 안고 온 유족들이 방송이 끝난 후 선한 힘을 받고 선한 기운을 받고 돌아가기를 원한다”고 했다.

첫 회 출연자인 이한솔 씨와 유경근 씨의 대화에서 세상을 떠난 가족의 소식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요즘 형이 무슨 이야기해요”라고 묻는 유 씨의 질문에 이 씨는 “꿈에 자주 나오는데 저보고 ‘그럴 줄 알았지만 왜 이 일(자신이 해오던 싸움)을 계속하냐’고 그래요”라고 답했다.

‘유족이 묻고 유족이 답하다’는 부제처럼 유 씨는 일반 진행자와는 공감대가 달랐다. 형이 떠나고 가족들이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을 던지며 유경근 씨는 자신의 경험을 먼저 털어놨다.

유 씨는 “딸이 네 명인데 예은이가 떠났다. 딸 넷 중에 하나니 4분의 1을 잃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섯 식구 모두가 사라진 거다. 남은 세 딸과의 관계를 다시 맺어야 하더라”라며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이 씨 역시 공감하며 “형의 결핍을 제가 채우려고 해도 부모님은 제가 부담을 느낀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고 공감을 했다.

유족에게 던지기 어려운 질문도 오갔다. CJ E&M 측에서 주장했던 ‘이 PD는 불성실 했다’는 평가나 퇴사가 아닌 죽음을 택한 형에 대한 생각, 남겨진 이로서 형이 살았던 자리들을 살펴보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도 물었다.

형의 죽음을 알았을 당시 군 복무 중이었던 이 씨에게 유 씨는 ‘관심사병’으로 지목받지 않았는지 물었다. 이 씨는 “(형의 죽음으로) 사회적 관습들을 외면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며 "후임이나 친구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같이 싸워주다 보니 관심사병이 되긴 했지만 그런 과정에서 형에게 떳떳해졌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방송 녹화전 CBS 로비에서 (왼쪽부터) 유경근 씨, 이한솔 씨, 정헤윤 PD, 박희정 작가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PD저널

"비록 우리는 가족을 잃었지만, 다른 가족을 구할 시간은 있다"

정혜윤 PD가 세월호 유가족을 진행자로 섭외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 PD는 “작년 팟캐스트 <416의 목소리> 시즌1을 했을 때 한 어머니가 ‘우리 아들은 갔지만 나는 아직 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며 “세월호 유족들이 ‘더 이상 희생자이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 마음을 알기에 세월호 유족과 같이 방송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첫 녹화를 마치고 제작진은 ‘아나운서보다 진행을 잘한다’고 격려했지만, 유경근 씨는 걱정이 앞섰다. 그는 “이야기를 하면 무슨 뜻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으니까 공감할 수 있는 건 많다"면서도 "이렇게 편하게 얘기하는 것들이 일반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걱정도 된다”고 말했다.

<세상 끝의 사랑>은 2016년 프랑스의 재난재해 참사 단체를 방문하고 온 유경근 씨의 이야기를 정혜윤 PD가 전해들으면서 시작했다. 2016년 5월 유럽의 참사 피해 단체 순회 방문에 나선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프랑스 파리의 테러참사피해단체연합(FENVAC·이하 펜탁)에서 참사 피해단체들을 만나 아픔을 나누고 대응책을 논의했다.

이 만남은 피해자들의 연대가 왜 필요한 것인지 깨닫게 했다.

유경근 씨는 "대한민국에서도 재난재해를 극복하기 위해선 피해자들이 더 이상 피해자, 동경의 대상, 지원의 대상으로 머물러서는 안 되고 재난을 겪었던 경험을 아직 재난을 겪지 않는 이들에게 나눠줘야 한다. 이 사회가 안전한 사회로 가기 위해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정혜윤 PD는 <세상 끝의 사랑>이 유족들의 고립을 막는 자리가 되길 바라며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정 PD는 “재난 참사 피해자분들은 ‘비록 우리 가족은 잃었지만 다른 가족을 구할 시간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 팟캐스트 1차적 목표는 유족과 유족이 한 번씩 만나는 것"이라며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떻게 힘을 내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서로 알게 되는 과정이자 더 이상 고립을 막고 마음을 합하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어 정 PD는 "팟캐스트는 파일럿처럼 해본 뒤 파일을 가지고 있다가 유가족 모임이 생길 때까지의 과정을 다큐로 만들 예정"이라며 "모임이 만들어질 때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긴 일에 뛰어들었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향후 계획을 밝혔다.

416연대 사무처에선 프로젝트 홍보와 기획을 담당하고 416미디어위원회는 영상과 아카이브 제작을 맡기로 했다. 이날 <세상 끝의 사랑> 녹음도 416미디어위원회가 영상에 담았다. 

<세상 끝의 사랑>은 오는 11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세월호 참사 4주기인 4월 16일 전까지 총 14회에 걸쳐 방송될 예정이다. 춘천 산사태, 대구 지하철 참사 등으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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