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자 하차 논란에 성평등 취지 퇴색한 '까칠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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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선 작가 '일방적 하차 통보" ...'하차 반대' 요구 이어져

▲ EBS <까칠남녀> 

[PD저널=구보라 기자] '젠더 이슈'를 적극적으로 다뤄온 EBS <까칠남녀>가 종영을 앞두고 또다시 젠더 논란의 중심에 섰다. 고정 출연자인 은하선 작가에게 ‘일방적으로 하차를 통보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까칠남녀> 고정 출연자인 은하선 작가는 지난 13일 <까칠남녀> 제작진으로부터 하차 통보를 받았다. 오는 2월 종영 소식이 알려진터라 <까칠남녀> 첫 방송부터 함께해온 은 작가의 하차 배경에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프로그램 종영이나 은 작가의 하차 모두 <까칠남녀>에 대한 항의 시위가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지만, EBS는 “일부 기독교·학부모 단체들의 폐지 시위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까칠남녀>는 ‘차별에 화난 남녀들의 까칠한 토크쇼’로 지난해 4월 첫방송을 시작했다. 은하선 작가는 섹스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바이섹슈얼(Bisexual, 양성애자)인 성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특유의 소신있는 발언으로 첫방송부터 지금까지 자리를 지켜왔고, 그의 발언은 방송 때마다 화제가 됐다. 

한편에선 ‘음란하다’는 이유로 은하선 작가의 하차 요구를 하기도 했다. 특히 은하선 작가가 지난달 25일과 1월 2일 2부작으로 방영한 성소수자 특집에 바이섹슈얼로 출연한 이후로 이같은 하차 요구와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더 높아졌다.

일부 학부모 단체와 기독교 단체들은 12월 말부터 EBS사옥을 찾아 '성소수자 특집'을 이유로 들며 “프로그램 폐지, 담당 본부장과 사장 징계” 등을 요구하는 항의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류재호 <까칠남녀> CP는 15일 <PD저널>과의 통화에서 “은하선 작가가 <까칠남녀>에 출연하기엔 부적절한 사유가 있다. 은하선 작가의 성 정체성이나 단체들의 <까칠남녀> 반대시위와는 무관하다. 최근 어떤 사실을 인지한 뒤로는 은 작가가 EBS 출연자로서 남은 편에 출연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류 CP는 ‘부적절한 사유’ 중 하나가 ‘문자 사기 사건’이라고 했다. 

류 CP는 "문자 논란이 일던 때도 하차 고민을 했지만, 유보했던 건 종영 편성이 확정된 상태라 애매하다고 생각했다"며 "그 이후로도 다른 문제를 알게 됐고 종합적으로 논의한 결과, 하차 결정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 EBS <까칠남녀> '나만 불편했나요? 2017 젠더 이슈'(12월 18일 방송), EBS <까칠남녀> '모르는 형님 - 성소수자 특집 1부'(12월 26일 방송) 화면캡처

은하선 "모든 건 성소수자 방송 이후...여성, 성소수자에 대한 공격"

은하선 작가는 “처음에 담당 CP는 ‘결격 사유’에 대해서 언론에는 말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저는 오히려 그 이유를 더 밝히라고 요구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큰 결격 사유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오후 은하선 작가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반동성애 하시는 소중한 주님의 자녀분들~ 까칠남녀 피디님 연락처가 갑자기 바뀌었다고 합니다”라며 퀴어문화축제 후원번호를 올리며 “문자하세요”고 올린 바 있다. 해당 번호로 문자를 하면 퀴어문화축제에 후원금 3000원이 전해진다. 이와 관련해 항의차 문자를 보냈던 사람들이 ‘문자 사기’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와 관련해 은 작가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린 이유는 제작진 개인의 번호로 수많은 전화와 항의 문자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내용을 방송하는 게 제작진을 괴롭혀야 할 일인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은 작가는 "‘문자 사기’를 계속 부각시키며, 도덕성을 깎아내리기 위해 저를 ‘사기꾼’ 프레임으로 몰아가려 한 것이다. 그런데 이를 다루는 언론이 하나도 없자 이후부터는 저에 대해 ‘음란하다’는 내용으로 공격의 방향을 돌렸다"고 주장했다.

은 작가는 자신의 성정체성이 이번 하차의 원인이 됐다고 보고 있다.  

은 작가는 “EBS는 ‘문자 사기 사건’ 등 다른 이유들을 들고 있지만, 이 모든 건 LGBT 방송 이후 벌어진 것”이라며 “이건 개인에 대한 공격이기도 하지만 여성이고 성소수자인 사람들에 대한 공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EBS로부터 사과를 받고 싶거나 하차 결정을 번복해달라고 공론화한 게 아니"라고 덧붙였다. 

은하선 작가는 “EBS를 향한 싸움이 아니라 성소수자들을 탄압하고 성소수자 방송이 하나 나간 것만으로도 '에로방송으로 가라‘며 음란방송 프레임 씌워서 공격하는 사람들과의 싸움”이라며 "‘성’이라고 하면 모두 야하고 에로하다고 폄하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EBS <까칠남녀> 

출연자들 “성평등 위해 노력한 <까칠남녀>와 맞지 않는 결정...녹화 보이콧”

<까칠남녀>의 고정 패널인 이현재, 손아람, 손희정 평론가는 15일 오후 2시 무렵 “EBS <까칠남녀>의 은하선 작가 하차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녹화 보이콧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까칠남녀>는 한국 사회 성평등을 위해 노력해 온 프로그램이다. 이렇게 의도에 맞지 않는 성급한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EBS에 따르면 고정 출연자 중 한 명인 방송인 정영진 씨는 본인의 의사로 오늘 17일 녹화부터는 하차하기로 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도 이날 논평을 내고 “일부 개신교 세력과 보수 학부모 단체들의 항의 집회가 “은하선 작가의 하차가 그와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짐작이 가능하다”며 "<까칠남녀>는 ‘젠더토크쇼’라는 표방에 맞게 제작될 때에만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들은 “그동안 한국사회 내 성소수자들은 수많은 억압과 차별 속에 숨죽여 살아야했다. 그 같은 어려운 환경속에서 성소수자-인권단체들의 싸움이 있었고 비로소 조금이나마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며 “EBS <까칠남녀>가 ‘젠더’를 표방하면서 은하선 작가를 강제하차 시킨 것은 그 자체로 모순돼 있다는 말”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SNS에선 <#까칠남녀_은하선_하차반대>라며 해시태그 운동이 번지고 있다. 

EBS <까칠남녀> 홈페이지 시청자게시판에는 은하선 작가 하차 통보에 반대하는 게시글도 올라오고 있다. 한 시청자는 “방송국 앞에서 시위하는 그 부모님, 혐오 세력 일부만 보고 티비 너머로 보고있는 다른 시청자라는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EBS는 진짜 큰 실수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시청자도 “교육방송이 극우 세력에 성소수자 패널을 쫓아내는 걸로 굴복하면 어쩌자는 건가요? 이 방송을 보고 있는 성소수자 청소년들에 대해 생각은 해보셨습니까? 방송이 이렇게 마무리하는 게 참 안타깝고 화난다. 지금 EBS의 이 행동은 성소수자가 결격사유라고 사회 전체에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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