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송월’ 오보 퍼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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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애인설'에 '명품백' 보도까지 근거없는 선정적 보도 남발

[PD저널=오기현 한국PD연합회 통일특위 위원장] 모처럼 남북관계가 훈풍을 타고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핵무력 완성’선언이라는 녹록지 않은 상황 뒤에 이어진 남북접촉이어서 우려 섞인 시선도 적지 않습니다.

사실 남북관계는 항상 살얼음판 위의 잔치였습니다. 하지만 평화라는 대명제를 거부하지 않는다면,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살려나가야 합니다. 북한이 좋다 싫다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반도라는 지정학적인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북한과 대화 테이블에 앉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활력을 잃은 경제에 모멘텀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북한과 교류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따라서 눈 앞의 이해관계에 얽매여 남북간의 긴장을 과장하거나 상대방을 근거 없이 희화화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지난 15일 평창올림픽 실무자 접촉에 참석한 현송월 모란봉악단 단장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홍일점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한 때 김정은 위원장의 애인이었다는 소문 때문인 듯 합니다.

다수 언론들은 ‘현송월은 김정은이 리설주와 결혼하기 전 사귀었던 마지막 애인이라고 알려져 있다’고 보도합니다. 그런데 현송월의 나이가 40대 중반으로 알려지자 슬그머니 ‘김정일 부자 애인설’이라는 제목으로 물타기를 하더니, ‘현송월은 김정은의 첫 연상애인이라는 말은 근거 없는 소리’라며 ‘김정일의 총애를 받은 생존 마지막 애인이었다” 라고 마치 타 매체의 오보를 바로 잡는 듯한 보도를 합니다.

아들의 애인이 아니라 아버지의 애인이었다는 주장입니다. 심지어는 ‘김일성과도 염문설’이라는 기사까지 등장합니다. 한 여인이 아들–아버지–할아버지가 스캔들에 관련되어 있다는 기막힌 스토리입니다.

▲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예술단 파견을 위한 실무접촉이 시작된 지난 15일 오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현송월 모란봉악단장이 남북 실무접촉에 참석하고 있다.ⓒ뉴시스(사진=통일부 제공)

그런데 이런 기사의 근거는 모두 소문입니다. 팩트 체크를 기본으로 하는 기사 작성에서 유독 북한관련 기사는 예외입니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언제 촉발될지 모르는 긴장상황에서 북한 관련 기사는 그 어떤 분야보다 엄격한 확인과 냉정한 분석을 거쳐야 함에도 말이죠. 아니면 말고 식의  가십성 기사를 남발하다가는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자신이 입게 됩니다.

우리도 권력자들의 사생활을 알아내기가 쉽지 않은데, 엄격한 언론통제와 비밀주의가 지켜지는 북한사회에서 권력 핵심부의 사생활을 도대체 누가 어떻게 알고 공개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북한관련 가십기사는 ‘사실’이라기 보다는 작성자의 ‘희망사항’이 가미된 소설에 가깝습니다.

현송월이 음란물을 제작한 혐의로 가족이 지켜보는 데서 공개처형 되었다는 기사가 2013년 말 거의 정설로 우리 방송 신문지면을 장식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 현송월이 2014년 다시 등장하자 ‘건재함을 과시했다’는 보도가 나옵니다. 오보에 대한 사과나 반성을 한 언론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번 회담장에 현송월이 들고나온 핸드백이 2500만 원 짜리 명품이라는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해당 브랜드 관계자는 ‘자사제품이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짝퉁이 아니냐’는 기사가 생산됐습니다.

한 신문은 ‘현송월의 허락 없인 악수도 못한 북한’이라며, 마치 협상장의 북한대표들이 눈치를 볼 정도로 현송월의 위상이 자신들이 보도한 내용대로 권력층과 특수한 관계인 것처럼 제목을 뽑았지만 정작 그 기사 어디에도 북한이 현송월의 허락을 받아 악수했다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현송월을 둘러싼 ‘김정은 애인설’까지 언급했다는 기사가 있었지만, 실제 정세현 전 장관의 발언 중에는 관련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오보의 퍼레이드입니다.

대개 북한 관련 선정적 기사는 ‘대북소식통 혹은 탈북자를 통한 국내보도’ -> 이를 인용한 ‘외신’ -> ‘외신을 인용한 국내보도’로 확대 재생산됩니다. 외신을 인용했으므로 사실여부의 증명에 대한 부담이 없습니다. 이번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무분별하게 생산되는 국내기사가 또 다시 외신을 타고 재수입되어 버젓이 팩트로 둔갑될 것이 우려됩니다.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남북관계 해빙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꼭 북한의 필요 때문만은 아닙니다. 국제행사를 치러야 하는 개최국 입장에서는 이전 대회와 차별되는 이슈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젠 국민들도 냉정해서 ‘국위선양’이나 과장된 ‘경제적 효과’에 현혹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올림픽 참가는 어쩌면 마른 하늘에 단비와 같은 소식입니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분쟁 가능성이 높은 한반도에서 ‘스포츠를 통해 평화를 구현한다’는 올림픽의 기본정신에도 부합합니다.

벌써부터 북한 예술단이 우리 사회를 곤경에 빠트리고 사회를 이간시킬 것을 경계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노래폭탄’이라는 단어도 등장했습니다. 깊은 애국심에 경의를 표하지만, 기우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을 정치적 메시지로 인식하거나, 공연을 통해 체제 변혁을 꿈꾸는 우리 국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예술적 코드와 북한의 그것이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21세기의 강력한 문화콘텐츠인 한류의 중심국가라는 점을 한 번 상기해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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