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리엔 아직 소리가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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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음 세상 ②] 배다리, 원도심의 소리

[PD저널=안병진 경인방송 PD] 배다리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아파트 삶이 지겨웠다. 2년마다 빚을 늘여가며 이사 다니는 것도, 낡은 아파트의 층간 소음도 더는 견딜 수 없었다. 게다가 원도심에서는 아파트 전셋값으로 세입자가 아니라 소유자가 될 수 있었다.

배다리는 인천의 오랜 동네다. 인천 사람들은 동구 금곡동과 창영동 일대를 이렇게 부른다. 오래전부터 이 동네를 배다리로 부르는 이유는 배와 다리가 실재했기 때문이다. 작은 배가 갯골을 따라 이곳 철교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바닷물과 배가 드나들던 곳. 지금의 풍경으로는 도저히 상상이 안가는 일이다. 그때의 모습도, 소리도 모두 사라지고 배다리, 예쁜 이름만 남았다. 배다리 철교 위로 1호선 열차가 요란스럽게 지나간다.

▲ 일러스트 by 봉현

배다리에는 헌책방 골목이 있다. 학창시절 돈이 궁한 인천 학생들이 책을 사고팔던 곳. 책을 산 기억은 없어도 멀쩡한 책을 팔아 용돈으로 쓰던 학생들의 전당포. 서울로 치면 청계천이요, 부산으로 치면 보수동이다.

해방 이후부터 6‧25 전쟁통까지 집집마다 쏟아져 나온 책들이 이곳에 자연스럽게 모여 들면서 헌책방 거리가 됐다. 박경리 작가가 인천에 살 당시, 이곳 배다리에서 책방을 했다고 한다. 배다리에 헌책방 골목이 막 시작될 즈음 일이다. 한때는 30여개의 헌책방들이 골목에 모여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대여섯 집만 남았다.

고등학교 때인가 잃어버린 교과서를 사기 위해 이곳에 왔었다. 그나마 깨끗한 책과 자습서를 찾기 위해 이집 저집을 돌아다닌 기억이 있다. 쾌쾌한 냄새와 책 넘기는 소리까지 들릴 것 같은 조용하던 헌책방. 아벨서점 좁은 책장 틈에서 예쁜 여학생과 만나는 상상을 하곤 했다. 서점이 남아 있으니, 기억도 남아 있다. 

▲ "STOP! 배다리 관통도로 전면무효화" ⓒ안병진 PD

배다리에는 골목마다 집집마다 작은 현수막이 붙어있다. 마을 한가운데로 큰 도로가 난다고 한다. 동네를 관통하는 도로를 주민 대부분 반대하고 있다. 10년째 계속되고 있는 일이다. 듣는 이가 적어서인지, 들어야할 이들이 귀를 막아서인지 소리는 소리가 되지 못하고 간신히 벽에 매달려 있다.

소리가 발화되지 못하는 답답한 체증 상태. 개통될 도로 부지는 어느새 마을 텃밭이 됐다. 봄이면 주민들이 농작물을 심는다. 사람들의 싸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식물들은 눈치도 없이 잘 자란다. 식물이 자라니 새들도 소리도 자란다. 도시에는 숨 돌릴 공간이 필요하다. 빈 공간에는 사람이 모이고, 소리가 모인다.

어둠이 내린 배다리 골목길에 서서 가만히 소리를 듣는다. 스산한 겨울바람이 자동차 소리를 뚫고 지나간다. 초저녁인데도 골목은 어둡다. 누군가 지나간다. 귀가 어두워서 목소리가 커진 옆집 할머니다. 인사를 하지만 다른 사람으로 나를 착각하는 것 같다.

덜컹덜컹. 1호선 열차가 지나간다. 기차는 모든 소리를 삼킨다. 100년도 넘은 경인선 국철. 10년째 소리가 체증이 된 이곳에, 압도적인 그 소리가 싫지 않다. 덜컹덜컹. 덜컹덜컹. 멀어지는 기차의 불빛이 따뜻해 보인다. 골목은 다시 고요하다. 배다리엔 아직 소리가 살고 있다. 

 

▲ 이곳 배다리에서 나고 자란 가수 김광진 씨가 만들어 불렀다. 노랫말은 그의 아내, 작사가 허승경 씨가 썼다. 옆 동네 송림동 출신이다.

"태어나 자란 동네 배가 들어왔던 다리래.

배도 다리도 이제는 없고 예쁜 이름만 거리에 남아

헌책방 많던 동네 교복 입은 친구들 모여

깔깔 이야기가 너무 많아 낙서 없는 교과서를 찾지.

세월 지나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도시를 찾아 떠나네.

음…음…떠나네"

- <배다리>– 김광진 [지혜](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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