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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남녀’ 사태, ‘비자발적 침묵’의 강요

이종임 문화연대 집행위원/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l승인2018.01.29 11:4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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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이종임 문화연대 집행위원/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호모 사케르(homo sacer)는 원래 고대 로마에서 “사람들이 범죄자로 판정한 대상, 죽임을 당해도 살인죄로 처벌받을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자”를 의미한다. 아감벤은 호모사케르를 “죽임을 당할 수는 있어도 희생물로 바쳐질 수 없는 대상”으로 정의한다.

다시 말해 호모 사케르는 법체계를 포함해 공동체가 공유하는 모든 가치체계로부터 배제된 사회의 외부자라 할 수 있다. 즉 법질서 외부로 추방된 채 사회에 존재하고, 무슨 일을 해도 상관없고 심지어 죽여도 무방한 존재, 배제되어 있지만 사회 내에 존재하는 이들이 호모 사케르이다.

그리고 사회 내부에서 추방당한 자들을 통해 그 사회에서 작동하는 주권의 힘을 포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경계로 추방당한 자들, 즉 예외의 상태에 놓여있는 자들이 호모 사케르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사회 내에서도 이러한 배제의 원리가 작동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탈북자, 성소수자 등 많은 대상이 존재한다. 물론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시민들도 존재하지만, 이러한 배제의 작동원리를 멈추기는 쉽지 않다. 최근 EBS <까칠남녀>를 둘러싼 논란은 구성원으로 인정할 수 있는 대상과 인정할 수 없는 대상의 구분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자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민주언론시민연합,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언론개혁시민연대 등은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22일 오전 EBS 신사옥 뒤편 주차장 앞에서 하차 통보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PD저널

현재 국내에는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케이블 등 많은 채널이 존재하지만 젠더와 섹슈얼리티 관련 이슈를 논하는 방송을 보기 어렵다. 드라마에 동성애자가 등장하면 거센 항의를 받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희화되거나 경제적으로 성공한 인물로만 조명한다.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갈등, 정치적이거나 사회제도와 관련된 문제들은 외면받았다.

이러한 국내 방송 환경 속에서 EBS는 2017년 “성(性)에 대한 고정관념과 성 역할에 대한 갈등을 유쾌하고 솔직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국내 최초의 젠더 토크쇼” <까칠남녀>를 선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반가운 시도는 얼마 가지 못했다.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어왔던 성(性)을 이야기한다는 것, 그리고 성소수자가 패널로 등장한다는 것은 여전히 불편한 것, 말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되기에 이른다. 성소수자의 목소리는 사회에서 용인된 것만을 말할 수 있었고, 이를 어길 경우 찍어내야 하는 대상이 됐다.

기대반 우려반 속에 첫 방송이 나간 이후 <까칠남녀>에 대한 보수담론의 거센 비난이 일었고, EBS는 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오히려 성소수자 패널에게 일방적 하차를 통보하는, 폭력적이고 비상식적 방법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정상인과 비정상인의 경계는 누가 결정하는 것인가. 우리 사회에서 토론 가능한 성(性)은 무엇인가, 누구나 자신의 젠더와 섹슈얼리티 문제를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인가.

결국 <까칠남녀> 사태는 사회에서 규정하는 ‘정상인 담론’ 밖의 이야기를 하는 화자는 어떤 방식으로 ‘낙인’이 찍히는가를 보여줬다. 그리고 사회에서 정상인으로 규정되기 위해,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삶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침묵을 선택해야 함을 학습하게 한다.

지난 22일, 지금 벌어지고 있는 비상식적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40여 개의 성소수자, 여성, 언론, 교육 단체들이 모였다. EBS <까칠남녀> 고정패널인 은하선 작가의 복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은하선 작가의 하차를 일선 제작진이 아닌 담당 CP가 결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제작 자율성 침해 논란까지 일고 있다.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교육의 방향, 미디어가 지켜야 하는 미디어 다양성의 가치 등을 고려한다면, 지금 ‘하차 철회’를 요구하는 많은 시민의 의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금지(禁止)와 금기(禁忌)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토론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미디어/방송의 역할이자 앞으로 가야 할 길이다. 그리고 이는 EBS가 은하선 작가의 하차 통보를 철회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종임 문화연대 집행위원/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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