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검사 '폭로' 본질 못 짚는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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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있는 폭로 주문' '자극적 삽화 사용' 여전..."실효성 있는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 필요"

[PD저널=이미나 기자]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가 검찰 내부 통신망에 자신이 겪었던 성폭력 경험을 폭로한 뒤 언론은 발 빠르게 관련 소식을 쏟아내고 있다.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는 의미 있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서지현 검사 폭로'를 다룬 언론 보도를 보면 여전히 피해 사실의 일부만을 선정적으로 재현하거나, 근본적인 개선을 논하는 대신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폭로'를 강요하는 듯한 태도도 엿보인다. 국가인권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관계 부처와 여성단체가 협력해 실효성 있는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 및 제작지침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아래 민언련)은 31일 보고서에서 "기존과 같이 성폭력을 보도한다면, 차라리 언론에서 성폭력을 다루지 않는 것이 2차 가해, 잘못된 편견을 확대하지 않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부적절한 행태가 개선되고, 이를 위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 서지현 검사는 29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JTBC

취지 좋았으나 아쉬움 남긴 JTBC <뉴스룸>과 SBS <8뉴스>

서지현 검사를 스튜디오로 불러내 육성으로 피해 사실을 증언하게 한 29일 JTBC <뉴스룸>은 서 검사의 사건을 알리는 데 공헌했다. 하지만 손석희 앵커는 서 검사가 사건의 정황을 설명한 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물론 '이건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셨겠죠?"라고 되물었다.

손석희 앵커가 이날 인터뷰에서 전반적으로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던 데 반해, '피해자가 피해를 입고 즉각적으로 이를 지적했는지'를 묻는 이 질문은 성폭력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은 조사를 받거나 법적 공방을 벌이는 과정에서 이와 비슷한 질문들을 받고 다시 상처를 받는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이를 두고 민언련은 "손 앵커의 질문은 자칫 시청자에게 '성폭력 피해자는 피해를 입은 순간 가해자에게 당연히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표현해야만 하는 것이다'라는 부적절한 메시지로 전달될 수 있다"며 "JTBC와 손석희 앵커의 사회적 영향력과 신뢰도를 감안하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SBS <8뉴스>의 김현우 앵커는 30일 서지현 검사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전직 검사의 증언을 보도한 뒤 "아무래도 검찰 내부의 문제를 밝히기 위해서는 용기 있는 제보가 더 있었으면 좋겠네요"라고 말했다. 과거 검찰이 취재기자, 동료 검사를 성추행한 검사들에게 가벼운 처벌만을 내렸던 전례를 보면 이 또한 부적절했다는 지적이다.

민언련은 "검찰 내부의 성폭력 문제가 공론화되지 않았던 이유가 오직 '피해자들의 적극적 제보가 없었기 때문'인가"라며 "'용기 있는 제보'를 요구하기 이전에 언론 스스로가 그동안 검찰 내 성폭력 문제라는 민감한 사안을 애써 외면한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러한 발언은 사안을 공론화하고 진실을 밝힐 책임을 모조리 피해자들에게 떠넘기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JTBC와 SBS가 리포트 말미 이 사건을 '검찰 조직 내에 어떠한 잘못된 문화' 혹은 '검찰 내부의 문제'라고 설명한 것을 두고 민언련은 "서 검사가 당한 것은 명백한 범죄인 '직장 내 성추행'"이라며 "사안의 중대성과 사회적 의미를 축소시키는 것으로 비칠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도 <PD저널>에 "하루에도 수십 건씩, 반복적으로 직장 내 성폭력 문제를 (언론 등을 통해) 접하지 않나. 특정 조직의 문화적 특수성이라고 보기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며 "문제를 협소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내가 있는 공간에서는 이 같은 문제가 있는가'를 성찰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확장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중하게" 보도하겠다던 TV조선, 삽화는 왜?

▲ 서지현 검사의 글을 '한국판 미투운동'의 시발점으로 보도한 기사들. ⓒPD저널

서지현 검사 사건에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부분만을 재현하는 보도 행태도 문제다. MBC와 TV조선 관련 보도는 "성폭력 범죄를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 소재로 다루"거나 "성폭력 범죄의 범행 수법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을 지양해야 하고, 특히 피해자를 범죄 피해자가 아닌 '성적 행위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할 수 있는 선정적 묘사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한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과도 어긋난다. 

MBC는 30일 <뉴스데스크>에서 서지현 검사가 추가적으로 폭로한 성폭력 피해 사실을 굳이 재연 배우의 연기를 통해 보여줬다. 지난해 11월 가구회사 한샘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과 집단 성매매 알선자와 참가자들이 구속된 사건을 보도하며 삽화를 사용해 입길에 올랐던 TV조선도 30일 <뉴스9>에서 또다시 서지현 검사의 글을 바탕으로 한 삽화를 여러 개 사용했다.

특히 TV조선의 취재기자가 당시 상황을 묘사하듯 설명하는 부분은 "피해자가 다시 한 번 고통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해 최대한 신중하게" 보도하겠다던 앵커의 발언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민언련도 "건조하게 사실관계를 언급하는 수준을 넘어, 피해 사실이 발생한 그 순간으로 시점을 돌려가며 생생한 설명을 제공하는 것은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자극할 소지가 있는 불필요한 보도 기법"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더불어 서지현 검사의 사건을 보도하며 '한국판 미투(Metoo) 운동'이 시작되고 있다고 단정하는 것 또한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미 2016년 하반기부터 '#OO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은 SNS를 휩쓸었다. 익명, 혹은 실명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내 자신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공유했다.

정슬아 사무국장은 "해시태그 운동 전부터도 각자의 피해 경험을 발화한 이들이 분명 존재했다"며 "의도치 않았더라도 '이번이 처음'이라는 식의 이야기는 과거 피해자들의 발화의 역사를 삭제하는 것으로 오독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 사무국장은 "피해자에게 행해진 가해 행위에 대한 진상 조사 및 처벌은 마땅히 행해져야 한다"면서도 "사회에 만연한 '문화'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지금 분노하는 이유가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지현 검사가 31일 언론에 밝힌 입장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서 검사는 입장문에서 "장례식장 안에서 있었던 일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그 후 왜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는지, 혼자만의 목소리를 내었을 때 왜 조직이 귀 기울일 수 없었는지에 대해 주목해 주기 바란다"며 "이 사건의 본질은 내가 어떤 추행을 당했는지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문제였으며, 어떻게 바꾸어 나갈 것인가에 언론과 시민들께서 우리 사회 미래를 위해 집요하게 관심을 가져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서지현 검사는 또 "82년생 김지영의 문제가 김지영만의 문제가 아니듯, 이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조직 내 성폭력에 대해 피해자는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한다"며 "폭력 피해자에 대한 편견 깨기, 성폭력 범죄에 대한 편견 깨기부터 시작되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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