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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계 미투? '일 잘릴까' 문제 제기도 못해"

위계질서 강한 방송계 조직문화 탓 '쉬쉬'..."근본적인 인식 개선 이뤄져야" 이미나 기자l승인2018.02.07 11:3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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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ixabay

[PD저널=이미나 기자] 최근 법조계 내 성폭력 문제가 불거진 데 이어 강민주 전 전남CBS PD가 5일 JTBC <뉴스룸> 보도를 통해 수습 시절 간부들이 자신을 성희롱했고, 이를 문제 삼았다가 두 차례나 해고됐다고 폭로했다.

지난 2016년부터 언론을 통해 알려진 이 사건은 피해자인 강 PD가 처음으로 실명 인터뷰에 응하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이를 시작으로 방송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 수 있을까.

2016년 SNS에서 시작된 '#OO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은 문학계, 영화계 등 다양한 곳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모으는 데 공헌했다.

방송계는 어떨까. 복수의 방송계 종사자들은 "하루 이틀 문제는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종사자 A씨는 "(방송계 내 성폭력 문제가 보도돼도) 크게 놀랍지 않은 일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종사자 B씨도 "사실은 비일비재했던 일이다. 종사자 입장에서 답답할 때가 많았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한 지상파 시사프로그램에서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의 제보를 바란다는 글을 SNS에 올리자 '멀리서 찾지 말고, 방송계 내부부터 돌아보라'는 냉소적인 댓들이 연이어 달렸다. '방송사 회식 자리만 한 바퀴 돌아봐도 3년 치 방송 분량은 나온다'는 한 누리꾼의 댓글은 개중 가장 널리 공유됐다.

방송계 실상을 들여다보면 흘려 들을 수 없는 지적이다. 2016년 방송작가유니온 준비모임과 전국언론노동조합이 발표한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에서 응답자의 41.1%가 성폭력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5월 열린 '미디어 내 성평등을 위한 연속토론회'에서는 여성 드라마 스태프들이 경험했던 언어적·신체적 성폭력 피해 사례가 구체적으로 나열되기도 했다.

극단적인 사례도 있다. 2009년 드라마 보조출연을 하던 자매가 일주일 간격을 두고 목숨을 끊었다. 촬영장에서 3개월에 걸쳐 언니에게 가해진 성폭력이 원인이었다. 사망 전 2차 가해를 견디지 못했던 피해자는 형사 소송을 포기했고, 뒤늦게 자매의 어머니가 민사 소송을 제기했지만 공소시효가 만료돼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자매의 어머니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법정에서야 비로소 어머니는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었다. 당시 재판부는 어머니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공권력이 범한 참담한 실패와 이로 인해 가중됐을 그들의 극심한 괴로움을 보며 깊은 좌절과 슬픔을 금할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피해자만 손해보는' 이상한 현실

이토록 만연한 방송계 내 성폭력이 쉽사리 공론화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종사자들은 강요된 듯한 침묵이 오랜 시간 굳어져 온 방송계 '문화'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전문 인력들이 집중되어 있는 '좁은 바닥'에서, 자칫하다 업계에 발을 붙이지 못할 수 있다는 공포도 자리한다.

이기원 청년유니온 운영지원팀장은 "도제식으로 업무를 배워야 하는 방송업계의 특성상, 위계질서가 매우 강한 조직문화 안에서 그런 문제를 쉽게 제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며 "여성은 조직에서 더 취약한 조건에 놓여 있고, 그런 지점에서 성폭력 문제도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드라마 현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시한 tvN 신입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은 "그때그때 프리랜서 중심으로 (스태프가) 구성되는 드라마 촬영 현장에선 '평판'이 곧 이후의 생계와 연결된다. 그래서 성폭력이 발생해도 문제제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또 노동 강도가 높다보니, 현장 내에서 문제가 생겨도 '다음 주 드라마는 내보내야 하기 때문에' 현장을 스톱하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시한 대책위원은 "대부분의 감독, 연출부, 각 팀 별 퍼스트(각 팀별 리더 격인 스태프를 이르는 드라마 현장의 용어-기자 주)들이 대부분 남자인 상황에서 여성친화적인 일터가 만들어지기도 어렵다"며 "감독이 여성이고, 성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어도 방송사 내 직원이 성폭력 내규를 적용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고 비판했다.

종사자 B씨의 말도 크게 다르지 않다. B씨는 "워낙 말이 많은 동네가 아니겠느냐"며 "(문제제기를 한다고 해도) '이 바닥에서 앞으로 일하기 쉽지 않다' '가해자가 잘리겠느냐, 너만 손해다' '큰 일이 아닌 이상 접어 두라'고 반응하는 일도 많았다"고 전했다.

조은희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일수록 성폭력 문제에 대해 말하기가 어렵다"며 "개인의 주관에 의해 사람을 기용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방송계의 경우 그런(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경우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아예 활동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고용불안정성이 높은 비정규직인 경우엔 더하다. 성폭력 문제가 '성별의 문제'일 뿐만이 아니라, 가해자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일어나는 '권력의 문제'인 만큼 비정규직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전남 CBS가 강민주 PD를 두 차례나 해고할 수 있었던 배경도 그가 기본급의 70%밖에 받지 못하던 '수습'이었고, 강 PD를 포함한 모든 정규직 직원이 1년마다 ‘연봉계약직’ 서류를 작성하면서 서류상으로 '계약직'이었기 때문이었다. 강민주 PD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일이 "나이 어리고 신분 불안정한 여직원들 상대로 일어난다"고 고발했다.

가해자에겐 '무관용 원칙' 적용해야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예술인과 영화인을 상대로 성폭력 실태를 조사한 데 이어, 앞으로도 관련 조사를 벌여 나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도 6일 젠더폭력대책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여성단체들과 간담회를 열고 향후 사회 각 분야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문제 대응에 힘을 쏟겠다고 강조했다.

당장 중요한 것은 확실한 '처분'이다. MBC가 유명 드라마 PD의 성추행 사건에 뒤늦게나마 '무관용 원칙'을 밝혔듯, 조직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하고 단호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요구다. 

종사자 C씨는 "사실 성폭력 문제는 심각한 권력 남용 사례인데, 정작 (가해자) 본인들은 '장난으로' '술김에' 라는 식으로 변명해 오지 않았나"라며 "(가해 행위를 할 경우) 커리어가 박살나는 등 실질적 피해를 입어야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시한 대책위원도 "최근 논란이 된 MBC 드라마 PD 역시 MBC에서 물러나더라도 다른 제작사로 가서 계속 연출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며 "한번 성폭력을 저질렀던 가해자들이 계속 연출을 하고, 출연한다면 피해자들은 더 이상 용기를 낼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도 "조직에서 '무관용 원칙' 등을 선언하며 나아가는 것은 (조직의) 지향점을 확인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면서도 "이에 그치지 않고 가해 행위를 하는 사람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는 것을 실제 사례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피해자의 '용기 있는 폭로'에만 기대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정 사무국장은 "'추후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조직과 구성원들이 같이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구조적, 의식적 개선에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종사자 C씨는 "영화계에서는 촬영 전 모든 스태프를 대상으로 반 성폭력 교육을 하는 방안을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지 않나. 방송계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면서도 "간부급, 임원진급에 남성이 많은 만큼 그 구조가 바뀌어야만 그나마 가시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꼬집었다.

시한 대책위원은 "사회 전체적인 차원에서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재단하는 분위기부터 바뀌어야 한다"며 "페미니즘적 교육은 모든 노동현장에서 필요하다.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직장 내 불이익과 재교육이 수반되어야 제2, 제3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기원 팀장도 "사업장에서는 기본적으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필수적으로 하게 되어 있는데, 정해진 사무실이 아닌 현장에서 근무하는 방송업계 종사자의 경우에는 전혀 그런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새로운 작품이 시작될 때, 이와 관련된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검토해볼 지점"이라고 덧붙였다.


이미나 기자  neptune@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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