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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예술단' 강릉공연 선곡의 숨은 사연

'노래폭탄' 우려 씻는 'J에게' '이별' 대중가요 선보여 오기현 한국PD연합회 통일특위 위원장l승인2018.02.10 13:5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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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오기현 한국PD연합회 통일특위 위원장(SBS PD)] “특별히 정서적 거리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의 강릉공연 녹화방송을 연출한 신정관 SBS PD의 소감이다.

신PD는 지난 8일 갑자기 차출 명령을 받고 강릉으로 달려 갔다. 전날 연습장면은 통일부의 제지로 볼 수가 없었으나, 공연 직전 마지막 리허설 때 겨우 현송월 단장 뒤에 앉아 레퍼토리를 파악하고 카메라 위치를 잡았다고 한다. 그런데 우려에도 불구하고 구성원들 간 호흡이 워낙 잘 맞고 공연 내용이 낯설지 않아 녹화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내용 면에서 북한 측이 우리 관객을 우선 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가능한 정치색이 강한 레퍼토리는 배제하고, 남북의 보편적 정서에 부합한 선곡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남한에서 열리는 국제행사를 축하하기 위한 사절이라는 점, 남한 일부의 반북정서를 함께 고려했을 것이다.

또 형식면에서는 북한 측의 공연 스타일이 국제적 표준에 많이 근접했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북한의 음악공연은 정치적 메시지를 강력히 전달하기 위해 그들만의 독특한 형식을 발전시켜왔다. 무대에 강렬한 원색의 커튼을 두른다거나, 원색의 조명을 사용했다. 아울러 가수들이 군복차림으로 등장하거나 소품으로 미사일을 등장하는 경우도 했다. 그런데 이번 공연은 “노래폭탄을 가져올 것”이라거나 “핵 파는 처녀”의 공연이 될 것이라는 일부의 극단적인 우려와는 거리가 멀었다.

▲ 2018평창동계올림픽 및 동계패럴림픽 성공을 기원하는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이 8일 강릉아트센터 사임당홀에서 열려 첫곡으로 북한곡 “반갑습니다“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뉴시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가장 세련된 부분은 ‘오디오 믹싱’이었다. 즉 악기 소리와 가수들의 노래가 매우 적절히 잘 섞여 방송사에서 재편집하던 제작진들이 모두 혀를 내둘렀다. 오디오를 믹싱하는 컨트롤러는 평양에서 직접 가져왔다고 한다.

조명도 매우 뛰어났다고 평가된다. 훌륭한 조명은 음악과의 조화를 이룬다. 종종 심하게 번쩍거린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공연 도중 특정 악기가 연주할 때 화이트 조명이 그 악기를 정확히 찾아서 비추었다. 조명이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게 공연 내용에 대응해 오히려 작위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가끔 출연자들의 피부 톤을 잘 맞추지 못하던 과거의 북한 공연 조명에 비하면 일취월장한 느낌이다.

유행에 가장 민감한 것이 의상과 화장이다. 의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지휘자의 연미복이나 남성 연주자들의 유니폼은 세련미가 떨어지고, 여성 가수와 여성 연주자들의 복장은 우리 눈으로 보면 선이 굵어서 약간 투박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들 특유의 절제된 양식으로 현대적 흐름을 맞추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가수들의 색조화장도 많이 부드러워졌다.

가수들의 노래실력은 당연히 최고 수준이다. 북한 특유의 맑은 음색으로 우리 가요를 잘 소화했다는 평이다. 우리는 멋을 내기 위해 소리를 공명시키거나 노랫말을 끄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북한 가수들은 메시지 전달을 위해 노랫말의 발음을 정확히 한다. 그래서 어떤 곡이든 노랫말이 귀에 속속 들어온다는 장점이 있다. 남한가요를 북한 가수들이 새롭게 불러 무척 신선했다.

남한가요는 크게 보면 세 가지 원칙에 따라 선정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남한의 유명가수들의 잘 알려진 곡들이다.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패티 김의 <이별>, 혜은이의 <당신은 모르실거야>, 나훈아의 <사랑>,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송대관의 <해뜰날>, 설운도의 <다 함께 차차차>, 윤형주의 <어제 내린 비>, <최진사댁 셋째 딸>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남한 관객에 대한 배려로 남한과의 정서적 소통을 위한 선곡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북한에서 공식적으로 허용한 남한 노래로 서유석의 <홀로 아리랑>과 <우리의 소원의 통일>이다. 남북단일팀 구성과 같은 맥락으로 민족이 하나되자는 의미로 이해된다. 세 번째는 자신들의 음악성을 발휘한 선곡이다. 이선희의 <J에게>와 왁스의 <여정>이다. 특히 왁스의 <여정>은 의외의 선곡으로 남한노래를 자신들의 창법으로 한 번 뽐내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남한가요가 북한 예술인들을 통해 새롭게 해석됨으로써 남한 대중문화의 콘텐츠가 풍부해지고 신선한 자극도 됐다. 북한 예술인들도 남한가요를 통해 남한사회를 이해하고 정서적 공감대를 확장시켜나갈 것이다. 접점은 작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차츰 상호변화의 공간을 넓혀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번 북한공연의 선곡에 숨어있는 동기가 있다. 바로 1999년 이후 6년여 동안 지속된 우리 방송사의 방북공연의 영향이다. <J에게>는 이선희가 2003년 SBS의 류경정주영체육관 개관 기념공연을 위해 평양을 방문해 평양 관객들 앞에서 불렀던 노래다. 류경정주영체육관의 무대 중앙에선 작은 체구의 이선희 몸에서, 엄청난 파워의 노래가 나오자 관객들이 숨을 죽이고 바라보던 기억이 있다.

<이별>도 1999년 12월 SBS의 방북공연 때 패티 김이 봉화예술극장에서 북한관객에게 소개한 노래다. 당시 방북한 남한 가수 6개팀 가운데 패티 김만 유일하게 <사랑은 영원히>와 <이별> 두 곡을 불렀는데, 열정적인 공연으로 북한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최진희는 1999년엔 SBS와, 2002년에는 MBC와 평양을 방문해 <사랑의 미로>를 불렀다. 최진희의 독특한 발성에 북한의 방송 제작진들이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송대관은 2002년 KBS의 <평양노래자랑>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일부러 머리 염색까지 해간 송대관이 <네 박자>를 부르자 관객들이 무척 흥에 겨워했다. 설운도는 1999년과 2002년 모두 SBS와 방북해서 각각 <누이>와 <상하이 트위스트>를 불렀다. 2002년 공연 때 <상하이 트위스트>를 부르며 짧은 치마의 백댄서들과 열정적인 춤을 췄는데, 북한 관객들이 강력한 문화충격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관객을 위한 공연이 얼마나 효과가 있느냐는 회의적인 비판도 있다. 그러나 문화 공연의 힘은 확산속도가 빠르다. 입소문을 통해 혹은 방송 중계를 통해 널리 알려진다. 어렵게 마련한 남북한의 만남이다. 다양한 문화교류를 통해 남북한의 정서적 공감대가 확대되고 평화공존의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기대한다.  


오기현 한국PD연합회 통일특위 위원장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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