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꽃, 주말드라마='막장' 선입견 깨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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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꽃, 주말드라마='막장' 선입견 깨고 싶었다"
[인터뷰] MBC '돈꽃' 연출한 김희원 PD
  • 이미나 기자
  • 승인 2018.02.16 08: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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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돈꽃>의 김희원 PD(왼쪽)가 장부천 역의 배우 장승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MBC

[PD저널=이미나 기자] 출생의 비밀, 불륜, 복수, '막장 드라마'라고 불릴 법한 온갖 자극적인 설정이 다 들어갔는데도 MBC 24부작 주말특별기획 <돈꽃>의 세계는 우아하기 그지없었다. 등장인물들은 소리 높여 싸우는 대신 한 마디 한 마디를 느릿하게 뱉어냈고, 화면은 인물의 움직임을 슬로우 모션으로 쫓았다. 이 고상한 세계에서 속물적 욕망으로 가득찬 인물들의 면면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주인공 강필주(장혁)의 복수가 파국을 향해 치달아갈수록 시청률도 함께 상승했다. 지난 3일 방영된 최종회는 23.9%(닐슨코리아 전국기준)를 기록했다. <돈꽃>을 연출한 이는 2006년 MBC에 입사해 <돈꽃>으로 '입봉'한 김희원 PD다. 지난 14일 만난 김 PD는, 대부분의 공을 <돈꽃> 대본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명희 작가를 비롯해 장혁·이미숙·이순재 등의 배우에게 돌렸다. 

"<돈꽃>은 제 공이 적은 드라마죠. 잘한 건 좋은 분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은 것, 딱 하나에요. 결국 연기도 제가 해결할 수 없는 것이고, 음악이나 촬영 모두 이야기는 나눌 수 있지만 결과물들은 다 스태프가 만들어 내는 것이거든요. 전 그저 그렇게 할 수 있는 과정을 만든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냉정한 대본에 뜨거운 연기...독특한 온도 느꼈다"

▲ MBC <돈꽃> 주요 배역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윤서원(한소희 분), 나모현(박세영 분), 강필주(장혁 분), 장부천(장승조 분), 정말란(이미숙 분). ⓒ MBC

- 스태프 롤을 보면 최종회인 24부만 빼놓고는 모두 혼자 연출했다.

"<돈꽃>이 파업할 때 시작하면서, 연출 혼자 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원 없이 할 수 있었다. 사실 입봉 PD가 이렇게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다. 다들 걱정이 많으니까 이것저것 조언을 하다보면 연출이 흔들린다. 그런데 나는 이 작품보다 더 즐겁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있나 싶을 정도였다."

- 무엇보다 화려하면서도 비장한 영상미가 돋보였다는 평이 많았다.

"황성만 촬영감독과는 네 번째 작업이다. 워낙 실력이 출중하고, 영상에 대한 욕심도 많은 분이다. 나와 길게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배우들의 리허설 과정도 함께 느끼고, 감정을 공유하다 보니 잘 맞은 것 같다. 좋은 테크니션은 연출이 연출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면서도 놓치는 것을 짚어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정말 좋은 촬영감독이다."

- 대사의 속도가 무척 느리고, 소리도 아예 없거나 크지 않다는 점도 신선했다.

"첫 대본 리딩 때 장혁과 이미숙이 일부러 목소리를 작게 내는 것을 보고 이 연기톤에 맞춰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데서 오는 집중력이 있으니까. 오디오(소리)는 그렇게 해도, 연기는 굉장히 뜨겁게 하니 좋았던 거다. 이명희 작가의 글은 아주 차분하고 냉정하게 등장인물들을 바라봤고, 드라마 끝까지 누구도 억지로 구원하려 하거나 동정하지 않았다. 그걸 배우들이 뜨겁게 해석하고 연기해 주다 보니 독특한, 그러면서도 기분 좋은 온도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 인물을 화면 구석에 서게 해 여백을 남기거나, 바스트 샷만을 오래 촬영한 장면들도 독특했다. 연출하면서 공간 배치나 인물의 구도에 특별히 신경을 쓴 부분이 있었나.

"<돈꽃>이 결국 권력의 사다리를 올라가는 이야기인 만큼 화면에서도 수직적 구도를 많이 쓰고 싶었다. 4부까지 유심히 보면 의도적으로 필주를 높은 곳에 올려다놓고 찍은 장면이 많다. 처음 (장혁에게) '저 위에 올라가 계세요'했더니 '저길요?'라고 묻더라. (웃음) 그런데 상승을 욕망하는 사람의 느낌, 인물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도를 살리고 싶었다.

바스트 샷의 경우, 결국 드라마도 영상언어이기 때문에 배우의 얼굴로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배우들의 눈빛에 깨끗함이 살아 있어 자신 있게 타이트 바스트 샷을 촬영할 수 있었다. 요즘은 편집법이 빨라 바스트 샷이 1초도 채 안 나가는 일이 많은데 우리는 길게는 1분까지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배우를 믿고 간 거다."

- 주위에서는 모험으로도 받아들였을 것 같다.

"1, 2부 가편집본을 보고 회사(MBC)에서는 '대체 어쩌려고 그러냐' '바로 문 열고 들어가야지 왜 이렇게 느리냐' 등등의 반응이었다. 아무래도 이 시간대(주말 오후 10시대)가 가지는 규칙 같은 게 있었고, 이에 따라 시청률도 따라왔으니 어느 정도는 맞는 이야기였다. 나도 3, 4부 방송까진 '너무 과했나' 싶어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연출은 1부 엔딩신 초고를 본 첫 느낌에서 기인했다. 부천(장승조)과 모현(박세영 분)이 새를 잡으러 뛰어가는 장면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굉장히 느리게 느껴졌다."

"모든 스태프가 건강하고 오래 일할 수 있었으면"

▲ MBC <돈꽃>의 김희원 PD(왼쪽)과 주연 강필주를 연기한 배우 장혁. ⓒ MBC

- 그래도 결국 기존의 주말드라마와 다르다는 평가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게 가장 좋다. 이 시간대에서 다른 시도를 해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는 것 아닌가. 입사한 해 연말에 조연출을 했던 <내 생에 마지막 스캔들>이나 <하얀거탑>, <결혼계약>, <마마> 등 좋은 콘텐츠가 많이 방송되는 시간대가 이 시간대였다. 그런데 우리 잘못인 게, 어느 순간부터 시청자에게 선입견을 심어 준 시간대가 됐더라."

-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없나.

"오늘 아침에도 재방송을 보는데 속으로 '정말 어설프다'고 생각했다. (웃음) 겸손한 게 아니라, 모든 연출자에겐 (드라마가) 잘 됐어도 아쉬운 것만 보일 거다. 특히 아쉬웠던 건 내가 <돈꽃>이라는 작품에 가장 늦게 들어갔다는 점이다. 한 달만 더 일찍 들어갔어도 좀 더 풍성하게 준비했을 텐데….

감사한 건 배우들이다. 나는 항상 '내일 죽어도 아쉽지 않다'는 생각으로 일하려고 한다. 게다가 이번이 입봉인데, 얼마나 난리를 치고 욕심을 냈겠나. '이거 하다가 김희원 죽는다'고 MBC에 소문도 나고 그랬다. (웃음) 그런데 배우들이 한 번도 '그만하자'라든지 '왜 이렇게 찍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 그러잖아도 최근 촬영 현장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알다시피 촬영 현장은 너무 열악하다.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많이 한다. (스태프가) 이렇게 혹사당하고 나오는 결과물을 즐기는 게 맞나 싶기도 하다. 모든 스태프가 즐겁고 행복하게, 그리고 건강하고 오래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시청자의 눈은 높아 가는데 대충 찍는 건 더더욱 해선 안 되는 일일 테고. 빠른 시간 안에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낸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데, 그 집약체인 드라마를 하면서 과연 정의 같은 걸 이야기해도 되는가 동료들끼리는 고민하기도 했다. 일단 가장 중요한 건 스태프에게 정당한 보수와 휴식이 주어지는 일 아닐까."

- 연출자로서 지향하는 목표가 있다면.

"지금 드라마는 어느 때보다 위기인 상황이다. 올 한 해 만들어지는 미니시리즈만 90여 편이라고 하는데, 그게 다 잘 될 수는 없는 만큼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 질적 저하가 초래되기 가장 좋은 시기라는 이야기다. 직업윤리가 많이 퇴색될 확률도 높다. 하지만 결국은 좋은 사람들이 모여 잘 만들 수 있는 현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나 스태프, 배우, 이 산업에 있는 사람들 모두 건강한 동료고 파트너가 되었으면 좋겠다."

- 다음 작품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있나.

"아직은 없다. 다만 올해 동기, 후배들이 줄줄이 '입봉'을 준비하고 있어 기대된다. 다들 반짝반짝한 사람들이라 퀄리티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올 것이다. MBC 드라마국은 정말 좋은 드라마를 만드는 조직이었다. 시청자가 그것을 기억해낼 수 있는 한 해가 되지 않을까. 나는 그냥…'얻어 걸린' 거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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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2018-02-16 09:46:51
무거운 흐름속에 작가의 위도하는 바를 전달하고 있다. 배금주의가 팽배한 한국사회의 재벌들의 녀면을 들어다 볼수 있어 좋았다. 돈에 집착하는 잔혹한 피가 보통사람들에게 소름끼치는 현실을 자연스럽게 접근했다. 과연 우리는 왜 바르게 살아야 하는지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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