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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패키지’, 시대착오적인 판타지

시청률 5%로 화제성 얻었지만... 고정된 성역할 ‘불편’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l승인2018.02.19 10:5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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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파일럿 예능 <로맨스 패키지> ⓒSBS

[PD저널=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 짧은 연휴와 평창올림픽이 겹친 이번 설에는 <무한도전>의 ‘토토가’ 정도를 제외하면 시청자들을 설레게 할 이벤트나 눈여겨볼 파일럿은 없었다. 지난 몇 해 동안 명절 연휴에 파일럿 격전이 벌어진 것과는 사뭇 다른 상황이다.

열정적으로 파일럿을 선보이던 KBS는 아예 기획을 내지 못했고, MBC도 스튜디오 가족예능 파일럿 <문제는 없다>와 <아육대>를 부활하는 선에서 정상화를 대신했다. 그 사이 tvN이 <비밀의 정원>과 <자리 있나요> 등의 파일럿을 2부작 이상으로 편성하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비밀의 정원>은 연예인의 심리 분석을 통해 시청자들이 스타들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만드는 뻔한 흐름의 한계가 두드러졌고, <자리 있나요>는 <한끼줍쇼>와 <세모방> ‘어디까지 가세요?’의 설정과 겹치는 데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의 김준현, 딘딘 ,<세모방> 차오루 등 익숙한 출연자까지 오버랩되며 신선함을 느끼기 어려웠다.

이런 와중에 가장 주목을 받은 파일럿은 SBS가 3부작으로 편성한 <로맨스 패키지>다. SBS는 단 한 편의 파일럿 예능으로 평균 5%대의 시청률을 얻었다. 선택과 집중이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화제성 면에서 여타 예능들을 압도했다.

문제는 이 화제성이 신선도나 재미에 대한 환호가 아니라는 점이다. <로맨스 패키지>는 일상의 공감대, 색다른 라이프스타일의 제시 등이 키워드인 오늘날의 트렌드 속에서 사라질 만하면, 끈질기게 명맥을 이어온 또 한 편의 일반인 ‘이성 매칭' 연애 프로그램이었다.

이 불사조 같은 예능 장르는 남녀의 '썸'이라는 궁극의 설정 하에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 지금까지의 ‘이성 매칭 프로그램’을 보면 그렇다. 시청자들이 롤플레잉을 하듯이 출연자들에게 감정 이입을 하게 만드는 것이 1차 목표인데, 어떻게 포장하든 기본적인 몰입 요소는 현실적인 욕망과 본능에서 나온다.

이것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실제로 이성과 만날 때 이성적으로 고귀한 판단만으로 선택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를 사람들 앞에 내세우는 대중문화 콘텐츠는 사람들이 스토리와 선택 배경을 수긍하고 따를 수 있도록 다양한 측면이 고려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외모와 스펙 등을 노골적으로 앞세운 <로맨스 패키지>는 그 면면이 너무나 적나라하다.

<로맨스 패키지>는 여러 측면에서 <짝>의 럭셔리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출연진의 스펙과 외모가 그렇다.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평균적인 일반인 참가자들이 아니라 인스타그램이나 여타 방송과 매체에서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선남선녀’가 출연한다. 그리고 이들이 모인 공간의 수준도 전원의 펜션에서 도심의 호텔로 업그레이드됐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는 외형만큼 고급스러워지지 못했다. 남녀의 ‘썸’을 순수한 이끌림이나 리얼함보다는 구닥다리 성역할과 속물적인 가치관을 내세워 전시한다. 외모나 스펙에서 나오는 호감 말고, 성격이나 가치관, 서로의 궁합을 알 수 있는 프로그램은 전무하다.

그 대신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짜고짜 몸매를 드러내고 스킨십을 할 수 있는 수영장 데이트가 펼쳐진다. 남자 출연자의 럭셔리 브랜드 자동차에 여성들이 랜덤으로 타는 설정은 너무 나갔다. 외모와 첫인상만으로 판단하다 직업과 재산 공개를 한 다음 여성 출연자들이 호감 있는 남자 출연자들을 다시 지목해 반전 요소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판타지의 노선은 분명하다.

▲ 지난 16일 방송된 SBS 파일럿 예능 <로맨스 패키지> ⓒSBS

사회적으로 젠더 감수성이 중요시되고, 삶의 방향성과 가치관에 대한 고민이 첨예한 시기에, 여자는 외모와 나이, 남자는 능력과 재력 등으로 손쉽게 나누는 성역할을 볼거리로 내세운 점은 불편하게 다가온다. 이런 것들로 로망을 실현하겠다는 노골적인 접근은 파일럿임에도 전혀 새로움을 주지 못한다.

단편적인 연애의 조건과 판타지의 발현은 발전적이지도, 신선하지도 않다. 삶의 양식에 관한 고민을 재미의 한 영역으로 가져오고 다양한 정서적 접근을 시도하는 요즘 예능에 비해 오히려 퇴보했다.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웠던 <나 혼자 산다>의 듀오 전현무, 한혜진은 부가적인 장치일 뿐이다. 종합하자면 지상파에서, 그것도 명절 연휴에 편성한 파일럿이라기엔 로망과 판타지의 격이 낮다.

물론, ‘누구나 다 그렇게 살지 않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미국이나 유럽 리얼리티쇼처럼 더욱 솔직해져야 한다. 차라리 ‘재력 있는 이성이 좋아’, ‘여자는 자고로 예뻐야지’ 따위의 말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다면 인정한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리얼의 ‘향’만 빌려 와선 곤란하다.

<로맨스 패키지>는 속물적인 현실 논리로 판타지를 만들고자 한다. 선남선녀의 아름다움 위에 연애의 풋풋하고 설레는 감정을 한 겹 얇게 발랐다. 이런 전략으로는 기존 연애 예능과 다른 차이를 만들 수 없다. 그래서 <로맨스 패키지>에 SBS가 단독 파일럿으로 편성할 만큼 특별한 가치가 포함되어 있는지, 대중과 눈높이를 맞춘 오늘날 예능으로서 어떤 지향을 갖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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