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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메스를 든 의사의 윤리

장기도 사고파는 비정한 세상, '진정한 의사'는 왜 필요한가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l승인2018.02.20 16:4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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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tvN 월화드라마 <크로스>에는 강인규(고경표)라는 문제적 의사가 등장한다. 그는 의사지만 복수를 꿈꾸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가 든 메스는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다.

복수를 위해 든 메스가 ‘살인검’이라면 생명을 위해 든 메스는 ‘활인검’이다. 같은 도구가 이렇게 정반대의 의미를 갖는 것. 이것이 바로 병원이라는 특정한 공간에 비친 세상의 풍경이다.

강인규가 이런 양면적인 얼굴을 갖게 된 원인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나간 아버지 대신 지병을 앓는 동생을 돌봐야 하는 가장이었다. 아버지도 동생도 그리고 그 자신도 고통을 받는 근본적인 이유는 결국 돈이다. 아픈 동생을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지만 보호자도 없고 돈도 없는 그를 병원은 거부한다.

그는 심지어 이토록 가족 모두가 힘겹게 된 것이 동생 때문이라며 그를 길가에 버려둘 결심까지 한다. 동생이 사라지면 이 모든 고통이 끝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가던 길을 되돌려 강인규는 동생에게 돌아가 사죄한다. 다시는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어찌 보면 돈이라는 현실과 생명 사이에서 그는 선택한 것이다. 생명을 버리고 현실을 혼자 살아가겠다고 마음먹어도 결코 그는 고통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아버지가 장기 밀매단에 의해 처참하게 장기들이 적출된 채 사체로 발견되고 그 범인인 김형범(허성태)이 검거되자, 강인규는 복수를 꿈꾼다. 복수를 위해 의사가 되고 김형범이 수감되어 있는 교도소에 의사로 자원한다. 그래서 천천히 고통스럽게 그를 죽이려한다. 그의 메스는 어느새 살인자의 그것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꺼져가는 환자의 생명을 외면하지 못한다. 김형범과 공모한 장기밀매단에 의도적으로 접근한 강인규는 거기에 붙잡혀 있는 소녀를 업고 도망치며 어린 시절 길가에 버렸던 동생을 떠올린다. 동생에 대한 아픈 기억이 생명을 구하려는 그의 의사 본능을 만들어낸다.

▲ tvN 월화드라마 <크로스> 스틸컷. ⓒtvN

흥미로운 건 강인규가 든 메스가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살인자의 칼이 될 수도 의사의 칼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인간의 장기 역시 누군가를 살리는 장기 기증자의 고귀한 선택이 될 수도 또 팔아치우면 돈이 되는 장기밀매단의 범죄적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본래 누군가의 장기를 꺼내 다른 몸에 이식한다는 행위는 액면 그 자체로 보면 끔찍하게 다가오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숭고한 행위이기 때문에 용납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자본은 이러한 숭고한 행위마저 돈과 권력으로 거래되는 현실을 만든다. 어린 시절 강인규가 돈이 없어 병원에서 외면 받았듯이, 장기이식은 때론 돈과 권력이 있는 자들에게 우선권이 돌아가 결국 없는 이들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겪기도 한다.

장기밀매단의 그 끔찍한 범죄들은 우리를 소름 돋게 만들지만, 그렇게 적출된 장기는 거래되어 결국 어느 병원에서 누군가에게 이식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병원이 이 끔찍한 범죄에 공모되어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든 열려있다.

실제로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선림병원의 손영식 이사장(장광)이나 이상훈 병원장(김종구)은 생명에도 귀천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유력 정치인이 당장 장기이식이 필요해지자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태를 보인다. 강인규는 당장 김형범이라는 원수와 그 일당에 대한 복수를 꿈꾸지만, 조금씩 이 병원이 이 비극적인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알아간다.

그래서 결국 <크로스>가 말하려는 건 어째서 진정한 의사가 필요한가 하는 새삼스럽지 않은 질문이다. 의료 기술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그 기술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모든 생명 앞에서 귀천 없이 ‘신의 가호’를 기원하며 메스를 들 수 있는 의사만이 이 비정한 세상에서 어떤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건 단지 병원과 의사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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