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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킨 검프, 삼성 대미 로비 창구 역할... MB측 '사기' 주장 신빙성 없어

[PD저널=전규찬 언론연대 공동대표(한예종 방송영상과 교수)] 에이킨 검프(Akin Gump Strauss & Feld). 미국 워싱턴DC에 본사를 둔 회사다. 1800여명의 직원, 900명에 이르는 변호사 인력을 보유한 로펌이다.

미국 내 주요 도시는 물론이고, 홍콩과 두바이 등 세계 각지 20곳에 사무실을 열고 있다. 미국에서 수익성이 가장 높은, 유명 로펌 중 하나로 손꼽힌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2016년 총수입이 약 10억 달러로 집계된다. 누가 봐도 사기꾼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이 로펌과 소속 변호사 김석한이 엉뚱하게 ‘사기’로 몰렸다. 삼성이 다스를 대신해 소송비를 대납했다고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이 검찰에 진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MB측은 화들짝 항변하고 나섰다. ‘단독’으로 보도한 채널A를 통해 “다스 소송을 대리한 로펌 '에이킨 검프'의 김석한 변호사가 무료 변론을 미끼로 접근해 왔고, 변론도 제대로 하지 않은 변호사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라고 변명한 것이다.

▲ 다스의 미국 내 소송비 대납 혐의를 받고 있는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뇌물공여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다. ⓒ뉴시스

BBK 사건 당시 김경준의 옵셔널벤쳐스 변호를 맡은 재미 변호사 메리 리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이를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라고 일축한다. 에이킨 검프는 한국으로 치면 ‘김앤장’ 레벨에 해당하는, 명망과 인맥을 갖춘 막강한 조직이다. 로비 실력이 탁월한 법률회사다. 이 로펌이 “법정에 뜨면 개인 실력보다는 회사 이름으로 판사를 움직일 수 있을 정도”란다.

이 로펌의 변호사가 무료 변호를 미끼로 다스에 접근했다는 주장은 가당치도 않다고 리 변호사는 잘라 말했다. 대리인 자격으로 “삼성의 목적을 위해 접근했을 수는 있다”고 덧붙였다. 변론 시간이 3시간이 채 안 된다는 MB측 주장에 관해서도 그녀는 “주워 담을 수 없는 거짓말”이라고 되받았다. 에이킨 검프는 수임 때부터 소송이 끝날 때까지 미국 법무부와 스위스 제네바 검찰을 찾는 등 소송 전반에 관여하고 소송을 사실상 총괄 지휘했다고 주장했다.

‘사기꾼’으로 내몰린 이들이 어떻게 응대할지는 에이킨 검프와 김석한 두 당사자가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우리에게는 삼성 대납 의혹을 철저히 밝히는 몫만 남는다. 거짓 선전 프레이밍에 맞서, 진실 발굴의 탐사취재 노력에 더욱 열중해야 한다. MB측이 더 이상 거짓말을 못하고 채널A가 선전채널로 계속 플레이하지 않도록, 제대로 된 저널리스트들이 명백한 사실과 엄중한 진실로써 저들을 제압하고 검찰을 압박하는 게 정답이다.

독자인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삼성의 소송비 대납 의혹과 MB측의 사기 변론 주장 사이에 끼인 에이킨 검프라는 미국 대형 로펌에 관해 좀 더 공부하는 게 좋다. 다스와 MB의 미스터리와도 연관된 삼성, 그 외부의 핵심 고리가 에이킨 검프다. 또 삼성과 에이킨 사이 오랫동안 맺어진 파트너십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는 게, 국가의 경계를 훌쩍 넘어선 사안의 복잡성과 중대성을 따라잡는 데 필수적이다.

에이킨 검프는 미 의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 중 하나다. 워싱턴 로비업계를 지칭하는 소위 ‘K스트리트’의 주요 멤버이기도 하다. 클린턴과 부시 대선 캠페인을 이끈 인물 상당수를 배출한 회사며,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와 깊은 끈이 닿아있다. 최근 트럼프에게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해 특검에 응하지 말라고 조언해 구설에 오른 변호사도 바로 이 회사 출신이다.

당연히 에이킨 검프는 정치인 모금에 적극적이다. 상당 액수의 정치 자금을 매년 민주당과 공화당에 제공한다. 미국 한 시민단체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이 회사는 양당에 총 252만 달러에 이르는 기부금을 냈다. 우리 돈으로 약 26억 8천만 원에 이르는 규모다. 전체 로펌에서 세 번째로 많다. 이런 로펌에 유명 고객들이 끌릴 수밖에 없다. 미국 대기업은 물론이고 초국적 자본, 그리고 한국 재벌들도 단골 리스트에 올라있다.

제너럴 일렉트릭, 구글, 미국영화협회(MPAA), 나이키, 미국 폭스바겐, 쉘 오일 등을 공개된 명단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국내 기업으로서는 유일하게 삼성전자가 오랜 고객이다. 앞서 언급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메리 리 변호사는 에이킨 검프가 1998년부터 20년 동안 삼성전자 미국법인 법률자문역을 맡아왔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회사를 삼성의 미국 내 법무팀 정도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삼성과 에이킨 검프는 이런 관계다.

구체적으로 그 역할은 뭘까. 무엇보다 에이킨 검프가 미국 내 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삼성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특별한 로비 창구라는 사실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삼성은 핸드폰 갤럭시 최대 시장으로 떠오른 미국에서 로비력 측면에서는 애플에 크게 뒤진다는 평가를 들어왔다. 실제 2011년 삼성이 지출한 로비자금은 15만 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진다.

갈수록 애플과의 시장경쟁, 특허전쟁은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삼성은 로비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자금도 크게 늘린다. 2012년, 90만 달러로 액수가 증가했다. 물론 2백만 달러 정도를 지출하는 애플에 비해서는 여전히 한참 낮은 수치지만, 우리가 주목할 건 그 중 상당 액수가 에이킨 검프를 통해 집행되었다는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76만 달러 정도가 에이킨 검프로 간 걸로 알려진다.

에이킨 검프가 사실상 삼성 대미 로비를 전담한 셈이며, 투입되는 액수는 이후 계속 증가한다. 미국 내 로비 내역을 추적한 <책임정치센터>에 따르면, 2013년에 삼성은 총 122만 달러를 로비에 들인다. 물론 에이킨 검프를 통해서며, 액수는 다음 해 더욱 늘어난다. 워싱턴에서 발행되는 매체인 <롤콜>은, 삼성이 2014년 1/4분기에만 에이킨 검프를 통해 무려 100만 달러의 로비자금을 집행했다고 보도했다.

저작권과 특허·상표권 문제, 통신 인프라 이슈 등과 관련해 총 아홉 명의 로비스트들에게 지불된 돈이라고 했다. 단일 기업이 일개 로비회사에 이 정도 액수를 내놓는 게 흔치 않은 일인지, <롤콜>은 기사 제목을 “삼성 에이킨 검프에 100만 달러 로비를 위해 지불”로 뽑았다. 에이킨 검프는 바로 이렇게 결정적 대미 로비 창구로 삼성과 오랫동안 깊은 사연을 맺고 있었다.

이런 에이킨 검프가 20년 동안 삼성 관련 재판에서 어떤 변호역을 맡았는지는 유감스럽게 알 수 없다. 수집 가능한 정보가 현재로서는 전혀 없다. 내공 있는 탐사저널리스트들이 취재해 밝힐, 중요한 숙제다. 다만 지금의 자료로도 MB측이 채널A를 통해 사기범이라 주장한 에이킨 검프는 전혀 그런 상대가 아님은 금방 드러난다. 초국적 자본 삼성과도 깊이 관계된 초국적 로펌임이 쉽게 확인된다.

▲ 지난 19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 화면 갈무리.

삼성이 이 막강한 로비회사에 수십억 원의 변호사 수임료를 대납한다. MBC는 검찰이 “이건희 회장 원포인트 특사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계 김석한 변호사가 다스 관계자와 통화하고 “다스 규모 정도의 회사가 수임료를 부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무료 변론을 제안”한다. 그리고 현직 대통령이 실소유주로 알려진 다스의 변호사로 나선다.

김석한은 결국 140억 원을 김경준으로부터 받아내 다스에 돌려준다. 삼성으로부터 수임료를 대납 받은 에이킨 검프가 총괄 지휘해 얻은 성공적인 결과다. 이런 의혹을 팩트로 입증해내는 과제가 한국 검찰과 저널리스트들에게 남는다. MB는 물론이고 삼성과 관련해 매우 중대한 일이다. 그 책무의 부담이 적은 아마추어 포스트저널리스트 우리는 이제 뭘 더 알아볼 것인가. 김석한이라는 드러난 주요인물의 행적을 좀 더 면밀히 추적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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