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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소리가 사라진 한낮의 병동

[무소음 세상⑤] 침묵의 병실 안병진 경인방송 PDl승인2018.03.08 11: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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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안병진 경인방송 PD] 아내가 입원했다. 책상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하는 작가들의 고질병, 디스크 질환 때문이다. 이번에는 악관절에 무리가 와서 입까지 크게 벌어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가본 입원실의 풍경은 기이했다. 낮인데도 침상 마다 커튼을 닫고 있었다. 커튼을 하나씩 열어 볼 수도 없고, 아내를 찾기 위해 소리를 내어 불러야 했다.

"잘 시간도 아닌데 왜 커튼을 다 치고 있어?"

"목소리 낮춰."

크지도 않은 목소리가 전염병이라도 되는 양 아내는 급하게 내 입을 막았다. 그러고 보니 모두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병동은 너무 조용했다. 신축을 해서 말끔해진 병실은 내 기억 속의 풍경과 너무 달랐다. 싫으나 좋으나 다 같이 봐야했던 중앙의 텔레비전은 사라지고, 개별 침상으로 옮겨 온 TV는 이어폰을 꽂아 들어야 한다.

냉장고도 각각 있어서 반찬통에 자기 이름을 써 붙이지 않아도 된다. 병실 사람들과 나눠먹기 위해 가져온 귤 봉지를 아내의 작은 냉장고에 모두 밀어 넣었다. 사람들이 종일 침상 커튼을 닫고 있어서, 옆에 누가 있는 지도 모른다고 한다. 벽만 없을 뿐이지 아파트의 삶과 똑같았다.

내성적인 성격의 아내라 병동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내야하는 것이 걱정이었는데, 오히려 상황은 반대였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방해가 될까봐 밤에 책 보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고 한다. 왁자지껄하리라 생각했던 병동의 공기는 중환자실처럼 무거웠다. 문병 온 사람들조차 침대 곁이 아니라 휴게실에 가서 이야기를 나눈다. 답답했던 아내는 나를 보자마자 말을 쏟아냈다. 입이 잘 벌어지지도 않는데, 터진 말문은 닫힐 줄 몰랐다.

"자기가 먼저 커튼을 내려 보지 그래?"

"아니, 그런 분위기가 아니야. 그러면 불편해 질 거 같기도 하고."

공동체 생활 같은 예전 입원실 분위기를 떠올리면 차라리 이렇게 지내는 것이 아내에겐 편하리라. 듣기 싫은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고, 간혹 참견을 좋아하는 이웃의 관심도 원천봉쇄할 수 있다. 알고 지내서 감당해야할 피로보다 혼자 입을 닫고 지내야하는 갑갑함이 낫다. 내가 그어 놓은 선 안으로 타인이 들어올 여지는 없다. 그것이 이 도시에서 우리가 선택한 삶이다. 외롭지만 편한, 무소음 세상. 4인실의 작은 공간이라 그것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났을 뿐이다.

"여보, 나 잘 때, 혹시 코 골면 어떡하지?"

"……."

휴게실로 나온 환자들은 문병 온 이들에게 병실이 너무 조용해서 답답하다며 호소한다. 이들 중 누군가는 아내와 같은 병실을 사용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병원을 나서며 내가 입원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커튼을 닫고 생활하는 데 나만 열고 지낼 수 있을까.

"저기, 저희 인사라도 하고 지낼까요?"

같은 아파트에 몇 년을 살면서도 하지 않은 말을, 잠시 머무는 이곳에서 할 리가 없다. 이제 이런 말은 무모하게 들리는 세상이 되었다. '무소음 세상'. 사라지는 소리를 녹음하러 다니려는 나의 계획은, 침묵의 병동에서 다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 김목인 3집 앨범 사진.

(포크 뮤지션 김목인이 노래한 ‘오후의 병실’)

김목인- 오후의 병실

 

창밖은 매일 지나던 길인데
이 안은 천지 차이군
정말 온갖 군상들이 모여 있네
정오의 병실
이만큼 진풍경도 없으리
의사야 안정을 취하라지만
그럴 수 있나?
옆의 청년도 전화 2대로 비즈니스
어제 들어온 택시기사는 아침 몰래 영업 나갔고
텅 빈 침대만 만지며 가족들이 말하네
오, 미련한 양반

청소하러 온 아줌마는
휴지를 비우다
인생 참 재밌게 사나 봐요, 하며
기타를 가리키고

식판 들고 온 불쌍한 아주머니
하나 줄여서 오면 또 한 명 없고
보험회사 직원도 침대에 누워 수액을 맞네
돌아온 택시 기사에게 충고하며
형님, 좀 누워 계시죠? 
장난으로 잠근 문에 간호사도 되돌아갔네
온갖 침대 다 참견을 하며
쥬스도 돌리고
두유도 돌리는

정오의 병실
이만큼 진풍경도 없으리

 


안병진 경인방송 PD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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