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공연 선곡이 중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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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공연 선곡이 중요한 이유
선곡에 '동질성 회복' '이질성 확인' 방향 담겨
  • 오기현 한국PD연합회 통일특위 위원장
  • 승인 2018.03.20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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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오전 판문점 통일각에서 열린 평양 공연을 위한 예술단 실무접촉에서 남측 수석대표로 나선 윤상 (왼쪽)음악감독 등과 북측 수석 대표 현송월 (오른)삼지연관현악단 단장 등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은 박형일 (오른쪽부터)통일부 국장, 윤상, 박진원 청와대 통일비서관실 선임행정관, 북한 안정호 삼지연 관현악단 무대감독, 북한 현송월 삼지연 관현악단장, 북한 김순호 행정부단장. ⓒ뉴시스(사진=통일부 제공)

[PD저널=오기현 한국PD연합회 통일특위 위원장(SBS PD)] 분단의 철책에도 훈풍이 분다. 가수 윤상 씨를 수석대표로 하는 남측대표단이 평양공연 실무협의를 위해 판문점으로 떠났다.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이어지는 한반도의 평화분위기가 점점 더 고조되고 있다.

윤상 씨는 선곡 이야기를 주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평양공연은 조용필, 이선희, 윤도현, 백지영등 대중가수들의 공연이 주를 이루고, 지난번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처럼 관현악단도 참여할 것이라고 한다.

과거 남측 방송사들은 6.15선언을 전후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모두 일곱 차례 대규모 방북공연을 진행했다. 담당PD들은 분단 극복을 위해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고민했다. 그것은 공연 연출의 방향을 ‘동질성의 회복’에 둘 것인가, 아니면 ‘이질성의 확인’에 둘 것인가 하는 고민이었다.

동질성의 회복에 방점을 두면 전통민요, 일제 때 가요, 혹은 북한에서도 많이 불리는 운동가요 등을 선곡해야 한다. 이질성의 확인에 방점을 두면 지금 남에서 한창 유행하는 아이돌들의 댄스가요 혹은 트롯가요 위주로 선곡해야 한다. 이질성의 확인이란 현재 우리의 (달라진)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자는 의도다.

이런 고민이 필요한 이유는 어떤 목표를 설정할 것인가에 따라서 선곡과 가수 섭외의 방향이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동질성 회복에 방점을 두는 근거는 남북의 평화와 통일은 단순한 국토와 정치적 통합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고, 활발한 교류를 통해 문화적 동질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질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평화도 없고 통일도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따라서 동질성의 회복을 당위의 문제이자 하나의 진리로 받아들이는 시각이다.

이질성의 확인에 방점을 두는 사람들은 분단 이후 남북의 현실적 차이를 인정하고, 이질성 자체의 존중과 이해를 통해서 공존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기적으로 볼 때 현재 남북 문화의 차이는 상호 신선한 자극과 창의적인 발상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이질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의사소통의 코드로 협력해 통일의 공간을 열어가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주장이다.

과거 동질성의 회복을 목표로 했던 공연은 1999년 12월 평양봉화예술극장에서 열린 MBC ’제1회민족통일음악회'(연출:주철환)와 2002년 9월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MBC ‘평양특별공연-이미자의 평양동백아가씨'(연출: 방성근)다.

민족통일음악회에는 신형원, 안치환, 김종환, 오정혜, 현철 등이 출연했으며, ‘사랑을 위하여’,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등 당시 유행곡들도 있었으나, 민요 ‘진도아리랑’,  일제 때 가요(북한에서는 계몽기 가요라고 한다)인 ‘눈물 젖은 두만강’, ‘홍도야 우지 마라’, 운동권 가요로 인식되던 ‘아침 이슬’ 등이 선곡됐다. 무엇보다 공연 타이틀 ‘민족통일음악회’에서 볼 수 있듯이 평양 관객들을 고려한 동질성 회복의 의도가 강하게 나타난 공연이었다.

‘이미자의 평양동백아가씨’ 공연에서는 이미자 자신의 히트곡인 ‘동백아가씨’를 비롯해서 ‘애수의 소야곡’등 일제 때 가요를 불렀다. 남의 장년층뿐 아니라 북에서도 쉽게 어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이미자 씨를 내세운 것 역시 민족적 동질성에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이질성의 확인에 무게를 둔 대표적인 공연은 동평양대극장에서 개최된 2002년 9월 MBC ‘오! 통일코리아'(연출 방성근), 2003년 10월 SBS ‘류경정주영체육관 개관기념공연'(연출: 백정렬), 2005년 8월 ‘조용필 평양공연'(연출: 배철호)이다.

‘오! 통일코리아’에선 최진희, 성악가 임웅균, 윤도현 등이 무대에 섰다. 특히 윤도현은 진솔한 무대 매너와 파격적인 창법으로 관객과 사이에 놓인 장벽을 제거했다. 전통과 맞닿아 있긴 하나 전위적인 그의 창법에 북한 관객이 호감을 표시한 것은 예상 밖이었다. 북한 전역으로 생방송된 덕분에 한동안 북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 윤도현 신드롬이 일어날 정도였다.

2005년 평양공연에서 조용필은 철저히 자신의 음악세계를 평양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당초 절반 정도는 북측 가요나 민요 등을 불러달라는 요청을 조용필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북측 관객들의 눈 높이에 공연내용을 맞춘 것이 아니라 북측 관객들에게 남측 가수로서 자신을 봐주길 원했다. 당시 자신의 서울공연 컨셉트를 평양에서도 거의 동일하게 유지했다.

공연 초기에 냉랭한 반응을 보이던 관객들은 공연 중반 이후 조용필의 노래를 따라 부를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 공연이 종료되자 7000명의 관객은 기립박수로 앵콜을 요청하는 등 조용필의 의도가 적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동질성의 회복’과 이질성의 확인’은 방북대중공연의 컨셉트로 각자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 동질성의 회복은 통합의 과정에서 그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공감대의 확산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며, 이질성의 확인은 끊임없이 재창조되는 역동적 삶의 환경에서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과 가치관을 만들어 가는 데 필요하다. 전자만을 고집할 경우 문화적 풍요로움은 사라질 것이고 후자만을 강조할 경우 갈등과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다.

어떤 방식이 더 효율적인지 정답은 없다. 2005년 이후 중단된 남측 가수의 평양공연, 보수정권 이후 조성된 남북간의 긴장관계 등을 고려한다면 ‘동질성 추구’의 컨셉트를 유지해야 하고, 북측에 광범위하게 확산된 것으로 알려진 남의 대중문화(한류), 미래세대인 젊은 층의 참여와 관심유도를 위해서는 ‘이질성의 확인’ 컨셉트가 바람직하다.

이번 실무접촉의 대표로 대중예술가인 윤상 씨가 발탁된 것은 무척 다행스럽다. 가수, 작곡가, 프로듀서로서 다양한 실무경험과 이론을 겸비한 그가 유연한 자세로 남의 공연예술문화를 북측 관객들에게 전달할 것이라고 믿는다. 모처럼 재개된 남북교류의 끈이 오래 동안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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