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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짝이 내게로 온 날 36] 나이가 익어갈 무렵

김사은 전북원음방송PD·수필가l승인2018.03.23 17:3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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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수필가] 가까운 친구가 ‘명퇴 발표 났다’며 ‘30년 6개월 교사 끝’이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친구는 어느 틈엔가 퇴직을 염두에 두고 마음의 준비를 해왔던 것이다.

사범대학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영어교사로 교직을 시작한 친구는 결혼하고 스스로 생계형 교사를 자처하며 맞벌이로 알뜰하게 살아왔다. 2년 터울로 아들, 딸을 낳아 기르는 동안 한 번도 타인의 손을 빌리지 않고 오롯하게 학교생활과 육아, 교육에 집중했다.

집에 TV를 없애고 학원이나 과외 한번 시키지 않은 채 밤낮으로 공들인 덕분인지, 큰 아들은 서울대 경제학부에 턱 하니 붙어줬고 딸은 원하는 대로 의대에 진학했다. 그녀가 가족, 특히 자녀에 대해 헌신한 과정을 돌이켜보면 친구지만 경외심이 절로 난다.

어린 시절 톡톡 튀는 재능과 끼가 넘쳐난 친구였기에, 외교관이 되고자 했던 자신의 꿈은 접어두고 철저하게 자신을 희생하고 가족에게 헌신 봉사하는 모습은 의외였다. 그렇다고 그녀가 극성스러운 어머니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때가 되면 간식과 식사를 준비해주고 아이들이 공부하는 동안 그녀는 식탁에서 책을 읽으며 다만 함께 할 뿐이었다.

딸의 대학 진학을 끝으로, 친구는 사실상 ‘생계형 교직생활’을 정리하고 남은 삶을 자신에게 집중하겠다고 고백한 바 있으므로 그녀의 명퇴가 충격적이지는 않다. 친구가 원하는 대로 즐겁고 유익한 여생을 즐길 수 있기를 응원했다.

사실 친구의 문자에서 내가 주목한 부분은 ‘30년 6개월’이다. 친구와 나는 비슷한 시기에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첫 직장인 지역 신문사에 기자로 합격한 것이 1988년 8월인데, 그녀도 비슷한 시기에 교사로 임용된 것이어서 기억이 새롭다.

물론 나의 경우, 몇 번의 이직으로 한 직장에 오래 있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내가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연수는, 그녀처럼 30년 6개월이다. 물론 나는 현재 명퇴의 의사가 없으므로 그녀보다 조금 더 오래 직장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거라 본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은 은퇴를 논할 수 없는 처지다. 나도 생계형 직장인이기 때문이다.

제발 나같이 오래 된 가수한테 은퇴란 말은 마세요 
몸은 비록 최희준 선배지만 마음만은 H.O.T.랍니다 

제발 나같이 오래 된 가수한테 은퇴란 말은 마세요 
다른 직업엔 퇴직금도 있지만 가수한텐 퇴직금도 없답니다 

제발 나같이 불행한 가수한테 은퇴란 말은 마세요 
평생에 가수왕 한번도 못해보고 가요톱텐 한번도 못꼈답니다

 제발 나같이 불행한 가수한테 은퇴란 말은 마세요 
히트곡 한곡 없이 삼십년을 버텼으니 오죽허면 여북이나 했겄습니까? 

제발 나같이 가난한 가수한테 은퇴란 말은 마세요 
어린 딸자식 학자금도 내야하고 아들대학 등록금도 내야합니다 

제발 나같이 가난한 가수한테 은퇴란 말은 마세요 
두번 이혼 위자료를 지불하는 바람에 두번이나 파산당한 사람입니다 

제발 나같이 불쌍한 가수한테 은퇴란 말은 마세요 
정작 은퇴할 사람은 저위에 많은데 왜 나만 물러나라 하시나요 

제발 나같이 불쌍한 가수한테 은퇴란 말은 마세요 
왜 나만 은퇴를 걱정해야 되나요 그것 댁에 사정도 그럴껍니다 
그건 남에 얘기가 아닐껍니다 제 앞에서 은퇴얘기 하지마세요 

(조영남 노래 <은퇴의 노래> 가사 )

“은퇴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너무나 사실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에 웃음을 터뜨렸다. 가수의 개인사는 차치하고라도 정작 은퇴할 사람은 저 위에 많은데 왜 나만 물러나라고 하는 부분이나, 왜 나만 은퇴를 걱정해야 하느냐는 대목도 꽤 설득력이 있다. 선배들 가운데는 35년을 거뜬히 채우고 퇴직한 분들도 계시지만, 가까운 친구가 퇴직했다 하니 정말 은퇴가 남의 얘기가 아닌 듯하다.

올해는 첫 직장이었던 신문사의 창간 30주년이 되는 해다. 입사 동기 중에는 제법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어서 7~8세까지 나이차가 있었으니 그중 몇은 회갑도 지냈을 거라는 계산이 선다. 갑자기, 세월이 나이를 데리고 들이닥친다.

봄이 지나도 다시 봄 여름 지나도 또 여름
빨리 어른이 됐으면 난 바랬지 어린날엔
나이 열아홉 그 봄에 세상은 내게 두려움
흔들릴 때면 손잡아줄 그 누군가 있었으면
서른이 되고 싶었지 정말 날개달고 날고싶어


이 힘겨운 하루 하루를 어떻게 이겨나갈까 무섭기만 했었지 
가을 지나면 어느새 겨울 지나고 다시 가을
날아만 가는 세월이 야속해 붙잡고 싶었지
내나이 마흔살에는 다시 서른이 된다면
정말 날개달고 날고싶어 

그 빛나는 젊음은 다시 올수가 없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겠네

우린 언제나 모든걸 떠난 뒤에야 아는걸까
세월의 강위로 띄워보낸 내 슬픈 사랑의 내 작은 종이배 하나

(양희은 노래 <내 나이 마흔살에는> 가사 일부)

20대 중반 의기 충만한 기자로 열심히 뛰었고, 결혼하고 30대에는 프리랜서 작가로 속 깊은 방송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내 목소리를 내는 40대를 준비하던 차, 현재의 직장과 인연이 되어 방송과 글쓰기를 병행하며 계획대로, 나름 원하는 삶을 충실하게 살고 있다고 자부해 왔다.

나보다 앞서 나이 마흔 되고 쉰을 넘긴 선배들이, 그 큰 고비의 숫자를 힘겹게 넘길 때마다 똑같이 했던 이야기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는데, 마흔이 되고 쉰을 넘기면서 선배들의 이야기에 절대 공감하게 됐다.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 일수록, 역설적으로 절대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마흔, 쉰, 그 고비마다 전력질주를 한 사람들은 탈진하고 만다. 혼신을 다해 살아온 만큼 뼈에 사무치는 고통을 기억하는 것이다.

운명이 나를 안고 살았나 내가 운명을 안고 살았나
구비구비 살아온 자욱마다 가시밭길 살아온 내 인생
다시 가라하면 나는 못가네 마디마디 서러워서 나는 못가네
지는 해에 실려버린 내- 사랑아 바람처럼 사라져 간 내 인생아
아- 사랑이여 눈물이여 묻어버린 내 청춘이여 허
사랑은 다시 오라 나를 부르고 인생은 눈물되어 나를 떠-미네 

(류계영 노래 <인생> 가사 일부)

나의 50대는 무엇이 문제였을까. 예고 없이 찾아온 암과의 투병 때문에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못한 채 정신없이 쉰살을 맞았다. 미래의 계획보다는 당장의 생존이 급박했고 하루하루를 버티어 내는 것이 최대의 목표였다. ‘미래’라던가 장차 계획 같은 것은 사치에 불과했다. 나의 50대는 ‘라이프 플랜’에서 빠져있었다.

지금 나는 나이와 직면해 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체력과 신체적 노혼함, 그리고 후배와의 교감이다. 시력은 급속히 떨어지고 체력은 바닥을 헤맨다. 신체적으로 기능이 저하되어 전두엽은 급속히 퇴화하고 모든 것은 감퇴 일로다. 타인과의 교감에서 이해와 배려보다는 섭섭함이 우선하고 맺힌 것은 뱉어낸다.

무엇보다 ‘참고 싶지 않다’는 조항이 신념처럼 마음에 똬리를 튼다. 전에 없던 현상이다. 조언이나 직언을 하다보면 옳은 말이라도 외면당하기 일쑤고, 그 외면은 또 다른 섭섭함을 양산하여 소통의 부재를 야기한다. 이러한 현상은 전형적으로, 늙어감의 현상인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윗세대와 느꼈던 세대차의 이질감이 순서가 바뀐 것이리라.

그리하여 다시 오래전 내가 선배를 대하는 자세를 반추해 봤다. 어떤 선배는 너그럽게 넘어가고, 어떤 선배는 섭섭하기도 했겠다. 그래도 변명 같지만, 윗분을 알뜰하게 모시고자 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 몸을 아프게 하고
매일 해결해야 하는 일 때문에 내 시간도 없이 살다가
평생 바쁘게 걸어 왔으니 다리도 아픕니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 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 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 마디 지친 나를 안아 주면서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는 그 말을 해 준다면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할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노사연 노래 <바램> 가사 중)

나이를 거꾸로 헤아려 보니, 언제인들 편안한 날은 없었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았고 온 힘을 다해 버티었다. 그래도 고마운 것은, 내 주위에 언제나 나를 잡아주는 따뜻한 손길과 지친 영혼을 위로해줄 가족이 있다는 것. 따지고 보면 내가 산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해온 것이다.

나 혼자 저절로 된 것은 없었고 때에 따라 곳에 따라 누군가의 인도와 동행이 있었다. 오랜 인연으로 혈연보다 더한 정을 나눈 인연도 있지만, 더러 섬광처럼 나타나서 어려운 숙원을 해결해주고 홀연히 떠난 인연도 있었다.

하여 나는 가끔 “인연에도 유통기한이 있는 것인가” 자문하곤 한다. 나는 누구에겐가 유통기한이 통용되는 인연이런가. 이왕 그의 인생에 무심한 조력자가 되고 싶다. 그렇게 익어가야겠다. 


김사은 전북원음방송PD·수필가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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