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등 켜진 ‘1박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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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없는 게임 반복에 재미 반감... 대대적인 '캐릭터쇼' 보수 필요

[PD저널=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 MBC <무한도전>의 (어찌되었던) 종영에 즈음해 여러모로 비슷한 장수 예능인 KBS2 <1박2일>을 돌아본다. <무도>와 함께 리얼버라이어티의 시대를 이끌었던 캐릭터쇼이자 여전히 10%대 중반의 시청률을 꾸준히 기록하는 주말 간판예능이다. 틈새시장을 공략하려 했던 JTBC <밤도깨비>도 쓸쓸히 종영했으니 <1박2일>은 SBS <런닝맨>과 함께 마지막 남은 캐릭터쇼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멤버 교체 효과를 본 <런닝맨>과 달리 지금 체제로 세팅된 지 2년이 지났지만 <1박 2일>의 재밌는 에피소드가 회자되거나 출연자들이 다른 예능에서도 탐내는 인물로 성장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 없다. 10%대 중반에 고정된 시청률이 결코 낮은 수치는 아니지만 경쟁 프로그램의 위상을 둘러본다면 파죽지세라기보다 ‘빈집털기’에 가깝다는 해석도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 KBS 2TV <1박 2일>. ⓒKBS

<1박2일>의 장점은 명확하다. 친근함과 익숙함.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녀서 그런지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 분위기가 난다. 북적이는 분위기와 시골 감성을 기반으로 반복되는 벌칙이 뒤따르는 게임도 큰 무리 없이 즐길 수 있다. 중장년층 시청자들에겐 세대차나 변화하는 시대상을 따라잡는 노력이 필요 없으니 오히려 편하다.

지난 주 ‘2번 국도 세끼 여행’에서는 목포에서 진주까지 이어지는 2번 국도를 따라 게임을 펼치면서 남도의 산해진미와 풍광을 소개했다. 이렇듯 매주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지역 명물을 소개하는 것이 에너지 넘치는 리포터들의 활약과 비슷해 주말판 <6시 내 고향>이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결코 칭찬이 아니다. 속뜻은 예능으로 재미를 다했다는 거다. 골격이라 할 수 있는 캐릭터의 관계망이 무너지면서 예능 차원의 재미는 줄어들고 여행지의 볼거리만 남았다는 뜻이다. 지금

<1박 2일> 출연자들은 지니어스 정(정준영), 신바(김종민), 윤동구(윤시윤)처럼 각자 캐릭터는 확보하고 있지만, 별다른 응집력이 없다. 샌드백 역할을 하는 멤버가 적고, 라이벌이나 확실한 포식자가 없다보니 각자 고정된 역할 속에서 겉돌거나 반복될 뿐이다. 그래서 매주 새로운 여행을 하지만 지난주에 본 것이나 지난달에 본 것과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윤시윤을 착하고 바른 ‘윤동구’ 캐릭터로 잡고 밀어붙이는 것도 이 쇼의 조화로움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소다. 예능에서는 억지로 망가지는 것보다 자신의 본 모습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어우러지는 것이 미덕이다. 그런데 바른 생활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서는 다른 멤버들과 제작진의 배려와 계산이 필연적으로 뒤따를 수밖에 없다.

캐릭터쇼가 고착되면서 나타나는 가장 심각한 현상은 에너지 고갈이다. 무엇을 해도 새로워 보이지 않고, 파이팅이 느껴지지 않는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감정이입의 정도가 줄어든다. <1박2일>의 상징인 복불복 게임은 불복을 피하기 위한 출연자들의 치열한 대결이나 제작진과의 긴장 관계에서 재미가 나왔다.

이른바 멤버들 사이, 제작진과 멤버들 사이의 투닥거림과 견제 속에서 맞물리는 관계가 형성되고, 시청자들이 몰입할 스토리가 생긴다. 그런데 바로 이런 부분들이 냉각됐지만 조치를 취하지 않고 계속 게임만하니 거기서 어떤 의미나 맥락을 찾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얼마 전 쿠바와 카자흐스탄에 다녀왔던 10주년 특집은 그 결정판이었다. 의미는 ‘고려인의 집 찾아가기’와 비슷했고, 재미는 여행의 목적과 동떨어진 입수, 복불복 게임, 한류 확인 등에서 찾았다. 문제는 이런 것들이 점점 쌓이면서 캐릭터들이 서로를 위하며 함께하는 스토리 또한 증발된다는 점이다. 그 건조함은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오늘날, 캐릭터쇼를 기반으로 한 리얼버라이어티가 역사의 뒤안길로 점차 사라지고 있는 건 사람들이 원하는 리얼리티와 제작진이 조율하고 만들어가는 리얼리티 사이의 간극이 점점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력이던 성장스토리는 대부분 끝났다. <무한도전>은 이쯤에서 멈추기로 했다. 하지만 <1박2일>은 시청자들의 피드백이나, 요즘의 시대정신에 부합한 변화 대신 갈라파고스가 되는 데 별 걱정이 없는 듯하다.

<1박2일>의 시청률이 유지되는 이유를 단순히 중장년층 시청자들의 습관 때문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캐릭터쇼의 최대 장점은 함께 보내온 시간 속에 맺어진 신뢰가 가장 큰 기둥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살짝 무너져 있는 캐릭터쇼를 보수하지 않고 의미 없는 게임을 계속 반복한다면, 어느 순간 너무나 왜소한 기둥을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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