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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위동의 비명이 들리지 않나요

전규찬 언론연대 공동대표(한예종 교수)l승인2018.03.30 11:5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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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전규찬 언론연대 공동대표(한예종 방송영상과)] 오늘은 별로 귀 기울이지 않고 관심 갖지 않는 서울 어느 동네 이야기를 써야겠습니다. 재개발 현장 어디서도 들을 수 있는 비명 소리를 전하고 싶습니다. 제 SNS에 얼마 전 짧은 영상이 올랐습니다. 이런 설명이 붙어 있었습니다. 제 아는 녀석이 올린 겁니다.

이 영상은 지난 금요일, <장위동 불바다 문화제>에서 상영한 장위동에 강제집행이 들어왔을 때의 모습입니다. 장위동은 지난겨울부터 지금까지 잔인한 강제집행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한예종으로부터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곳에서 누군가의 삶의 공간이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학생들의 연대로, 우리들의 예술로 강제집행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돌곶이포럼은 이번 금요일에도 <장위동 불바다 문화제>에 참여합니다. 음악과 영상 그리고 외에 모든 예술로 연대해주십시오! 함께 와서 연대해주십시오.

이 긴급한 호소문, 간절한 격문을 얼른 공유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댓글을 붙입니다. “눈물이 난다…기다려라 곧 간다. 야들아!” 연대로, 예술로 강제집행을 막겠다며 나선 저 무모한 놈들. 눈에 선합니다. 소중한 삶의 공간을 짓밟는 강제집행 현장으로 달려가 발발 떨며 버티고 악악거리며 시위하는 저 ‘외부세력’. 저의 사랑하는 제자들입니다.

▲ <장위동 불바다 문화제> 포스터.

허물어지는 장위동의 풍경이 떠오릅니다. 저는 그 동네를 좀 압니다. 집에서 십리 길 걸어 출근할 때,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상황을 살피려 지나던 곳이죠. 혼자 그렇게 뻔질나게 돌아다니고, 가끔은 수업을 빙자해 얘들을 끌고 가기도 합니다. 야들아, 석관동이 우리 동네 아이가? 장위동이 카메라 들 현장이 아이면, 현장은 대체 뭐고 또 어딨노?

장위동. 낮은 빨강 벽돌집들이 남아있고, 좁은 골목길이 실타래처럼 복잡한, 다세대 빌라 건물들이 잔뜩 들어선 동네였습니다. 높은 아파트가 별로 없어 시야가 탁 트이고, 멀리 북한산 전망이 끝내주게 펼쳐지던 궁핍한 삶터. 돌곶이역과 석계역을 낀 소위 ‘역세권 지역’으로 ‘투자 가치’가 높다고 지목받은 성북 노동자 프리케리아트들의 전통 주거지.

인근 석관동, 이문동과 함께, 자본은 그곳의 개발 가치에 일찌감치 주목했습니다. 실력 막강한 재벌이 재개발 눈독을 들입니다. 이명박 때 청사진이 이미 다 짜였습니다. 그는 이제 수감되었지만, 그가 조장한 ‘뉴타운’ 프로젝트는 멀쩡히 남아 진행 중입니다. 사람들을 좌절로, 절망으로 밀어붙이며 말입니다.

조합이 만들어지고, 재개발 드라이브가 걸립니다. 공동체가 바로 무너지고, 동네는 금방 전장 터가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람 떠난 집들은 곧 흉물이 되고, 폐허엔 길고양이만 들락거립니다. 출입금지 가림막 안에서 마구잡이로 해체 작업이 진행됩니다. 안 나가고 버티는 주민들을 상대로 강제집행이 이루어지고, 이를 위해 용역이 중장비와 떼로 동원됩니다.

그런 공식입니다. 건장한 철거 신체·기계 앞에, 약한 몸뚱이들의 몸부림은 한마디로 불감당입니다. 간단히 제압되고 맙니다. 그때 그들은 아, 다시, 용산 참사를 떠올릴까요. 공갈, 위협, 위력의 행사가 이어집니다, ‘죽을 수는 있어도! 빼앗길 수는 없다!!’ 한때는 교회가 들어서 교인들이 모이고 또 약국이 열려 환자들을 맞았을 한 다세대주택 외벽의 벽보가 비장합니다.

함께 버티던 이웃들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떠난 뒤, 이제는 달랑 한 집만 남았습니다. 철거 보상금으로 나올 돈으로는 빚 갚고 세금 내고 전세금 돌려주면 남는 것 하나 없는, 45년 째 빨강지붕 조그만 집에 살아온 식구들입니다. 악착같이 싸우고 자해도 하며 고난을 견뎌낸 ‘난쟁이’ 가족입니다.

공갈과 협박, 위력. 소외와 고립. “아무도 없는 산 속에서 덧없이 죽어가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임종을 지켜봐 주는 것 같다”고 가난한 집주인은 고백합니다. 억지인가요. 보상금 욕심을 부리는 겁니까. 남들처럼 포기하고 벌써 떠났어야 하는 걸까요. 그는 지금 ‘임종’, 지는 싸움을 말합니다. 그 말이 섬뜩하고 슬픕니다. 지극한 외로움이 느껴집니다.

예술과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 몇 십 명이 같은 피해를 입고 버려진 다른 곳의 철거난민들과 함께 몇몇 활동가들과 더불어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작은 목소리를 보탰습니다. 약자라는 동등한 신세로서, 같이 집을 지킵니다. 기를 써 연대하고 저항합니다. 노래를 부르고 구호도 외치겠죠. 영상을 만들어 주변에 좀 더 알려야 하겠습니다.

국가권력과 합작한 거대자본의 부동산개발프로그램 앞에서 가난한 인·민의 주권과 재산권, 생명권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대한민국은 과연 정의로운 게 맞습니까. 그런 사회는 진정 희망이 있나요. 촛불혁명도 재개발 자본권력 앞에서는 결국 아무 소용이 없나요. 부동산 제국에서 삶의, 생활의 존속은 가능하기나 한가요.

저는 지금 이런 원망의 질문을, 항의를 장위 7구역을 지키는 이들로부터 듣는 듯합니다. 도대체 편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불편합니다. 뭘 해야 하나요. 오늘 아침 한 녀석으로부터 쪽지를 받았습니다. 제가 잘 아는, 똑같이 저들의 재건축을 위해 강제로 쫓겨나 청년주거난민이 되어버린 친구도 현장을 찾았다면서, 이런 소식을 전합니다.

선생님. 오늘 장위동에 강제집행이 들어왔었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원에서 모인 30 여명의 한예종 학생들과 팔짱 끼고 뭉쳐 함께 승리를 거두어냈습니다. 멀리서 이희성씨도 오셔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집행 들어오기 전에 무서워서 선생님께 연락하려고 했는데 지금에야 기쁘게 승리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현장에서 ‘임종’을 지켜봐야 하는 자의 무서움. 저도 두렵습니다. 걱정이 됩니다. 녀석들은 앞으로도 계속 승리할 수 있을까. 저들이 함께 하는 장위동의 난민은 또 어떻게 될까. 결국 패배하고 말까. 아니면, 싸움에서 이겨 다른 이들의 조그만 표본, 사람이 살아남는 싸움의 가능한 모범이 될 수 있을까. 그러기를 희망하면서 지켜보면 되는가.

여러분께 물어봅니다. 질 게 분명한 싸움이고 얻어낼 게 없다면서, 태연히 손 놓고 있을 건가요. 모르는 척,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하던 일에나 열중하실 건가요. 그러면 어찌 될지 잘 아는 선생은, 제자들을, 그들이 함께 하는 난쟁이들을, 그들을 외면하는 당신들을 그냥 그대로 내버려둘 수가 없습니다. 안 됩니다. 도시 살해의 또 다른 현장을 함께 지켜봐야 합니다.

카메라 들고 마이크 가진 기자, 저널리스트 여러분에게 요구합니다. 지금 장위동으로 가 보십시오. 가서 진상을 취재하고 사람들을 만나 심정을 들으세요. 현장의 기록을 남겨주세요. 대체 왜 이럴 수밖에 없는지, 개발업자와 지자체에 따져주십시오. 어느 낡은 동네의 서글픈 ‘임종’. 그 죽음의 증인, 죽임의 서기가 되어 줘야 하겠습니다.

촛불혁명 이후의 국가에서도 왜 여전히 누구의 삶은 이 꼴인지, 그게 우리 사회와 미래의 주체에게 의미하는 바는 뭔지, 함께 질문하고 같이 대답해 봅시다. 그 응답의 책임을 회피하지 마세요. 별로 큰일 아니라는 폄하, 어디서나 벌어지는 흔한 일이라는 냉소, 우리는 더 큰 일 해야 한다는 허세는 절대 안 됩니다. 지겹고 듣기도 싫습니다. 몸을 움직여 주세요.

이곳은 아직 겨울입니다. 아, 장위동 저곳 음지엔 봄이 와 뭐 하겠습니까. 몸조심해라 간단히 답장 썼습니다. 그러면서, 함께 할 게 말뿐인 선생은 이런 채근의 글로 현장의 제자들에게 작은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그들이 연대하는 2018 난쟁이들과도 멀리서 손잡으려 합니다. 감히 ‘투쟁!’이라 외쳐봅니다. 무례하고 과하더라도, 이번만은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전규찬 언론연대 공동대표(한예종 교수)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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