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천안함 사건'을 다시 꺼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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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암함, 여전히 사상 검증 잣대로 악용"..."천안함 46명 용사·생존 장병들, 희생 인정 받아야"

[PD저널=강윤기 KBS <추적 60분> PD] 천안함 피격 사건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비극적인 사건이다.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22분, 백령도 인근에서 경계임무를 수행 중이던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했다. 사건 초기, 우리 정부는 명확한 원인을 밝히지 못한 채 부실한 대응으로 일관하면서 국민적인 공분을 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애초에는 가능성이 없다던 북한의 어뢰 공격이 기정사실화로 받아들여지고 천안함을 공격한 북한제 어뢰 추진체가 발견됐다. 어뢰 추진체를 발견하고 닷새 후인 2010년 5월 20일, 북한의 버블제트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이 피격 침몰됐다는 공식 조사결과가 발표가 나왔다.

그리고 8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난 3월 28일 수요일 밤, <추적60분>은 ‘8년만의 공개, 천안함 보고서의 진실’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이 방송을 후배 PD와 여러 스태프와 함께 준비하면서 주변의 많은 동료들로부터 우려 섞인 질문을 받았다.

각자의 표현방식은 달랐지만 질문의 핵심은 하나였다. “왜 굳이 다시 천안함을 이야기하는가”였다. 스스로도 되물었다. 왜 <추적 60분>은 다시 천안함을 이야기하는가. 오랜 시간 고민을 했지만 결론은 명쾌했다. 아직 천안함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 지난 28일 방송된 KBS <추적 60분> '8년 만의 공개, 천안함 보고서의 진실' 편 화면 갈무리.

2010년으로 돌아가 보자. 부실한 국방부의 대응과 과학적으로도 허점이 많았던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보고서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논란거리였다. 대다수의 언론이 천안함을 둘러싼 의혹을 앞장서서 제기했고 모든 방송사 탐사프로그램들의 주요 아이템이기도 했다. <조선일보>까지 재검증을 이야기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해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이 벌어지면서 모든 의혹 제기와 합리적인 검증은 중단됐다. 연평도에 포를 발사할 정도로 극악무도한 북한이기에 천안함 폭침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천안함 문제는 검증의 대상에서 종교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지난 8년간, 숱한 고위 공직자들의 인사청문회에서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다. 바로 “천안함에 대한 조사 결과를 믿느냐”다. 심지어 KBS 신입사원 면접에서도 지원자의 최종 자격을 묻는 단골 질문은 ‘천안함’ 이었다고 한다. 천안함 조사를 믿느냐, 안 믿느냐가 이념 검증의 잣대가 되었고 '종북이냐, 아니냐'를 나누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회의에서는 <추적 60분>이 천안함을 다루니 반정부적이라는 이야기를 참모들이 나누었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가 방송통신위원회와 <추적 60분> 사이의 행정소송에 관여한 정황들도 최근에 드러났다. 그러는 사이 ‘천안함’은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여전히 후진적이고 언론의 자유도 그 어느 때보다 억압받는다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아직 천안함의 침몰 원인에 대한 사회적인 최종 합의를 하지 못했다. 정부 조사결과에 심각한 결함이나 오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심지어는 당시 정부가 조사결과를 조작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프로그램을 연출한 PD 입장에서도 천안함이 왜 침몰했는지 명쾌한 정보나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음모론을 믿고 싶지도 않다. 다만 취재를 통해 정부의 발표에 적지 않은 오류가 존재하고 사실과 어긋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다. 그래서 질문해 보고 싶은 것이다.

이제는 다짜고짜 “천안함을 (북한이 어뢰 공격했다는 정부 결과를) 믿느냐, 안 믿느냐”를 물어보고 그 대답에 따라 한 개인의 사상을 파악하겠다는 후진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 사회고 합리적인 사회다. 그러기 위해서는 천안함을 둘러싼 의혹과 의문들을 지금이라도 해결해야 한다.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해 침몰한 것이라 해도 그 조사 과정에 오류가 있거나 사실이 아닌 것이 있다면 고쳐야 한다. 역사도 새로운 연구를 통해 수정되고 과학 논문도 새로운 팩트가 나오면 업데이트 된다. 하물며 천안함은 숱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지 않았던가.

<추적 60분>이 확인한 보고서의 오류만 해도 적지 않다. 여러 어려움이 뻔히 예상되면서도 천안함을 주제로 프로그램을 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궁금한 건 궁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고 사람들이 궁금한 것을 대신 물어줄 수 있는 언론이 필요하다. 그것이 KBS가 지난 10년간 제 역할을 못했던 것에 대해 PD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과이기도 했다.

편집을 하다가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던 날이 있었다. 볼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천안함 46명 용사들을 추모하는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 부분을 편집할 때였다. 나라를 지키다 운명을 달리한 46명의 청춘들을 생각하니 분하면서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왜 우리 사회는 한마음으로 그들을 추모하고 위로하지 못하고 있을까.

방송이 나간 후, 일부 언론은 <추적 60분>이 음모론의 재탕에 불과하고 순국선열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비난했다. 생존 장병들과 유족들에게 사과하라는 표현도 있었다. 나라를 지키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분들이나 살아남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을 안고 있을 장병들의 고통을 감히 어떻게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다만 이 기회를 빌려 담당 PD와 <추적 60분>의 진정성은 전하고 싶다. 46명의 용사들과 생존 장병들의 희생은 여전히 고귀하다. 하지만 그 희생이 어느 한쪽에서만 인정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희생은 온전하고 명확하게 대우받아야 하며 보수와 진보를 떠나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천안함 조사의 오류를 우리 사회가 합리적으로 바로잡는다면 분명 가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서해를 지키다 운명을 달리한 46명의 천안함 승조원들의 명복을 진심을 다해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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