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해랑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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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 승인 1998.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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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온갖 꽃들이 자태를 빛내고 고운 연두색 자연이 싱그러운 4월이다.그런데 화사한 개나리보다 진달래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왜일까.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와 눈부신 핏빛 슬픔을 하나의 이미지로 노래한 시인들의 감상 탓일까.그렇다. 올해도 어김없이 잔인한 달, 4월이 돌아온 것이다. 왜곡되고 감춰져버린 숱한 역사적 사건들이 진상을 밝혀달라고, 한(恨)을 풀어달라고 아우성치고 있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레드 헌트’ 파동으로 상징되는 제주 4·3사태가 그렇고(올해가 꼭 50년이 되었다), 5·16 쿠데타로 미완으로 끝내버린 4·19 혁명이 그렇다. 그뿐인가. 민청학련 사건과 그 속에 가려진 인혁당 사건도 대명천지에서 자리매김 받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 잔인한 4월이 과거 역사에만 해당되는 것일 것인가.
|contsmark1|4월은 여전히 잔인한 계절이다.거리를 배회하는 아버지, 버려진 아이들, 가족동반자살, 늘어나는 범죄소식 등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상황 탓인가. 하루에도 몇 번씩 멱살잡이 싸움질을 목격한다. 모두들 거칠어졌다. 눈은 충혈되고, 허기져있다. 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믿음과 희망을 얘기해 줄 것인가. 그럼에도 아직 시작일 뿐이라 한다. 아주 쬐끔씩 밝은 전망도 들리지만 앞은 여전히 깜깜하다. 그런데 정치권은 전부인 듯 힘겨루기만 하고 있는 양상이다. 우리가 그렇게 염원하는 방송법 개정논의도 6월 지자체 선거 이후로 미뤄질지 모른다는 소리도 들린다. 나눠먹기식 인사가 문제로 제기되고 한편으론 공영방송사 사장을 당연한 듯 내정(?)한다. 옛 정권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소신껏 후임자를 제청해야 할 이사회는 무슨 눈치를 보는지 할 일을 차일피일 미루기만 한다. 그들은 갑자기 개혁의 선봉장이라도 된 양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그 방송사는 점차 모든 집행기능이 마비돼가고 있다. 그렇게 올 4월도 지나가고 있다.
|contsmark2|내가 매일 들르는 건물의 엘리베이터 안에는 날마다 새로운 격언이 걸리곤 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내용이었지만 스쳐 지나며 읽은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담당자가 해고되었는지, 아니면 격언 갈아끼기 따윈 신경 쓸 여유가 없어졌는지 언제부턴가 같은 격언이 걸려 있다. ‘삶이 가장 암울할 때 신념은 가장 빛난다(faith often shines brightest when life seems darkest)’. 한달 가까이 이 문구를 쳐다보며 문득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지금 가장 필요한 메시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간혹 후배들에게 하던 똥물론 얘기를 떠올렸다. 지금 우리는 똥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 우리가 꿈꾸는 그린필드는 아득히 먼 곳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인생을 포기할 것인가. 분명한 것은 내 두발로 걸어나오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를 똥물에서 건져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환경을 탓하고 주변사람을 욕하며 스스로 힘으로 걸어나올 생각은 하지 않는다라는.
|contsmark3|여전히 과거의 진상이 쉬쉬 덮여지고 지금도 4월이 잔인한 달일지라도 우리에겐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필요하다. 희망이 필요하다. 프로듀서가 믿음과 확신을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프로그램에 생명력이 있을 것이며 좌절과 우울에 빠진 imf시대 국민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백두대간 장정을 떠난다. 민족의 정기가 서린 백두대간 정상에서 세상을 굽어다보며 우리가 왜 쓰러져서는 안되는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함께 얘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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