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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먼저 할까요?’, 진정한 사과는 받아들여질까

멜로로 위장한 가해자의 사과와 피해자의 용서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l승인2018.04.03 17:4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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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그는 기억하고 그녀는 잊어버린 것.’ SBS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의 초반 에필로그에 붙은 부제다. 왜 이 드라마는 굳이 ‘기억’의 문제를 에필로그에 화두처럼 담게 된 것일까.

초반에는 그냥 예전의 ‘인연’을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후반에 이르자 그것이 그저 우연적으로 벌어진 ‘인연’이 아니라 중대한 사건을 전제했던 일이라는 게 드러난다. 이런 설정은 그래서 <키스 먼저 할까요?>라는 제목과 ‘리얼 어른 멜로’라는 표현이 이 드라마가 하려던 진짜 이야기의 위장술 같은 느낌을 준다. 멜로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것이 그저 달달 코믹한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라 사회적 사안을 그 안에 꼭꼭 숨기고 있었다는 뜻이다.

딸을 잃고 무슨 일인지 오랜 법정 싸움으로 인해 빚더미에 앉게 된데다 회사에서도 쫓겨나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살아가는 안순진(김선아)과 은둔형 외톨이처럼 외부와의 관계를 대부분 끊어버리고 본업이었던 광고 카피도 쓰지 못하고 무표정하게 살아가는 손무한(감우성)의 만남.

▲ SBS <키스 먼저 할까요> 화면 갈무리.

어찌 보면 이혼으로 막대한 재산을 갖게 된 손무한이 이제 집조차 없어 고시원을 들어가야 할 안순진을 보듬어 안는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손무한의 의도된 계획이었다는 게 드러나면서 초반 에필로그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무슨 일 때문에 손무한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고, 안순진은 기억을 지워버렸을까.

안순진 딸의 죽음이 잘못된 과자를 먹었기 때문이라는 사실과 마침 손무한이 그 과자의 광고 카피를 썼었다는 사실은, 이 멜로의 이야기를 사과와 용서를 비는 이야기로 바꾸어 놓는다. 손무한은 자신이 과거 외면했던 안순진에 대한 죄책감과 부채감 때문에 그에게 접근했던 것이었다. 마침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된 손무한은 ‘세상의 끝’에 서게 됨으로써 자신이 해야 할 마지막 일이 ‘사과’라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사과하기 위해 접근한 것이 ‘사랑’이라는 ‘실수’로 이어지면서 <키스 먼저 할까요?>는 긴장감이 만들어진다. 이미 결혼해 혼인신고까지 한 두 사람이지만 결국 손무한의 정체를 알게 된 안순진은 이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된다. 함께 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며 나눴던 그 많은 사랑과 밀어들을 그는 토해내고 싶어 하지만 그와 함께한 시간들을 토해내기는 어렵다.

어째서 <키스 먼저 할까요?>는 멜로드라마 속에 이토록 무거운 사회적 의제를 담아 놓게 됐을까. 그것은 우리네 현실이 그저 달달한 사랑 타령만 하기에는 너무나 아픈 상처들이 많기 때문일 게다.

멀리는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에서부터 가깝게는 세월호 참사를 지켜본 대중들에게 깃든 정서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사건들과 그로 인한 무고한 상처와 분노, 아픈 기억 같은 것들이 뒤얽혀 있다. 이 드라마가 직접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피눈물을 한번쯤 목도한 적이 있다면 가슴을 저릿하게 만드는 그 아픔을 경험했을 것이다.

<키스 먼저 할까요?>는 가해자(정확히는 자신도 모르게 가해 측에 가담하게 된 자)와 피해자를 세워두고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과가 과연 피해자에게 닿을 수 있을까를 묻는다. 어쩌면 그건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죽음을 앞두고 있는 한 인물이 과거의 잘못을 사과하는 것으로 마지막 시간을 보내려는 노력이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키스 먼저 할까요?>는 제목에 담긴 것처럼 애초부터 ‘키스’나 ‘잠자리’ 같은 멜로의 육체적 단계들이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또 멜로의 어떤 단계들이 주는 달달함이 무거운 이야기를 끌고 가는 당의정이 된 건 사실이지만, 그 자체가 중요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인간이 저지른 잘못과 그 잘못에 대한 사과의 몸짓이 우리가 살아가는 최소한의 가치라는 걸 드러내는 게 더 중요하다. 최소한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 기억하려 노력한다는 것을 말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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