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언론인도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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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언론인도 만나자
2008년 "반통일의 역풍 막아내자" 다짐 이행해야 할 때
  • 전규찬 언론연대 공동대표(한예종 교수)
  • 승인 2018.04.09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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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전규찬 언론연대 공동대표(한예종 방송영상과 교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어떤 극적인 합의를 끌어낼 것인가. 이후 트럼프 미국 우파 정권은 어떤 협상전략을 갖고 나설 거며, 북측은 이 쉽지 않은 게임에 또 어떤 수로 임할 건가. 포괄적 협상, 단계적 타결. 어떠한 카드들이 테이블에 올려 질까.

여러 가능성이 뒤섞인 4월이 가고 있다. 한반도 평화 정착, 북미 대결 종식의 분기점으로 가져갈 수 있는 중요한 시기다. 포스트냉전체제의 예외상황이 펼쳐지는 한반도에서, 누가 어떻게 지혜를 발휘하고 얼마나 인내하는지 세계인이 주목하는 결정적인 시국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겨울 가고 꽃피는 봄. 새로운 평화, 화해의 역사(役事)를 재개할 역사(歷史)의 시간이 그렇게 열렸다. 반목과 회의, 거부와 불신의 시선을 밀어내고, 평양과 서울 사이에 대화의 통로와 교통의 길을 다시 닦을 봄날이 기적처럼 도래했다. 파경으로 치닫던 설국열차에서 훌쩍 뛰어내려, 느리지만 희망으로 향하는 평화열차로 갈아타는 타이밍이다.

남북 화해의 조건과 북남 상생의 분위기를 다시 싹틔울, 다신 오지 않을 듯 했던 절기임을 매일같이 실감한다. 체육인들이 만났다. 문화인들이 오고가며 어울리고, 정치인들도 빈번하게 조우한다. 그간 사업이 중단되었던 공단 기업가들, 서로 궁금할 게 많은 학자들도 곧 왕래에 나설 게 틀림없다. 일반 시민들의 방문, 여행 신청은 어찌 계속 막으랴.

이 멋진 봄날에 드는 생각. 언론인은 무엇을 할 것인가. 상황을 말로 옮기고 카메라로 비추기만 하면 되는 일인가. 해서, 긴급히 제안한다. 움직이자. 언론인도 통교하자. 남과 북의 언론인들도 다시 만나야 한다.

감상의 제언, 낭만의 제안이 아니다. 언론이라는 결정적 무기를 가진 우리다. 그걸로 어찌 전쟁에 맞서 평화를 다질 것인지 당장 만나 이야기 이을 때가 되지 않았는가. 10년 전에 차단된 언로, 교통의 관계를 대화로써 복구하는 중책. 언론인이 자임하지 않아도 이 땅에 평화는 올 것인가.

▲ 지난 3일 오후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북남 예술인들의 련환공연무대 우리는 하나'에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왼쪽에서 세번째부터), 도종환 문체부 장관,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 등 참석자들이 '다시 만납시다'를 같이 부르고 있다. ⓒ뉴시스

당장은 남과 북의 언론인이 만나도 눈에 띄는 소득을 얻어내기 어렵다. 그러나 북측이 좀 더 여유와 자신감을 갖게 된다면 양측 언론인의 역할은 눈에 띄게 커질 것이다. 따라서 남과 북의 언론인은 실망하지 말고 꾸준히 만나야 한다. 아무 만남이 없다가 갑자기 많은 교류를 할 수는 없다. 좀 더 많은 언론인이 자주 만나야 한다.

2008년 당시 MBC 외주제작센터 소속 이채훈 피디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본다. 그해 5월 7일부터 양일간 금강산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 언론인대표자회의를 다녀와서 작성한 글이다. “실속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라는 염려를 갖고 떠난 마음이 느껴진다.

그래도 역시 만나보면 좋은 일. 남과 북의 50여 참석자들이 얼굴을 맞댔다. 다양한 주제에 관해 진지하게 발표를 하고 토론도 펼친다. 대놓고 의견을 교환하며, 슬며시 의사도 타진할 것이다. 의견의 교환은 당연히 이견의 노출로 이어지기 십상. 상관없다.

말다툼하면서 친해지는 법. 그러면서 밥 같이 먹고 술자리도 함께 하는 친구 사이로 발전하고. 결국은 손을 잡고 부둥켜안았을 게 틀림없다. 다시 꼭 보자. 반드시 이어서 만나야 해. 할 게, 남은 게 많아. 노래를 부르고, 눈물도 쏟아낼지 모른다.

그렇게 흐르는 눈물, 터지는 통곡으로 반세기 이상 쌓인 회환을 일부나마 표출하는 게 맞다. 체제의 차이와 분단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사상과 문화의 편차와는 상관없이 만나 대화하면 결국 밀접해진다. 그게 바로 지금 언론인이 할 일이다.

2008년 남북 언론인들은 남북 공동결의문을 발표하며 만남을 끝냈다. 힘을 합쳐 ‘반통일의 역풍’을 막아내자고 다짐했다. 앞으로 다가올 역풍을 예상이라도 했던 것인가. 남쪽에는 광포한 반통일, 반평화의 역풍이 당장 시커멓게 불어 닥쳤다. 그리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파탄은 곧 한반도 평화의 위기를 수반했다. 민주와 남북의 문제는 그렇게 직결되어 있다.

이제는 모두 감방으로 간 이명박·박근혜 두 불의·부정의 정권이 어떻게 남북관계를 해치고 긴장을 부추기며 갈등을 조장했는지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이들 신보수·신자유주의 정권이 미국과 일본의 극우체제에 동조해 한반도를 전쟁 직전의 위기상태로 내몰았던 것만 상기하자.

물론, 북의 외통수 강경책에 대한 비판도 빠트릴 수 없다. 고집스럽게 미사일을 실험하고 핵보유국임을 선언할 때마다 우리 힘없는 인·민은 이 일촉즉발 대치와 지겨운 갈등의 상황에 얼마나 불안해했나.

생존권을 짓밟는 절망의 시간을 종식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평화를 동반하는 민주 질서의 회복이 답이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정상의 국가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죽는다. 남쪽에서 민주주의 시민의 봉기가 한반도 평화의 복원까지도 가능케 했다. 촛불이 한반도에 봄을 불러들였다.

그 봄날이 이어지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곧 만난다. 통한의 분단선을 넘어 역사를 펼칠 것이다. 그 다음에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한 김정은과 트럼프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고. 그런 동정을 전하고 기록하는 것만이 이 시대 언론인으로서 할 일인가.

지난 시간, 남북의 평화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북남의 생존에 위협을 가한 작태를 철저히 성찰해야 한다. 불화를 부추긴 적폐를 서둘러 청산해야 한다. 침묵과 방조로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킨 죄는 또 어찌 쉽게 피할 수 있겠나.

이 모든 걸 반성하고 평화의 저널리즘을 고민하면서, 언론인도 과감하게 행동에 나서야 한다.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만남을 준비해야 한다. 2008년의 다짐을 지켜내기 위해서다. 언로의 폐쇄가 불화를 조장한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언론인들의 만남은 남북의 정치적 대화에 필수적이다.

시민사회, 현업단체, 학계의 모임이 우선일 테다. 그래서 의견이 모이면 적절한 방식으로 만남을 제안하는 게 일의 순서다. 너무 성급한가. 암담한 상황에서도 불가능성을 가능하게 바꾼 촛불의 정신을 따른다면, 2018년 피우지 못할 꽃이 어디에 있겠는가. 남북·북남의 봄날을 언론이 이을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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