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작은 집, 주인공은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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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음 세상⑦] 소박한 친환경 삶을 담은 숲의 소리

[PD저널=안병진 경인방송 PD] 허리병이 도져 며칠을 누워있었다. 날이 풀리면 물 녹듯, 봄이 되면 한 번씩 허리가 무너진다. 이런 일도 이제 익숙해져, 허리에 닥친 재난에 몸이 알아서 매뉴얼대로 움직인다. 무조건 쉬는 것이다.

출근도 안하고 누워있으면 좋을 듯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 일이다. 누워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고작해야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다 지겨우면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는 것이다. 그러다 자칫 침대에서 뒤집기라도 잘 못하면 애먼 사람을 불러야 한다. 그렇게 뒹굴기 놀이를 하다가 흥미로운 기사 제목을 발견했다.

“ASMR 예능 '숲속의 작은 집', 미니멀리즘이 전한 '힐링'”(노컷뉴스)

‘ASMR’과 ‘예능’이라니. 게다가 연출자가 흥행 보증수표 나영석 PD다. 출연자는 무려 소지섭과 박신혜. 그동안 나는 ‘소리’ 콘텐츠를 제작한다고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가. 기사를 보고 하마터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날 뻔했다. 1화는 TV로, 2화는 스마트폰으로 찾아봤다.

▲ tvN <숲속의 작은 집> 현장 사진. ⓒtvN

프로그램을 보다 나는 잠이 들었다. 허리에 찜질을 하며 스마트폰을 들고 있으려니 팔이 아팠다. 배 위에 스마트폰을 올려놓고 소리로만 듣다가 잠이 든 것이다. 재미가 없어서라기보다 스르르 잠이 들어도 좋을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소리만 들어도 어떤 상황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만큼 내용은 간결하다. 속세의 욕망을 버리고 숲속의 작은 집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보는 것.

배우 소지섭과 박신혜가 출연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소리’이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프로그램에 과한 것은 소리뿐이다. 숲의 소리. 책을 읽는 소리. 빗방울 소리. 비온 뒤 계곡물 소리. 모닥불 타는 소리. 쌀 씻는 소리. 나무 켜는 소리.

소박하지만 나의 작은 움직임도 의미가 되는 그런 소리와 삶. 이 소리를 강조하기 위해 영상은 간결하고 음향은 크다. 떡하니 ASMR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한 분명한 이유가 있다. 도시 소음과 무소음 생활자로 살아내야 하는 도시 공간에서는 들을 수 없는 소리들. 그 소리를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오프그리드. 미니멀리즘. 친환경적인 삶. 이 프로그램이 말하려 하는 것들이 정말 행복의 조건인지는 나는 잘 모른다. 다만 가끔 그런 곳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과 함께 하는 생활. 자연의 소리와 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 소리가 소음이 아닌 그런 곳.

아차! 그런데 그런 곳에 살려면 장작도 패야하고, 물도 길어 먹어야 하는데, 허리가 또 아프면 어떡하지. 과연 마음의 평온을 몸의 수고와 맞바꿀 수 있을까. 너무 피곤할 거 같은데. 다시 허리가 삐끗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Radio Is A 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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