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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스태프 90% "제작 현장에서 성폭력 경험"

방송제작 현장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 응답자 58% "열악한 위치 때문에 문제제기 못해" 김혜인 기자l승인2018.04.18 15: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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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15층 교육원에서 열린 '2018 방송제작현장 성폭력 실태조사' 기자회견. (왼쪽부터) 김유경 노무사, 이만재 희망연대노동조합,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 김혜진 '방송계갑질119'스탭ⓒPD저널

[PD저널=김혜인 기자] ‘미투운동’과 함께 방송사 내 성폭력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지만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해 실태는 훨씬 더 충격적이었다. 피해자 대부분은 일상적으로 성폭력 피해를 입으면서도 ‘고용 불안’과 ‘성폭력 가해자의 권력 관계’ 때문에 신고할 용기를 내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방송계갑질119’와 방송스태프노조준비위원회가 방송제작 현장의 성폭력 실태를 지난 2월 14일부터 3월 2일까지 온라인을 통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223명의 방송제작 현장 노동자 중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진술한 비율이 89.7%(200명)에 달했다.

이 중 여성 응답자는 93.7%(209명)이었고 남성 응답자는 6.3%로 14명뿐이었다.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답한 나이 대는 20~30대가 93.3%(208명)로 다수를 차지했다.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응답자 중 작가(자료조사, 프리뷰어 포함)가 80.2%(178명)로 가장 많았고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응답자 185명 중 87명이 성폭력 가해자로 ‘방송사 소속 임·직원’을 꼽았다.

이는 응답자들이 성폭력 발생 원인으로 '성폭력 행위자와의 권력관계'(78.5%), '성폭력을 가볍게 여기는 조직문화'(66.45%), '비정규직, 프리랜서 등 고용상의 불안'을 지목한 것과 무관치 않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는 “(성폭력 피해자는) 주로 프리랜서들이 하는 프로젝트형 노동에서 발생하는데, 일하면서 만난 다수의 방송 스태프는 '이번 작품에서 잘 보여야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다'고 했다”며 “경력, 평판, 관계에 의해 고용이 결정되는 상황에서 성폭력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 '2018 방송제작현장 성폭력 실태조사 주요 결과' 발표에 나온 '유형별 성폭력 피해경험'ⓒ'방송계갑질119, 방송스태프노조 준비위원회

성폭력 피해 유형은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70.4%)로 가장 많았고 ‘음담패설 및 성적 농담’, ‘회식에서 술을 따르거나 옆에 앉도록 강요하는 행위'가 뒤를 이었다.

피해 경험을 고백한 A씨는 “프리 아나운서나 캐스터들에게 기본적으로 술자리 강요나 성폭력 발언, 문자·전화 연락 등이 많다. 하지만 행동에 나섰을 경우 이미지 훼손과 업무상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욕하고 넘어가게 된다”고 했다.

실제 방송사 내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고 이에 대해 알렸을 때 적절한 처리를 기대하는 응답자는 거의 없었다. 방송사가 나서서 적절한 처리를 해줄지에 대해 응답자의 88.3%가 아니라고 답했다. 

2015년 서브 작가로 일했다던 B씨는 “당시 10살 차이가 나는 메인 PD에게 강제  신체 접촉을 당했지만 조용히 그만둔 적이 있다. 몇 년 후 우연히 카카오톡 선물 메시지함을 보니 그 PD가 미안했다며 음료 기프티콘을 보내놨다”고 말했다.

▲ '2018 방송제작현장 성폭력 실태조사 주요 결과' 발표에 나온 '성폭력 발생 시 참고 넘어간 이유'ⓒ방송계갑질119, 방송스태프노조 준비위원회

“남녀고용평등법, 프리랜서 적용 안 돼”

18일 ‘방송제작현장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기자회견에서는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필요성과 성폭력 신고센터 별도 기구 설치 등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현재 방송사들이 자체적으로 성폭력 예방을 위한 조치를 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JTBC는 ‘드라마 제작현장 성희롱 예방 가이드’를 마련해 성폭력 발생 시 담당 CP에게 바로 연락을 할 수 있도록 했다. KBS와 MBC는 드라마 제작진 및 출연진 대상으로 성희롱 예방 교육을 하고 있고, SBS는 지난해 만든 성폭력 방지 가이드라인을 대본에 첨부하고 있다. 

김유경 노무사는 “오는 5월 29일부터 성폭력 관련 처벌 수위나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다. 하지만 프리랜서는 이 법의 적용 대상에서 빠져 있다”라며 법 적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나 방송사 주도가 아닌 독립적인 성폭력 신고센터에 대한 필요성도 나왔다. 권순택 활동가는 “영화쪽에서는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 자체적으로 활동을 벌이고 있다"며 "방송제작스태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단체가 주도하는 별도의 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번 설문조사를 진행한 ‘방송계갑질119’와 방송스태프노조 준비위원회는 노조가 없어 피해사례를 알리지 못하는 방송제작 현장의 노동자들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김혜인 기자  key_main@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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