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간 친구, 강택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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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전규찬 언론연대 공동대표(한예종 방송영상과 교수)] 강택, 자네의 복귀를 축하하네. 자네 이름을 KBS 인사 동정에서 먼저 확인했지. 십년 동안 한직으로 밀려나 있던 동료들의 이름과 함께 말이네.

무척이나 감회가 새로웠어, 친구. 별 것 아니고 그 동안 고생한 것도 없다며 자네는 허허 손사래를 치겠지만 말이다. 모두의 복귀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새 사장과 함께하는 공영방송 복구사업 지켜보겠네.

여러 가지 사업의 준비로 벌써 많이 바빠졌을 것 같네. 무엇을 어찌 고심 중인가?MBC는 이미 한참 전에 정비 프로젝트에 들어갔잖은가. 이런 귀한 재활, 반성의 시간을 맞게 되어서 천만다행이야. 그 기회를 마련해준 시민들에게 우리는 또다시 큰 빚을 졌어. 정말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변화의 사역에 매진하지 않으면 안 돼.

제대로 된 실천으로 지난 과오를 지우고 미뤄진 부담을 덜어내는 수밖에 없어. 망가진 저널리즘을 복원하고 스러진 권력 감시비판의 기능을 되찾아야지. 그러면서, 오직 시청자·시민의 명령에만 철저히 승복해야 할 테야. 촛불의 주권에만 충성하는 공영방송을 새로 축조해내지 못하면 그건 역사에 대한 배신. 지난 과오를 KBS는 계속해 씻어내야 하네.

떠나오기 전, 이재용과 박근혜 그리고 최순실의 커넥션에 관해 좌담하다 그쳤었지?자본과 국가, 비선의 스캔들 외에, 우리가 또 고민하고 당장 행동할 것은 뭔가. 한국사회는 재난과 환멸의 체제, 부정과 탈취의 구조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는가. 민주의 정치, 평화의 문화, 사회의 진보에 복무할 공영방송 실천의 윤리를 고민하네. 돌아가면, 이런 것들에 관해 자네의 고견을 듣고 의견도 나누고 싶네. 많이 공부해 두게나.

▲ 2012년 ‘언론장악 청문회’ 등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에 돌입한 이강택 당시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이 건강상 이유로 21일만에 단식을 중단하고 병원에 실려가고 있는 모습. ⓒPD저널

기억하는가, 친구? 10년 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설 때야. 우리는 불길한 시간을 예상하며 담대히 희망의 미래를 준비하자고 했었지. 신보수·신자유주의 국가에 대항할 지성의 규합, 담론을 생산할 프로젝트. 다시 우리 그때의 뜻을 모아 새로운 미래를 대비하고 갱신된 운동을 구상할 수 있겠나. 그럴 적임지에 자네가 갔는데, 나는 어떤 위치에서 자네와 만나는 게 옳겠는가.

떠나올 때, 이 바쁜 와중에 무슨 외유냐 생각이 들며 자네들한테 미안한 생각이 컸네. 이젠 잠시 바깥에서 놀다 와도 괜찮다며 기꺼이 응원하고 이해해줘서 아주 고마웠어. 덕분에 잘 보낸 여행자 생활을 방금 접네. 좀 더 분발해 활동할 기운을 먼 북국에서 좀 차린 듯싶네.

글로 해결되지 않고 언어로 옮길 수도 없는 현장으로 달려 가보는 게 맞지 않겠는가. 그곳에서 오래 분투 중인 동무들과 행동으로써 재결합하는 것. 봄이 와도 채 봄날을 맞지 못한 이웃들과 밀착하는 게 일의 순서일 듯하네. 그래서 현실의 감을 되찾으면, 그때 분발해 다시 글을 써도 늦지 않을 듯한데, 아닌가.

파업 투쟁 80일을 넘기며 고군분투 중인 YTN 언론노동자들을 먼저 찾았네. 국회 앞으로 되돌아가 150일 가까이 농성 중인 형제복지원 친구들과도 동석했네. 꺾어질 듯 다시 일어나 재개발자본에 항거하는 청년주거난민 이희성을 자네 혹시 아는가. 장위동 철거 현장에서 분투 중인 예술학교의 제자들에게도 선생의 걸음이 필요하겠지. 그들과 함께 뭘 할 지를 고민하면서, 여행으로 미뤘던 숙제를 서둘러야 할 테지.

▲ 타르투 재래시장의 겨울 아침 풍경.ⓒ전규찬

작고 먼 낯선 이곳에서 배운 것과 얻은 게 뭔가 잠시 돌아보네. 텍스트와 콘텍스트, 책읽기와 발걸음 사이를 오가는 느낌 많은 여행이었는지. 몸도 다지면서 생각도 바꿔보는 그런 역사공부, 현실공부의 시간을 갖고 싶었네. 그에 비춰, 나는 먼데서 무엇을 제대로 얻고 무엇을 확실히 깨달아 돌아왔는지. 그 중요한 물음에 겸손하게 답을 해보고 있네, 친구.

여행. 몸과 마음, 의식과 감각의 신선하고 흥미로운 동정의 사건인 게 맞아. 시선의 변화, 언어의 교체를 수반하는 능동적 자기소외의 활동이라고 할까. 정해진 관광 일정으로부터 떨어져 불안한 여행자가 되어보는 것. 덕분에 그 실험과 모험의 시간을 무탈하게 보내고 돌아왔네.

자네도 어느 겨울 날 에스토니아 그 고요의 숲길 꼭 걸어보길 권하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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