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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짝이 내게로 온 날 37] 용기 있는 한걸음

김사은 전북원음방송PD·수필가l승인2018.04.25 11: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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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수필가] 여행에 대한 흔한 말 가운데 “여행은 어디로 가느냐보다, 누구와 가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을 경험적으로 가장 신뢰한다. ‘누구’ 덕분에 ‘그곳’이 더욱 의미 있고, ‘누구’ 때문에 ‘그곳’이 지옥이 되기도 한다. ‘어디’는 죄가 없는데, ‘누구’에 따라 천국이 되기도 하고 지옥이 되기도 한다.

나는 대부분 ‘누구’ 덕분에 여행이 즐겁고 행복한 여행을 했다. ‘누구’의 범주에 드는 많은 사람들에게 새삼 감사한다. 그 ‘누구’ 중 하나는 화려해(和麗海)라는 모임이다. 화요일에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이 서로 화합하며 바다 건너서도 맥을 이어가자는 뜻을 담았다. 10여 년 전, 전문 여성 네트워크 모임에서 한 달에 한번 주최하는 여성 간담회를 더욱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자문위원의 역할로 만났다.

교육, 사회복지, 여성단체, 금융, 의료, 언론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이었는데 첫 만남부터 이심전심으로 마음과 마음이 스펀지처럼 스며들었다. 아무래도 각계에서 활약하는 실력 있는 여성들이다보니 저력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같다. 한분 한분의 경력과 지혜가 나에겐 큰 공부가 되었다. 2년여의 책임을 마치고, 자연스럽게 사적인 모임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하여 10년 넘게 우의를 다져왔다. 

하늘엔 별들이 흩어져 내리고
언덕엔 꽃들이 바람에 날릴 때
나는 어여쁜 소년의 손에 의해 
사랑 가득한 세계로 날아가리 살며시

흐르는 구름이 비되어 내리고
부딪는 햇살에 내 몸이 마르면
나는 어여쁜 소년의 손에 의해
사랑 가득한 세계로 날아가리 살며시
(오정선 노래 <마음> 가사)

'화려해'에서는 1년에 한 번 정기적인 여행을 떠나는데,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라오스로 쉽게 결정되었다. 공교롭게 한 사람도 다녀온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 핫한 여행지로 떠오르는 라오스는 어떤 추억을 안겨줄까?

여행의 오프닝은 금융계에서 퇴직한 K선배가 장식했다. 인천공항 거의 도착해서야 남편의 여권을 가져온 것을 발견했다. 정년을 맞은 K선배는 회사의 요청에 의해 2년 연장하고 열심히 일하다가 이번에 진짜 ‘퇴직’을 했다.

많은 직원들이 K국장의 퇴직을 진심으로 아쉬워하며 일일이 손 편지를 써서 감사와 축복을 전한 것을 보고 우리는 큰 감동을 받았었다. 존경과 사랑을 받아온 그의 이력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40년의 긴장이 일시에 풀린 것일까, 꼼꼼하고 세심하고 완벽한 K선배는 말로만 듣던 남편과의 여권 바꿔치기를 감행(?)한 것이다.

다행히 우리 일행은 여유 있게 공항에 도착한 덕분에 출국장 F카운터 옆 민원 영사관에서 긴급 여권을 발급받게 되었는데, 정작 나를 놀라게 한 것은 회원들의 태도였다. 비행기 탑승 수속을 마친 일행은 한 사람의 동요도 없이, 여권 재발급을 위해 주민센터로 인천공항 민원 영사관으로 바삐 움직이는 K선배와 동행해준 Y대표를 여객터미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탑승시간 20분 전, K선배의 여권이 발급된 것을 보고서야 일행들은 출국 수속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렇다. 여행은 ‘함께’ 가는 것이다.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함께 간다면 좋겠네
우리 가는 길에 아침햇살 비치면
행복하다고 말해주겠네
이리저리 둘러봐도 제일 좋은건
그대와 함께 있는 것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해바라기 노래 <행복을 주는 사람> 가사 중)

여행의 또 다른 단어는 고행이다. 전주에서 인천공항까지 네 시간, 공항에서의 출국 수속에 걸리는 시간, 비행시간 5시간 40분, 꼬박 한나절 남짓 투자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체력은 방전되고 피로감이 누적된다.

비엔티엔 공항의 활주로가 짧아서 대형 비행기는 뜰 수가 없단다. 유난히 기내석이 좁은 저가항공의 불편함 때문에 일행의 얼굴에서는 서서히 웃음기가 사라지고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다. 밤늦게 비엔티엔에 도착하여 짧은 시간 체류하고 이튿날 루앙프라방을 향한다.

루앙프라방은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꼭 가야 할 의미 있는 곳이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루앙프라방은 한때 라오스의 수도였다. 유네스코가 보호하는 사원이 무려 34개가 위치하고 그곳에 수천여명의 승려들이 수행 중이다.

루앙프라방 2일 차, 새벽 4시 30분에 기상해서 탁발에 참여할 준비를 했다. 루앙프라방의 새벽 탁발 행사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식이다. 불교국가인 라오스에서 젊은이들은 누구나 일생에 한번은 승려 생활을 하게 된다.

승려들은 생산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탁발’을 통해 끼니를 해결하는데 탁발에서 얻은 음식물은 중간 중간 거리의 빈 바구니에 담아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탁발 행렬은 길게 이어지며 통을 가지고 가는 스님들에게 보시를 할 주민들이 음식을 올린다.

대부분 관광객들은 목욕의자같이 생긴 낮은 의자에 앉아서 참여하고, 신심 깊은 불자들은 무릎을 꿇고 스님들에게 정성껏 보시한다. 관광객을 위해 주민들이 음식물을 팔고 있다. 어두운 새벽, 공기조차 경건하다. 맨발로 다니는 스님을 위해 땅에 떨어진 낙엽 등을 줍고 손등으로 먼지를 털어내 본다.

어떤 스님이 다녀가실지 마음을 모아 스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데, 내 옆에 자리를 잡은 태국에서 왔다는 남자 두 명은 무릎을 꿇고 합장을 하고 있다. 나도 의자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었다. 노스님부터 어린 동자승까지 고요한 침묵 속에 승복을 휘날리며 지나간다. 준비한 음식물을 조금씩 나눠서 올려드리며 성불하시기를 염원했다.

승냥이 울음따라 따라간다 별빛 차가운 저 숲길을 
시냇가 물소리도 가까이 들린다 어서 어서가자 
길섶의 풀벌레들 저리 우니 석가세존이 다녀 가셨나 
본당의 목탁소리 귀에 익으니 어서 어서가자 
이 발길 따라오던 속세의 물결도 
억겁속으로 사라지고 
멀고 먼 뒤를 보면 부르지도 못할 
이름 없는 수많은 중생들 
추녀끝에 떨어지는 풍경소리만 극락왕생 하고 
어머님 생전에 출가한 이몸 
돌계단에 발길도 무거운데 
한수야 부르는 쉰 목소리에 멈춰서서 돌아보니 
따라온 승냥이 울음소리만 되돌아서 멀어지네 

주지스님의 마른기침 소리에 새벽 옅은잠 깨어나니 
만리길 너머 파도 소리 처럼 꿈은 밀려나고 
속세로 달아났던 쇠북소리도 
여기 산사에 울려 퍼지니 
생로병사의 깊은 번뇌가 다시 찾아온다 
잠을 씻으려 약수를 뜨니 그릇 속에는 아이얼굴 
아저씨 하고 부를듯하여 얼른 마시고 돌아서면 
뒷전에 있던 동자승이 눈부비며 인사하고 
합장해주는 내 손끝 멀리 햇살 떠올라 오는데 
한수야 부르는 맑은 목소리에 깜짝놀라 돌아보니 
해탈 스님의 은은한 미소가 법당 마루에 빛나네 
(정태춘 노래 <탁발승의 새벽노래> 가사)

▲ ⓒpixabay

다음 목적지 방비엥으로 가기 위해 루앙프라방에서 아침 비행기를 타고 다시 비엔티엔으로 향했다. TV에서 자주 보던 방비엥 블루라군은 높은 나무에서 다이빙하면서 푸른 물에 몸을 담그고 맘껏 젊음을 발산하는 젊은이들의 천국이다.

비엔티엔에서 방비엥까지는 자동차로 세 시간을 이동해야 하는데, 유난히 멀미를 심하게 앓는 J박사가 걱정됐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다이내믹한 블루라군 스포츠가 기다리고 있다. 정글을 가로지르는 ‘무시무시한’ 짚라인에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몇몇 회원의 강력한 희망에 의해 짚라인을 선택하기는 했으나 참여는 자유다. 나는 그다지 짚라인을 체험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기에 J박사와 커피나 한잔 하며 일행을 기다릴 요량이었으나 우리 일행은 탐남동굴 옆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줄줄이 짚라인을 타러 이동했다.

어찌하다 보니 선택의 여지없이 안전장비를 착용했다. 한번 오르면 되돌아올 수 없다. 험한 바위산을 올라서 첫 지지대에 올랐다. 듬성듬성 엮은 판자 아래로 나무 숲이 펼쳐져있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용감한 C팀장이 경쾌하게 출발하고, 뒤를 이어 몇 사람이 시원스럽게 날아갔다.

도르래 소리와 더불어 어떤 사람은 유쾌하게, 어떤 사람은 겁에 질리고 부담스러운 표정이 스쳐간다. 드디어 운명의 순간이 다가온다. 안전요원이 알려준 대로 다리를 모으고 앉아서 출발을 기다린다. 지지대에서 내딛는 순간,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도저히 다리가 떨어지지 않지만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간다. 그리고 드디어 출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게 두 번째 지지대에 도착해서 숨을 고르는 동안 다른 일행도 속속 도착했다. 운동신경이 좋은 L관장은 여유롭게 V자를 해 보이며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J박사도 안정감을 찾으며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처음 맛보기로 시작한 여정은, 점점 난이도가 높아지고 나름 구성에 변화를 주고자 하는 의도가 느껴진다. 어떤 라인은 커플용으로, 어떤 곳은 스릴 넘치게, 또 어떤 곳은 줄다리를 건너기도 하면서 한 단계씩 앞으로 나갔다.

문득, 짚라인의 과정이 인생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번 타면 되돌릴 수 없는 인생, 어떤 과정은 수월하게, 어떤 과정은 어려운 경계 속에, 그래도 하나씩 헤치고 가면 앞이 보인다. 이왕 가는 거, 즐겁게 달리면 어떨까?

두근거렸지 누군가 나의 뒤를 쫓고있었고 
검은 절벽 끝 더 이상 발 디딜 곳 하나 없었지 
자꾸 목이 메어 간절히 네 이름을 되뇌었을 때 
귓가에 울리는 그대의 뜨거운 목소리 그게 나의 구원이었어 
마른 하늘을 달려 나 그대에게 안길 수만 있으면 
내 몸 부서진대도 좋아 
설혹 너무 태양 가까이 날아 두 다리 모두 녹아 내린다고 해도 
내맘 그대 마음속으로 영원토록 달려갈거야 
(중략)
마른 하늘을 달려 나 그대에게 안길 수만 있으면 
내 몸 부서진대도 좋아 
설혹 너무 태양 가까이 날아 두 다리 모두 녹아 내린다고 해도 
내맘 그대 마음속으로 영원토록 달려갈거야 
허약한 내 영혼에 힘을 날개를 달수있다면 
(이적 노래 <하늘을 달리다> 가사 중)

짚라인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겁쟁이인 나에게도 ‘여유’라는 것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무섭고 두려워서 고함을 질렀지만, 점차 다이내믹한 여운 속에 유쾌한 함성으로 변해가고 있다.

손도 흔들어보고 아예 두 손을 놓아보기도 한다. 그렇게 재미를 느껴갈 무렵, 마지막 관문에 도착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다들 어깨에 도르래를 걸고 가기에 마지막 코스는 ‘좀비 코스’인가 생각했는데, ‘버터플라이’란다. 같은 환경에서 어떤 사람은 버터플라이처럼 날아가고, 어떤 사람은 좀비처럼 끌려간다. 슬쩍 웃음이 나왔다.

대학시절 친구가 보내온 편지 문구 속에 “인생이란 수레바퀴는 어떻게든 굴러가는 것, 내가 끌고 가든지 매달려 가든지의 차이”라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 어차피 내게 주어진 운명이다. 버터플라이처럼 가볍고 사뿐하게, 혹은 슈퍼맨처럼 씩씩하게 나가야지.

마지막 코스에서 심호흡을 하고 버터플라이처럼 날았다. 나중에 동영상을 보고 마음만 버터플라이였던 것으로 결론지었다. 몸이 가벼운 P센터장이야 말로 나비처럼 날아갔다.

짚라인을 마친 후 신비한 변화가 생겼다. 다들 상기된 표정으로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54살 겁쟁이부터 66살 할머니까지,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그 코스를 완주했다는 것에 대해 모두가 뿌듯해했다.

결속력으로 다진 끈끈한 정의는 신뢰와 사랑을 두텁게 했다. 담력훈련을 이수한 이후에 생긴 자신감은 나를 변화시켰다. 겁쟁이였던 내가 거듭 태어난 느낌이다. 처음 짚라인에 매달렸을 때는 온갖 두려움이 엄습해왔지만, 평소 쓰지 않던 ‘용기’를 꺼내어보니 새로운 체험이 즐거움이 되었다.

백척간두(百尺竿頭) 그곳에서도 용기 있게 한 걸음 더, 그렇게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혼자서는 못해낼 일이었으되, 일행의 배려와 격려가 있었기에 가능한 ‘기적’이었다. 그 짜릿한 첫 경험에 감사한다. 함께해서 더욱 행복한 여행이었다. 

 


김사은 전북원음방송PD·수필가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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