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작은 집’ 예능사에 없던 전위적 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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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석 사단의 라이프 스타일숍 전략, 이번에도 통할까

[PD저널=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 tvN<숲속의 작은 집>은 기본적으로 <삼시세끼>와 설정의 결이 비슷하다. 자연 속에서 힐링과 위안을 찾는 점에서 정선으로 들어갔던 <삼시세끼> 시즌1의 기억이 떠오른다.

한적한 자연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기 위해 노동을 하고 그로 인해 얻은 수확물로 함께 밥을 해먹으며 집 안에서 자급자족하고 살아가는 이야기. 그 안에 반복되는 일상과 단순 노동이 갖는 가치, 계절이 오는 여러 자연의 소리들과 풍경을 담아낸다. 바쁘고 각박한 일상과 훨씬 더 심각해진 미세먼지를 벗어난 대안적 삶을 제시하는 라이프스타일 예능이다.

그런데 <숲속의 작은 집>을 보면서 똑같이 힐링과 자연, 위안을 이야기하지만 아무도 <삼시세끼>를 언급하진 않는다. ‘관계’라는 예능의 가장 기초적인 요소와 작법을 생략했기 때문이다. 이는 예능사에서 전무후무한 사건이다.

관계는 스토리텔링과 일상을 기본으로 하는 오늘날 예능이라 부를 수 있는 기본 틀이다.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이야기는 리얼버라이어티 시대 이후 예능의 재미 그 자체이기도 하다. <무한도전>의 캐릭터쇼나 1인 가구의 삶을 보여주는 <나 혼자 산다>나 1인 방송을 표방한 <마이 리틀 텔레비전>, 해외에서 식당을 하는 <윤식당> 모두 형태는 다르더라도 관계를 지향하는 예능 모델이다.

특히나 나영석 사단의 예능에서 관계는 마법의 스프 같은 역할을 해왔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따스한 분위기, 함께 둘러앉아 먹는 밥과 같은 풍경으로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링은 시청자들을 동화의 세계로 인도하곤 했다.

▲ tvN <숲속의 작은 집> ⓒtvN

그런데 이번엔 숲으로 떠나면서 관계라는 설정까지도 내려놓고, 라이프 스타일만을 제안하는 새로운 예능 작법을 시도한다. 그래서인지 부제부터가 ‘자발적 고립 다큐멘터리’다. 펜션 간판이나 축사 하나 없는 제주도의 숲속에 공공 전기와 수도, 가스 설비 없이 모든 것을 자급자족해야 하는 작은 친환경 ‘오프 그리드(Off Grid)’ 하우스를 지어놓고, 수수한 차림의 연예인 한 명(그것도 예능인이 아닌 배우)이 홀로 며칠간 생활하는 모습을 관찰한다.

<숲속의 작은 집>은 숲속에서 홀로 생활하며 행복을 찾아나가는 실험이란 설정을 바탕으로 한다. ‘당신의 지금을 행복하게 해줄 추억의 음식, 생각만 해도 좋은 음식 하나를 만들어 맛있는 한 끼를 드셔보세요’라는 미션을 받고 어린 시절 아플 때 엄마가 해줬던 ‘감자를 넣은 된장국’을 회상하며 요리를 만든다. ‘봄기운 물씬 풍기는 건강한 제철 밥상 한 끼’를 차리는 미션을 받고서는 쑥과 달래를 캐고 두릅을 따서 달래장도 만들고 된장국을 끓여 먹는 식이다.

음식에 삶의 기억을 부여하고, 늘 쫓기며 살던 굴레에서 벗어나 자연과 마주하고 계절의 변화와 날씨를 즐기며 휴대폰의 시계가 아니라 자연의 시계에 동조하는 삶을 경험해본다. 이를 단지, 그저 보여줄 뿐이다.

누군가와 대화하고, 무언가를 함께 이뤄나가는 이야기는 없다. 달리는 기차 밖 풍경을 찍어서 대박을 쳤다는 북유럽 예능처럼 장작을 패고, 숯을 만든 다음 그 불 위에서 소박한 한 끼 식사를 혼자 하는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을 수 있도록 보여주고 들려준다.

싹 비운 밥그릇, 칼질 소리, 보글보글 지글지글 음식이 익는 소리, 장작 타는 소리, 바람에 스치는 나뭇가지 소리, 빗소리 등에 귀를 기울인다. 박신혜의 말대로 ASMR을 듣는 듯한 프로그램이다.

이런 소박하게 보이는 예능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게 어색하지만 이 극한의 미니멀한 설정은 우리 예능사가 겪어보지 못한 또 한 번의 도전이다. 관계라는 빈자리를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볼거리로 채워 넣기 때문이다.

우선 아름다운 자연환경부터 시작해 소지섭과 박신혜의 외모는 물론 주방용품과 식기도구, 덱체어와 테니스체어, 옷걸이, 심지어 도끼까지 예쁨 가득한 소품들이 빼곡하다. 한마디로, 시골이 아니라 숲이라고 부르는 게 포인트이며, 같은 숲이라도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전달되는 불편함은 더 멋진 풍광과 돈이 들어간 아늑하고 예쁜 집, 먹음직한 음식으로 씻겨낸다. 이는, 예능의 작법이 아니라 이미지와 브랜드 스토리텔링 등을 통해 물건을 파는 라이프 스타일숍의 전략이다.

과연 이 실험이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나영석 사단이 꾸준히 추구하는 슬로라이프, 힐링과 위안의 정수를 다루고 있지만 3%대로 출발한 시청률은 2%대로 가라앉았다. 기존 나영석 사단 예능 중 가장 낮은 시청률이다. 처음부터 흥행은 포기했다고 말할 정도로 기획 자체가 매우 전위적이다.

스토리텔링을 넘어서 보여주기만으로 로망과 재미가 피어나는 예능의 시대가 열릴 수 있을까. 이 실험이 과연 예능도 오기가미 나오코나 웨스 엔더슨 감독의 영화처럼 미장센으로부터 로망과 재미를 이끌어내는 콘텐츠가 될 수 있을지, 점점 더 스토리텔링에서 미술로 무게중심을 옮겨가는 나영석 사단의 라이프 스타일숍 전략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몹시 궁금해진다. <숲속의 작은 집>을 단순히 힐링 예능이라 평하고 바라만 볼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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