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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네를 맴도는 제비들

[무소음 세상 ⑧]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 안병진 경인방송 PDl승인2018.05.08 11:3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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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안병진 경인방송 PD] 뜻밖의 장소에서 제비를 만났다. 제 모습처럼 날렵한 소리를 내며 주위를 맴도는 제비들. 두 갈래로 갈라진 꼬리가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녀석들은 이리저리 날며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제비를 보았던 적이 언제였지. 기억을 오래 더듬어도 떠오르지 않는다. 지난해 녹음하러 갔던, 강화 교동 대륭시장에서도 제비를 보지 못했다. 시장에 설치해둔 녹음기에 소리만 남겨 두고 떠났던 제비. 그렇게 보기 힘들었던 제비가 불쑥 내 앞에 나타났다.

인천 십정동 재개발 구역. 뉴-스테이 아파트를 짓기 위해 주택들을 철거하는 공사장 한복판. 굴삭기가 주택을 허물고 화물차들이 무너진 더미들을 어디론가 실어 나르는 소리를 멀리서 녹음하고 있었다. 아직 무너지지 않은 주택 옥상에 올라, 바람 소리를 피해 이리저리 방향을 찾고 있었다.

어디선가 시끄러운 새소리가 마이크에 잡혀 눈을 돌려보니, 제비였다. 우체국 마크에서 보았던 꼬리가 예쁘게 두 갈래로 갈라진 작은 새. 그 모습과 소리가 너무 예뻐 한참 녀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제비 한 마리가 더 나타나 쌍으로 요란을 떤다.

소리를 더 잘 담기 위해 골목으로 내려왔다. 녀석들이 예쁘고 반가워 제비에게 말을 걸다보니, 갑자기 빈집인 줄 알았던 곳에서 한 아주머니가 나오신다. 아주머니는 이런저런 걸 내게 물으시더니 제비가 둥지에 알을 낳아서 그런 거라고 한다. 제비는 나를 경계하는 거였다. 매년 봄이면 이 동네에 제비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러더니 제비집 위치를 내게 알려주며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그리곤 당신도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이곳에 20년을 살면서 제비 사진을 한 장 못 찍었다고. 

▲ 십정동 재개발지역.

“그런데 아주머니는 왜 이사를 안가셨어요?”

“보상을 제대로 해줘야 가지. 이 돈으로 어딜 가. 처음에 아파트 입주권 준다고 하길래 계약했다가 그것도 다 취소했어.”

“그럼 어떻게 하세요. 주위가 다 이런데.”

“가야지. 다음 달에 나가기로는 했는데…….”

아주머니는 말을 흐리더니 다시 제비집을 사진으로 담는다. 매년 당신 집 이층 난간 밑에 둥지를 트는 게 참 신기하단다. 나는 제비집을 사진 찍는 아주머니를 또 사진에 담는다.

제비는 안절부절 우리 곁을 떠나지 못한다. 아주머니가 집으로 들어가고 나는 다시 녹음을 시작한다. 공동육아를 하는지 제비가 여럿 주위에 나타난다. 제비들이 무리를 지어 동네에 둥지를 많이 틀었던 모양이다.

▲ 열우물 마을. 십정동 재개발지역은 영화 <은말하게 위대하게> 촬영지이다.

십정동 재개발지역은 영화 ‘은말하게 위대하게’ 촬영지다. 십정(十井)동, 열우물 마을. 열 개의 우물이 있어서 열우물 마을이란 이름이 생겼다는 말도 있고, 겨울에도 얼지 않는 열(熱)우물이 있어서란 말도 있다. 이랬든 저랬든 이제는 우물도, 언덕배기에 다닥다닥 모여 살던 집들도, 사람들도 모두 사라졌다. 1960년대부터 인천의 도시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 구불구불한 산동네는 새로울 거 없는 뉴-스테이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가만히 소리를 듣다보니 평화롭고 고요하다. 쿵쿵. 쿵쿵. 무언가 멀리서 무너지는 소리가 간혹 들리고 다시 잠잠하다. 제비가 지저귀는 봄날은 따뜻하다. 미세먼지인지 폐기물 먼지 때문인지 아지랑이가 시야를 흐린다. 봄날의 열우물 마을은 어느 때보다 조용하다. 폐허 더미에서 듣는 이 침묵과 고요. 제비들도 이곳 사정을 모르지 않을 텐데, 모두 떠난 이곳을 뜨지 못한다.

쿵쿵. 쿵쿵.

무언가 무너지는 이 소리는 공사현장 소리인가. 제비가 걱정되는 내 마음의 소리인가. 끝까지 새끼를 지키고 싶은 제비의 심장소리인가. 만나지 말아야 할 곳에서, 제비를 만났다. Radio Is A Virus.


안병진 경인방송 PD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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