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저씨 말고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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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저씨’, 새로운 아저씨 담론 필요할 때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tvN <나의 아저씨>는 시작 전부터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 제목과 캐스팅으로 논란에 직면했다. 아저씨면 아저씨지 왜 ‘나의 아저씨’인가. 그리고 그 ‘나’는 다름 아닌 20대 여자다. 그러니 20대 여자와 40대 중반의 남자 사이에 벌어질 연애가 떠오르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캐스팅이 하필이면 과거 로리타 논란에 휘말린 아이유였다. 여기에 첫 회에 이지안(아이유)이 집 앞에서 사채업자 이광일(장기용)에게 두드려 맞는 장면이 더해지면서 논란은 확증적인 단계로까지 나갔다.

하지만 이런 표면적인 이유보다 더 오해를 불러일으킨 건 이 드라마가 ‘아저씨’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최근 미투운동으로 아저씨라는 존재는 그 자체가 하나의 불편한 이미지가 되어버렸다. 한 때 ‘아재’라는 애칭으로도 불렸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저씨’로도 불리던 존재.

그렇지만 미투 운동으로 사회 곳곳에 산재되어 있던 성폭력과 성희롱, 성추행이 여성들을 얼마나 깊은 상처로 내몰았는가가 드러나면서 아저씨를 전면에 내세워 그들의 삶을 위로하는 듯한 뉘앙스를 담은 <나의 아저씨>도 불편해졌다.

▲ tvN <나의 아저씨> ⓒCJ E&M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아저씨>는 불편함만큼 드러난 미덕이 분명했다. 그건 일방적인 아저씨들을 위로하는 드라마가 아니라는 점이고, 사회적 약자들 이를테면 ‘사는 게 지옥’인 청춘을 대변하는 이지안이나, 운신도 하지 못하고 말도 못한 채 그저 숨만 붙어있는 이지안의 할머니 봉애(손숙), 감독과 배우라는 갑을관계 속에서 영화의 실패를 온전히 떠안고 살아가는 약자 최유라(나라), 출가한 남자친구를 잊지 못하고 술에 취한 채 살아가는 정희(오나라) 같은 인물들을 위로하는 드라마라는 점이었다.

돈과 권력의 이름으로 세상이 버린 이들이 그 아픔과 상처를 공감하며 서로를 부둥켜안는 이야기는 분명 이 드라마의 미덕이었다. 그건 20대 여자와 40대 아저씨 사이의 연애가 아니라, 서로의 같은 상처를 바라보는 인간적인 소통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개저씨’로 대변되는 적폐들과 (물론 현실에 존재할지 모르겠으나) 바람직한 아저씨 상을 구분했다. 박동훈이 다니는 건물의 안전을 진단하는 회사의 경영진이 사내정치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설정은 바로 그 적폐가 어떤 존재들이고, 그들로 인해 어떤 끔찍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가를 에둘러 말해준다.

능력 없이 낙하산으로 내려와 타인의 것을 빼앗으려고만 하는 도준영(김영민)이나, 그 밑에 달라붙어 갖가지 술수를 마다하지 않는 윤상무(정재성), 또 자신의 작품이 허접한 걸 최유라의 연기로 뒤집어씌우려는 영화감독 같은 인물이 바로 개저씨, 적폐들이었다. 그들로 인해 건물이 무너지고 소외된 이들은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반면 그런 유혹들 속에서도 바르게 살려는 아저씨 상을 이 드라마는 박동훈이나 그 형제들 같은 인물들을 통해 그렸다. 약자에게 손을 내밀고, 올바른 정의가 지켜지길 바라며, 때론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기도 하는 그런 아저씨들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막연한 ‘아저씨에 대한 위로’라는 지점이 실제 사건을 겪은 생존자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으리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다고 이 ‘아저씨’라는 특정 세대에 대한 담론을 배제하거나 피해갈 수 없다. 그들도 우리네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건 변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적폐적 개저씨들의 범죄적인(그들은 범죄라고 인식도 못하지만) 일상들을 혁파하고 미투운동의 시대에 바람직한 새로운 아저씨상을 세워나갈 필요가 있다.

과거의 잔상들 때문에 당장은 부족할 수 있고, 보는 것 자체가 불편할 수도 있지만 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향후 우리는 그들이 진정한 ‘어른’의 면모를 보여주는 사회를 기대할 수 있다. <나의 아저씨>는 그런 점에서 보면 논란 자체가 건강해 보이는 드라마다.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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