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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무소음 세상 ⑨] 내리교회의 종소리 안병진 경인방송 PDl승인2018.05.21 19: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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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안병진 경인방송 PD] 

“내일 종을 좀 칠 수 있을까요?”

“종을 안친지 오래 되서…. 될까 모르겠네.”

“요즘엔 주일에 종을 안치나요?”

“그게 민원이 많아서. 요즘 도심에서는 종을 못 쳐요.”

“내일 딱 한 번만 치시죠.”

소리를 녹음하러 다니다보니 종소리를 담을 일이 많다. 사찰 범종도 치고, 교회 종도 친다. 어떤 장소의 역사와 문화를 소리로 드러내는 데에 이만한 아이템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심 속 사찰과 교회 종은 소음 문제로 칠 수가 없다. 어느새 종소리는 소음이 되었다. 소음은 박멸해야할 대상이다.

민원이 들어오면 우리가 해결한다고 대뜸 얘기해놓고 무작정 인천 내동으로 향했다. 기독교 역사의 현장.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가 제물포로 들어와 세운 최초의 교회, 제물포 내리교회가 있는 곳이다.

1901년 십자가형 벽돌 예배당을 건축할 때, 선교사들은 미국에서 가져온 종을 2층에 설치했다. 일제가 태평양전쟁 전쟁물자로 쓰기 위해 집안의 숟가락과 밥그릇까지 빼앗아가던 시절에도 살아남은 종이다.

사다리를 놓고 2층 종탑에 올랐다. 요즘에는 종을 칠 일이 없어 2층 종루에 임시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야 했다. 원래는 종에 매달려 있는 끈을 1층에서 잡아당기는 방식으로 쳤지만, 타종을 하지 않게 되면서 끈도 사라졌다. 사다리가 짧아서 2층에 간신히 걸친 알루미늄 사다리가 떨린다. 경사가 거의 80도는 되어 보인다. 사다리가 떨리는 건지, 다리가 떨리는 건지 오르는 일이 아찔하다.

종이 있는 십자가 예배당은 2013년에 다시 지었다. 1901년 처음 지어진 예배당을 벽돌 크기까지 그대로 재현했다고 한다. 그 흔적이 머릿돌과 몇 개 남은 벽돌 그리고 우리가 치려고 하는 종이다. 예배당 종루에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다. 다행이 종은 사진에서 보았던 모습 그대로다. 안내를 해준 최 목사님도 오랜만에 본다고 한다. 사용하지 않으면 눈에서 멀어지고 눈에서 멀어지면 뭐든 소멸하기 마련이다.

종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좁은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안내를 맡아준 목사님이 종을 흔들어 소리를 낸다. 박자가 맞지 않아 종과 추가 따로 노니 소리가 어색하다. 그렇게 몇 차례 하다 보니, 서서히 소리가 듣기 좋아 진다.

미국에서 온 종이라 그런지, 어린 시절 보았던 미국 영화의 교회 종소리가 떠오른다. 푸른 언덕 위의 교회 예배당에서 예배를 알리는 풍경. 130여 년 전, 이 땅을 처음 밟은 미국 선교사들이 제물포 내리에 꿈꾸었을 당시 모습은 어땠을까. 사찰의 범종 소리만 듣던 개화기 조선인들에게 이 종소리는 어떻게 들렸을까. 은은한 종소리가 잠시 그 시절의 풍경을 상상케 한다.

종루 안에서 녹음을 하고, 밖에서도 다시 녹음을 했다. 민원이 생길까봐 녹음을 서둘러 마쳤다. 먼지 구더기 속에서 종을 치느라 땀을 뻘뻘 흘리던 목사님도 이제 되었다는 듯이 숨을 크게 내쉰다.

▲ 내리교회 종소리를 녹음하는 모습. ⓒ안병진

“교회에 유럽식 차임벨도 있다고 하던데, 그것도 내친김에 한번 치면 안 될까요?”

“…….”

“구경만 할게요.”

“그거는 고장이 났어요.”

내려올 때는 누군가 사다리를 붙잡아 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교회를 관리하는 권사님이라고 한다. 차임벨이 못내 아쉬워 관리 권사님께 부탁해 교회 본당 종탑으로 향했다. 3층까지 운행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도 또 4~5층을 올라야 종탑이 있다.

“사진 찍으러 여기 많이 와요. 사방을 훤히 볼 수 있는 곳이 여기예요.”

종탑에 오르니 동인천 일대가 훤히 보인다. 자유공원에서 보았던 원경과는 달리 가까이에서 주위를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보다 놀라운 건 거대한 차임벨이었다.

“와!”

18개의 크고 작은 종들이 나란히 층을 이루고 있다. 큰 종들은 종탑 가운데에, 작은 종들은 종탑 창문에 고정되어 있다. 마치 그 모습이 오래토록 숨어 지내는 아름답고 거대한 괴물 같아 보였다. 탑에 갇힌 불을 뿜는 드래곤. 괴물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너무 아쉽네요. 이거 작동이 어떻게 안 될까요?”

“그러게 고장이 나서. 이제 종을 치지도 않지만 언제부터인가 작동이 안 되서 칠 수도 없어요. 고쳐보려고도 했는데, 수리비가 너무 많이 들어요. 천만원도 더 든다나. 할 수가 없어. 이 종소리가 정말 듣기 좋은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종소리가 아쉬운 것은 우리보다 그였다. 소리를 들려주지 못해 못내 아쉽다고 한다. 그러더니 종과 짝을 이룬 쇠망치를 손으로 움직여 소리를 낸다. 소리가 깨끗하고 은은하다.

“와! 소리가 너무 좋네요.”

“아까 종하고는 다르지. 이거는 멜로디 연주도 되는 거예요.”

그러더니 큰 종과 작은 종을 차례로 하나씩 쳐본다. 나도 그처럼 쇠망치를 손으로 움직여 종을 쳐보았다. 눈치를 보니 엔지니어 ‘유지방’은 녹음을 준비하고 있다.

“선생님, 그럼 우리가 수동으로 종을 좀 쳐볼까요? 저희랑 선생님이 차례로 한 번씩 치면서 이 소리라도 녹음을 해보면 어떨까요?”

그렇게 우리들만의 수동 차임벨 연주가 시작되었다. 어느새 그는 커다란 종들 사이의 작은 틈새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이렇게라도 소리를 들려주고 싶은 간절함이 그에겐 있었다.

“자, 그럼 큰 종부터 쳐볼까요. 선생님부터 시작해주세요.”

‘딩~ 동~ 댕~ 동’

서로 다른 음을 내는 종을 쇠망치로 하나씩 두들겼다. 어떤 종이 어떤 음을 내는지 모르기 때문에 큰 종부터 작은 종 순서로 음을 냈다. 작은 종은 종 안의 알을 움직여 소리를 낸다. 이렇게 몇 번을 하다 보니, 어떤 음을 대충 알 것 같아서, 나중에는 두서없이 이것저것 종을 두들겨 보았다.

‘딩동딩땡동딩’

▲ 내리교회 차임벨. ⓒ안병진

차임벨은 연주가 가능한 종이다. 1995년 이곳에 설치한 자동 차임벨은 곡을 연주할 수 있도록 전동 프로그램화 되어 있었다고 한다. 종탑 아래에 있는 기계 버튼을 누르면 원하는 멜로디를 아름답게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걸 우리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손으로 흉내를 내려니, 생각처럼 종소리는 유려하지 않았다. 주위에서 종소리를 들은 사람이라면 ‘오랜만에 종소리가 나네 그려. 그런데 소리가 왜 이렇지?’ 했을 것이다.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지 못했지만, 그와 우리는 웃고 있었다. 자동으로 움직여야할 쇠망치를 수동으로 두들겼으니 그 상황도 우습고 그렇게 만들어낸 소리는 더 우스꽝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취재를 다니던 어떤 순간보다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걸 느꼈다.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는 아름답고 거대한 생물에 잠시나마 숨을 불어 넣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엉성한 연주였지만 종들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 너무나도 맑고 투명한 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그것이 너무 고마웠다.

“선생님 너무 고마워서, 기념으로 사진을 한 장 간직하고 싶은데 종 앞에 한 번 서보세요.”

웃는 모습이 너무나 순박한 권사님은 종 앞에서 밝게 웃고 있다. 그도 종소리를 너무나 오랜만에 들어서인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다시 보니 안소니 퀸을 닮았다.

“그런데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유척희.”

“처키요?”

“응.”

우리도 그에게 부탁해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곳에서는 꼭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소리를 녹음하러 다니며 오늘처럼 벅찬 마음이 든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어준 동화 속 드래곤을 만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리’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아는 이를 만났기 때문이다.

 


안병진 경인방송 PD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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