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당 세대, 남북 경제협력의 연결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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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스페셜 '84년생 김정은과 장마당 세대' 제작기

▲ 지난 20일 방송된 '84년생 김정은과 장마당 세대' 화면 갈무리. ⓒSBS

[PD저널=오기현 SBS PD] 이번에도 처음 기획 의도와는 다른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주제가 바뀔 때 더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탄생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4월초 후배인 이윤민 PD가 책 한 권을 소개했다. <햇볕, 장마당, 법치>라는 제목으로, ‘개성공단’은 핵개발 자금의 기지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을 북한으로 이식시키는 시발점이 된다는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북한이 법치(法治)로서 올바른 시장경제의 길로 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필자(이종태 <시사인> 기자)는 주장했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이유로 문을 닫은 개성공단, 이윤민 PD와 나는 개성공단의 억울함을 풀어줄 요량으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로 했다.

북한을 시장경제의 길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우선 북한경제의 현주소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했다. 다행히 북한의 시장화에 대한 국내연구가 비교적 깊숙이 진행되어 있었다. 재미 언론인인 진천규 전 <한겨레> 사진기자로부터 입수한 최근 북한 영상은 가뭄에 단비처럼 반가운 자료였다.

그는 지난해 10월, 11월과 올해 4월 등 남북관계가 가장 뜨거운 시기에 북한을 ‘기적처럼’ 방문했다. 최근에 탈북한 북한 이탈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현재 북한경제를 움직이는 동력은 바로 시장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발견, 북한의 시장(장마당)이 효율적으로 작동되도록 도와주는 보이지 않는 손이 바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었다.

오늘의 북한경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두 개의 키워드 장마당 세대와 김정은. 우리는 제목을 ‘1984년생 김정은과 장마당 세대’로 정했다. 결국 주제도 개성공단과 법치로부터 ‘북한경제의 현주소와 김정은 위원장의 역할’로 바꾸었다.

▲ 지난 20일 방송된 '84년생 김정은과 장마당 세대' 화면 갈무리. ⓒSBS

장마당 세대의 탄생

2018년 북한에는 무려 400개 넘는 종합시장이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 개 평균 면적은 서울시청광장 정도의 크기다. 각각 폭이 1m가 넘지 않는 매대(부스)에는 유니폼을 예쁘게 차려 입은 상인들이 ‘고양이 뿔’ 이외에는 모두 팔고 있다.

평안남도 강서종합시장에서 화장품 장사를 했다는 한 탈북자는 자신과 같은 화장품 상인이 한 시장 안에만 1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상인들은 매일 장세를 납부한다. 장세는 지방행정기관의 운영경비로 쓰인다. 이런 종합시장 외에도 골목시장 형태의 ‘메뚜기 시장(단속이 나오면 메뚜기처럼 뛰어 달아난다고 붙여진 이름)’은 수도 없이 많다.

북한주민들은 소득의 70%를 시장을 통해 벌어들인다고 한다. 북한경제의 시장화가 이미 상당부분 진행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북한의 시장화 경로는 중국이나 동구권 같은 여타 사회주의 국가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바로 1990년대 초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 즉 사회주의 배급경제라는 북한의 공식 경제시스템의 작동이 멈추어버린 상황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했다.

먹을 것이 없어 생존을 위협 받던 주민들이 집안의 돈이 되는 물건은 무엇이든지 들고 나가 팔기 시작했다. 그것도 없는 가구들은 산나물이나 땔감을 해서 팔았다. 원천적으로 부족한 식량은 국경너머 중국이나,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집단농장의 비축창고로부터 조달됐다.

살기 위해서 부지런해졌고, 부지런해지니 그나마 생산성이 올라갔다. 권위적이고 형식적이었던 사회주의적 규범이 무너지고 시장지향적 가치관이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은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기 보다는 장마당에서 생존법을 익혔다. 이렇게 해서 이른바 ‘장마당 세대’가 탄생했다.

‘돈주’의 성장

장사로 돈을 모은 사람들은 서서히 초기 자본가의 형태를 갖춘다. ‘돈주’라고 불리는 이들은 주로상품도매업이나 유통에 종사한다. 고급 목욕탕이나 위락시설 운영에 뛰어 들기도 하고, 최근에는 평양의 고급 아파트단지에 투자해 정부기관과 이익을 공유하기도 한다. 돈주들은 대부업으로도 돈을 벌고 원거리 지방 상인들간의 결제를 대행해준다. 사적 금융기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평양에는 약 6000대의 택시가 운행 중이다. 2km 기본요금 2달러가 되는 이들 택시의 주 고객은 이들 돈주들이지만, 택시회사의 투자자들도 돈주들이다. 돈주들은 택시회사 외에도 ‘서비차’라는 여객과 화물 운송차량도 운영한다. 지역간 이동이 엄격히 제한됐던 북한에서 인적 물적 소통을 통해 경제의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형식적으로 사회주의 경제정책의 실행자들은 당관료들이지만, 실제 시장을 움직이는 숨은 세력은 돈주들이다.

 시장주의자? 김정은 위원장

계산이 빨라야 북한경제에 적응할 수 있다. 북한의 공식화폐는 ‘국돈’이라는 북한 돈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주로 중국 위안화를 사용한다. 고가의 물건이나 대량거래에서는 달러를 선호한다. 공식 환율은 달러당 107원이지만 시장 환율은 8000원 정도이다.

상점에 가면 북한 화폐 기준으로 가격이 매겨져 있지만, 지급은 위안화로 한다. 샴푸 한 통에 12,000원이라고 적혀있지만, 지급은 시장환율에 따른 위안화나 달러로 한다. 복잡하지만 장점도 많다. 위안화나 달러화가 유통되다 보니까 물가가 안정되어 있다.

북한주민들이 북한 돈을 기피하는 이유는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2009년 북한당국은 100대 1로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돈주를 비롯한 민간의 유동자산을 환수하여 시장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고 인플레이션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은 해소되지 않았고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만 높아졌다. 북한당국은 서둘러 재정경제부장이었던 박남기를 공개처형하고 주민들에게 사과를 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었다.

당시 이미 후계자로 지명되어 화폐개혁의 실패과정을 지켜 본 김정은 위원장은 아버지의 시행착오를 재현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10대 중반 스위스에서 4년 반 유학해서 시장경제의 장점을 채득했던 그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후 시장에 대한 무리한 간섭을 하지 않았다.

최근 평양의 대규모 아파트단지 건설에 대해 그의 과시욕과 무지가 빚어낸 결과물이라는 비판이 있다. 하지만 건설시장을 통해 경제를 부양시키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정반대 의견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 후 북한경제는 대략 매년 2.5% 내외 성장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1998년 이후 2005년 까지 30차례 가까이 북한을 방문한 경험에 비춰보면 최근 북한의 모습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있음을 느낀다.

물론 최근의 영상이 김정은 위원장의 치적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긴 하지만, 그건 예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전 서울대학교 평화통일연구소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탈북자들 중 나이가 젊을수록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호감도가 높다고 한다.

공동운명체인 김정은 위원장과 장마당 세대

1990년 대 중반, 고난의 행군시대에 학창시절을 보냈거나 그 이후에 태어난 장마당 세대. 그들은 시장의존적이고 자립성이 강하다.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시간에 시장에 나가 일을 했으므로 사회주의 사상보다는 자생적 자본주의를 몸에 익혔다.

장마당에서 5년간 장사를 한 경험이 있는 탈북자는 남한사회의 적응 속도가 다른 탈북자보다 5년 정도 빠르다고 한다. 장마당 세대는 북한경제의 미래세대이자 남북한 경제통합의 연결고리 구실을 한다.

1984년생 김정은 위원장과 장마당 세대가 서로 교류하거나 협조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다른 환경에서 태어났으나 그들은 이미 동일한 목표를 위해 함께 달려가는 운명공동체인 셈이다. 그들이 시장이라는 운명적 공간에서 성공한 모습으로 조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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