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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로애락이 담긴 연안부두 경매

[무소음세상 ⑩] 수산물 경매 소리 안병진 경인방송 PDl승인2018.06.05 13: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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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안부두 옹진수협 공판장에서 경매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안병진 PD

[PD저널=안병진 경인방송 PD] 식도락가들은 뱃속에 지도를 품고 다닌다. 어딜 가면 무얼 먹어야 하는가. 머리가 아니라 위장이 기억한다. 어떤 공간의 냄새만 맡아도 ‘그래, 여기 와서 이걸 안 먹고 가면 벌 받지. 지금이 제철인데.’

인천의 식도락가라면 연안부두 수협 공판장을 한번쯤 지났을 것이다. 공판장을 부러 찾을 일은 없어도 이곳을 지나야 맛볼 수 있는 집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연안부두로 가지 말고. 건너에 해경 군부대 있잖아. 거기서 작은 길로 좀만 더 가면…. 아니 거길 왜 가니. 공판장 안으로 들어가서….”

내비게이션이 없을 때에는 아는 사람만 찾아갈 수 있던 그 집. 이제는 수협 공판장만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게 됐다. 공판장의 경매 소리를 녹음하러 스케줄을 정한 날부터 게장을 먹을 생각에 군침이 돌았다. ‘식당도 새벽부터 장사를 하니, 마침 잘 됐네.'

공판장 경매 소리야 뻔한 거 아닌가. 작년 농산물 경매 취재를 한 경험이 있어, 뭐 특별할 게 있을까 싶었다. 전자식으로 바뀐 농산물 경매가 사실 실망스러웠던 터였다. 뭔가 다른 아이템을 찾고 싶었지만, 인천하면 떠오르는 연안부두 어시장과 그 분위기를 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어서 취재를 마치고 그 집에 갈 생각뿐이었다.

예상과 달리 경매는 새벽이 아니라 아침 8시에 시작했다. 밤새 조업한 수산물이 공판장에 집결되면, 상태와 크기에 따라 대략의 값이 매겨진다. 최초의 가격은 경매인이 결정한다. 그 값을 시작으로 중개인들 간의 눈치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경매가 시작되기 전 중매인과 그들에게 흥정을 부탁한 소매인들이 상품의 품질을 꼼꼼히 살핀다.

지금은 꽃게 철. 넓은 공판장 바닥에 죽 늘어선 꽃게상자를 툭툭 쳐보면서 신선도를 확인한다. 귀하다는 연평도 조기, 인천 연안에서 잡힌 농어와 홍어, 낙지, 소라, 잡어 등도 이러 저리 살핀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이 서서히 공판장 안으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8시.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고 사람들이 한 곳으로 움직인다. 경매가 시작됐다. 그런데 그 풍경이 장관이다. 1m가 조금 안 되는 높이 수조에 사람들이 모두 올라선다. 경매인, 중매인, 중매인에 흥정을 의뢰한 소매인들이 수조 사방에 올라 서로 인사를 나눈다.

중매인들의 모자에는 고유 숫자가 적혀있다. 번호로 낙찰 주인을 알리는 것이다. 소매인도 숫자를 쓴 모자를 썼는데, 그 색이 다르다. 수조에 올라가지 않을 이들은 경매에 참여하지 않은 소매인과 나 같은 구경꾼들이다.

▲ 연안부두 옹진수협 공판장 경매 모습. ⓒ안병진 PD

“안녕하세요. 서로 인사 나누고 오늘 경매 시작합시다.”

서로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는 경매인의 흥을 돋는 소리.

“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우에에에에에에에에에잉.”

뱃속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엄청난 저음이 공판장을 가득 메운다. 일정한 음이 지속되다가 한 번씩 추임을 넣는 경매 소리. 그 리듬에 맞춰 현란하게 춤추는 경매인의 손짓. 그리고 그 손짓에 박자를 맞추는 중매인들의 요란한 손놀림. 그 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마침내 낙찰을 알리는 경매인의 경쾌한 액션. 아! 이건 거의 공연이구나.

뭐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정신이 쏙 빠졌는데, 무리는 다른 수조로 이동한다. 이곳에서 다시 한 번 경매가 진행된다. 이번엔 조기와 광어, 농어 등 생선. 경매 보조원이 품목을 크게 외치고 나서 조기를 꺼내 무리에게 들어 보인다.

“이건 연평도야~”

“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두어 번 경매가 반복되다보니 과정이 눈에 들어온다. 경매인이 주인공. 그 옆의 메모를 하는 보조인. 그리고 상품을 알리고 보이는 또 다른 보조인. 경매인을 마주보고 모자를 쓰고 있는 이들이 중매인. 경매에는 허가가 있는 중매인들만 참여할 수 있다. 중매인을 마주 바라보는 이들이 소매인. 중매인들에게 자신이 마음먹은 값을 손으로 알려준다.

나는 처음에 이들이 중매인들에게 사인을 알려주는 한통속인 줄로 알았다. 자신이 찜해놓은 상품을 낙찰 받지 못하자 중매인을 원망하는 소리가 들린다. 낙찰이 되면 경매인 옆에서 메모를 하던 보조인이 낙찰된 중매인의 숫자를 상품에 붙여 놓는다.

그러면 짐꾼들이 상품을 밖의 트럭으로 실어 나른다. 낙찰을 받은 이와 놓친 이들의 소리가 들린다. 기쁨과 탄식. 원망과 환희. 이 짧은 순간에 인생의 희로애락이 지나간다. 좋은 상품을 좋은 가격에 사고파는 일만큼 신나는 일이 어디 있을까.

▲ 연안부두 옹진수협 공판장에서 낙찰된 꽃게. ⓒ안병진 PD

경매가 반복되면서 넓은 공판장에 놓여 있던 싱싱한 수산물들은 주인을 찾아 간다. 경매가 진행되는 중에도 꽃게가 박스 채 쏟아진다. 지금이 제철이라 크기가 크다. 구경거리도 이런 구경거리가 없다. 팔 물건을 보이며 신나게 흥정하는 옛 방식이 아직도 여전하다. 나중에 들어보니, 바닷물에선 기계가 성치 못해 수산물 경매는 전자식으로 할 수 없다고 한다. 팔딱거리는 소리를 담아야 하는 우리에겐 다행인 일이다.

경매사 인터뷰까지 마치고 그 집으로 향했다. 경매가 시작되고 사실 밥 먹을 생각도 잊어 버렸다. 그만큼 경매는 강렬했다. 연안부두를 마주보고 있는 공판장 끝까지 가야 하는 식당. 공판장에서 일하는 이들이 밥을 대먹던 집이 일반인들에게도 유명해진 것이다.

메뉴는 정해져 있다. 인부들에게는 백반을 팔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게장 백반이 전부다. 간장 게장과 게장 무침 그리고 꽃게탕이 믿을 수 없는 가격에 나온다. 맛있는 집이 그렇듯 같이 나오는 찬도 모두 맛있다. 밤새운 노동 뒤에 맛보는 밥의 맛. 그 맛이야 모두 꿀맛이겠지만 이 집은 찬이 꽃게라 더 할 수밖에 없다.

글라스로 소주를 마시는 옆 테이블의 인부들처럼 한 잔 마시고 싶었지만 시계를 보니 이제야 아침 10시다. 밥을 먹고 나와 바다 건너 연안부두를 바라보았다.

‘경매보고 맛집 가고. 이만한 인천 투어 코스도 없겠는걸.’ 


안병진 경인방송 PD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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