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저물지 않은 백야의 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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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PD대상 수상자 해외문화 연수기]

▲ 14세기에 지어진 리투아니아의 트라이카성.ⓒ최원준 MBC PD
* 제30회 한국PD대상 수상자들이 지난 6월 11일부터 6월 19일까지 발트 3국 해외문화탐방을 다녀왔다. <카자흐스탄 고려인 정주8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바람의 세월, 아직 끝나지 않은 유랑>편으로 라디오특집부문 작품상을 수상한 박대식 KBS PD가 7박 9일간 연수 여정을 함께한 수상자 16명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연수기를 보내왔다. – 편집자주 -

[PD저널=박대식 KBS PD] 당신과 함께한 이번 여행에 대한 추억과 표정, 그 느낌과 질감을 내 마음속에 그리움으로 저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 내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당신은 모르실 겁니다. 당신과 거닐었던 그 길가, 마주한 노을과 숲속의 새들. 어젯밤 꿈에서도 탈린을 거닐던 당신을 보았습니다. 여행의 감동이 어제 일처럼 눈에 선한 건 바로 당신과 함께 했기 때문일 겁니다.

유럽의 배꼽이라는 지정학적 숙명 때문에 혹독한 역사 상황 속에서도 고유의 문화와 언어를 기적적으로 지켜낸 역사의 파편들이 우리와 참 많이 닮아서였을까요. 무수한 잔별처럼 쏟아지는 유럽의 어두운 하늘 속에서도 이곳 발트 3국의 하늘은 백야처럼 더 밝게 다가왔었지요.

기억나세요. 아침의 첫 빛이 호수 위 퍼져 오르던 리투아니아의 트라카이성을. 붉은 성곽들의 원색과 우거진 숲들의 향기가 꽃들처럼 피어나고 수십 개의 호수가 빛으로 가득 찬 거대한 액자 같았던 그곳에서 당신은 오래도록 발길을 멈추고 물끄러미 호수를 바라봤죠. 언어로 옮기기 힘든 감동이 그렇게 시나브로 시작되고 있음을 우린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건물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인 '새벽의 문'이라 불리는 성곽, 동유럽에서 내부장식이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한 성 베드로 성당, 나폴레옹이 손바닥에 얹어 파리에 가져가고 싶다고 극찬한 일화로 유명한 성오나 성당. 그리고 ‘라트비아의 창문' '작은 파리' '북방의 베니스'라 불리는 리가. 리가에 들어서자마자 청록색 고딕양식의 뾰족한 첨탑들의 스카이 라인을 따라 넘어가고 있었죠. '검은머리 전당', 룬달레 궁전, 리가의 아름다운 구시가지. 어제 본 것처럼 눈에 선합니다.

시선 닿는 곳마다 발길 머무는 곳마다 예술작품이 되는 발트 3국의 풍경 꼭지점은 에스토니아 탈린이었다는데 당신도 동의 할 겁니다. 발트해의 짙은 물빛을 닮은 담벼락과 파란 하늘, 구시가지의 빨간색 지붕, 초록빛 나뭇잎이 한데 어우러져 뿜어대는 탈렌의 오디세이에 눈과 귀가 밝아지고 맑아졌습니다.

▲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 구시가지에서 바라보며 찍은 사진. ⓒ박대식 PD
▲ 리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청록색 고딕양식의 뾰족한 첨탑과 다양한 건물양식들. ⓒ박대식 PD
▲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의 중심 광장. ⓒ하종란 KBS PD

그 어떤 풍경보다 우리의 몸에 감동적으로 밀고 들어온 건 발트 3국 국민들이 함께 이뤄낸 반소 독립 평화시위 ‘발트의 길’이 아닐까요. 1989년 8월 9일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리투아니아 빌뉴스까지 발트 3국의 국민 2백만명이 모여 만들어낸 620㎞에 이르는 인간띠 행사! <발트의 길> 다큐멘터리를 보고 당신은 얘기했죠. "우리 국민이 이뤄낸 촛불항쟁처럼 세계사에 길이 남을 거대한 장관이고 감동이야!"라고.

그래요. 언젠가 이 발트 3국 국민이 세계사에 주연으로 우뚝 설 날이 오게 될 날을 우리 함께 기대해봐요. 어쩌면 발트3국의 잠재력은 우리가 아는 것 보다 더 클지 모릅니다. 그곳엔 바로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과의 마지막 여정은 디자인 강국 핀란드 헬싱키에서 마무리 되었지요. 암석으로 된 독특한 디자인의 ‘암석 교회’에서부터 헬싱키의 랜드마크인 ‘헬싱키 중앙역’ 그리고 ‘디자인 박물관’에 이르기까지. 고풍스럽고 우아하며 독특한 핀란드 디자인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창발력의 외연을 확대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지요.

돌이켜보면 이번 여행에서 내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그저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을 함께 바라보고, 귀를 기울인 것 자체가 쉼이고 충만한 위로의 노래였습니다. ‘당신’은 그동안 조직 안에서 프로그램과 프로젝트의 처음과 끝을 책임지며 울음과 웃음까지 안아내야 했지요. 그 결박에서 이렇게 잠시라도 풀려나 서로에게 스며들 수 있는 힐링과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고, 그 시기에 가질 수 있는 고민을 생각들을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이 여행이 끝나 다시 아침, 저녁으로 한기같은 일상이 날카롭게 시작된다고 해도, ‘당신’과 함께한 세상 끝의 여행, 그 추억을 복기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겁니다. 그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 그리 멀지 않은 오래된 미래에, 자연스럽게 다시 만나 또 다른 우리만의 여행을 떠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 위치한 올드타운. 리투아니아 100주년을 기념하는 조형물 앞에서 연수참가자들이 함께 찍은 단체사진. ⓒ송옥석 울산극동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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