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일상과 예술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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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일상으로 만드는 바르다와 JR

[PD저널=신지혜 시네마토커(CBS <신지혜의 영화음악> 진행)] 아녜스 바르다. 누벨바그, 새로운 물결을 주도했던 감독들 중 하나. 수 십 년 동안 영화를 찍고 영화와 함께 해 온 그는 이제 눈도 침침해지고 몸도 예전같이 움직일 수는 없지만 아직도 현역 감독이며 예술가이다.

JR. 사진작가이자 아티스트. 그는 언제나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포토트럭을 몬다. 카메라에 담은 피사체를 크게 인화해 벽에 붙이는 독특하고 인상적인 작업으로 유명하다.

두 사람이 만난다. 같은 장소, 같은 생각들을 공유하고 있던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JR의 포토트럭을 몰고 길을 나선다.

아녜스 바르다와 JR이 함께 연출한 이 영화는 두 사람의 작업과정을 찍은 다큐멘터리이자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로 엮은 로드무비다. 두 사람의 공동작업인만큼 버디무비의 냄새도 풍긴다.

어쨌든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보고 나면 영양제 주사라도 맞은 듯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지우며 누군가의 삶의 한 조각을 빛나는 색으로 칠해주는 그들의 작업은 특별할 것 없이 특별하며 우연이라는 변수가 작용하면서 때론 아릿하게 다가온다.

두 사람이 향하는 곳은 대도시가 아니다. 관광지는 더더욱 아니며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곳도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기억하고 자신들이 작업했던 곳, 자신들이 찾는 얼굴들이 있을 법한 곳으로 포토트럭을 몰고 떠난다.

▲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스틸컷.

그렇게 도착한 공장과 농장과 작은 마을과 해변에서 ‘얼굴들’을 섭외하고 사진을 찍고 커다랗게 사진을 출력해 공장과 농장과 벙커, 집에 붙인다. 두 사람의 모델이 되어준 사람들은 모두 이 작업에 흥미를 가지고 모여든다.

그들이 사람들에게 주는 기쁨과 즐거움은 단순히 누군가의 얼굴이 벽면에 크게 붙여진다는 차원을 뛰어넘는다. 그것은 누군가의 시간과 역사를 집약적이고 함축적으로, 상징적이며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결과물이며 그 결과물은 다층적 의미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긴다.

단순히 사진을 찍어 어딘가에 붙이는 행위에 그쳤다면 흥미롭긴 하지만 일회성 자극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 작업이 의미있고 큰 에너지가 되는 것은 아마도 바르다와 JR의 행위가 인간에 대한 진정한 애정과 깊은 성찰에서 우러나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불쑥불쑥 찾아오는 수많은 변수들에 시시때때로 틀어지고 수정된다. 두 사람의 여정도 그러해서 수 십 년 근무를 하고 마지막 출근하는 사람의 모습을 담아내기도 하고, 노동자의 아내이자 스스로 노동자인 여성들의 사진을 트레일러에 붙이고 함께 즐거워한다.

그 작업들을 하나하나 쫓아가다 보면 우리는 일상과 예술의 경계가 한껏 낮아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예술은 분명 감동적이고 설레지만 어딘가 까다롭게 느껴진다. 더구나 영화와 사진이라니.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콘텐츠임에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영역을 조금만 벗어나도 영화와 사진 또한 어렵게 다가온다.

바르다와 JR은 자신들의 예술 작업을 지극히 일상적인 것으로 치환한다. 사람들에게 예술의 아름다움과 감동을 쉽게 전달해주는 방식이기도 하고 두 사람의 가치관에도 들어맞는다.

이제 예술은 점점 더 일상 속으로 대중 속으로 걸어 들어와야 한다. 이미 다양한 질료와 생각들이 다양한 방법과 방식으로 표현되는 시대, 바르다와 JR의 사진작업은 그래서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아마도 당신은 포토트럭을 타고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ring by bell’ 을 따라 부르는 바르다를 보면서 저 노래는 그녀의 생 어디쯤에 자리 잡고 있을까 궁금해질 것이다.

장 뤽 고다르의 <국외자들 bande a part> 에서 루브르를 43초 만에 주파하는 주인공들을 따라 바르다와 JR이 상기된 표정으로 질주하는 장면은 사랑스럽고, 수 년 만에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찾아간 고다르의 집 문 앞에선 바르다의 심경이 고스란히 전해져 마음이 아파온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이렇게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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