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저널=신지혜 시네마토커(CBS <신지혜의 영화음악> 진행)] 아녜스 바르다. 누벨바그, 새로운 물결을 주도했던 감독들 중 하나. 수 십 년 동안 영화를 찍고 영화와 함께 해 온 그는 이제 눈도 침침해지고 몸도 예전같이 움직일 수는 없지만 아직도 현역 감독이며 예술가이다.
JR. 사진작가이자 아티스트. 그는 언제나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포토트럭을 몬다. 카메라에 담은 피사체를 크게 인화해 벽에 붙이는 독특하고 인상적인 작업으로 유명하다.
두 사람이 만난다. 같은 장소, 같은 생각들을 공유하고 있던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JR의 포토트럭을 몰고 길을 나선다.
아녜스 바르다와 JR이 함께 연출한 이 영화는 두 사람의 작업과정을 찍은 다큐멘터리이자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로 엮은 로드무비다. 두 사람의 공동작업인만큼 버디무비의 냄새도 풍긴다.
어쨌든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보고 나면 영양제 주사라도 맞은 듯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지우며 누군가의 삶의 한 조각을 빛나는 색으로 칠해주는 그들의 작업은 특별할 것 없이 특별하며 우연이라는 변수가 작용하면서 때론 아릿하게 다가온다.
두 사람이 향하는 곳은 대도시가 아니다. 관광지는 더더욱 아니며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곳도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기억하고 자신들이 작업했던 곳, 자신들이 찾는 얼굴들이 있을 법한 곳으로 포토트럭을 몰고 떠난다.
그렇게 도착한 공장과 농장과 작은 마을과 해변에서 ‘얼굴들’을 섭외하고 사진을 찍고 커다랗게 사진을 출력해 공장과 농장과 벙커, 집에 붙인다. 두 사람의 모델이 되어준 사람들은 모두 이 작업에 흥미를 가지고 모여든다.
그들이 사람들에게 주는 기쁨과 즐거움은 단순히 누군가의 얼굴이 벽면에 크게 붙여진다는 차원을 뛰어넘는다. 그것은 누군가의 시간과 역사를 집약적이고 함축적으로, 상징적이며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결과물이며 그 결과물은 다층적 의미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긴다.
단순히 사진을 찍어 어딘가에 붙이는 행위에 그쳤다면 흥미롭긴 하지만 일회성 자극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 작업이 의미있고 큰 에너지가 되는 것은 아마도 바르다와 JR의 행위가 인간에 대한 진정한 애정과 깊은 성찰에서 우러나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불쑥불쑥 찾아오는 수많은 변수들에 시시때때로 틀어지고 수정된다. 두 사람의 여정도 그러해서 수 십 년 근무를 하고 마지막 출근하는 사람의 모습을 담아내기도 하고, 노동자의 아내이자 스스로 노동자인 여성들의 사진을 트레일러에 붙이고 함께 즐거워한다.
그 작업들을 하나하나 쫓아가다 보면 우리는 일상과 예술의 경계가 한껏 낮아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예술은 분명 감동적이고 설레지만 어딘가 까다롭게 느껴진다. 더구나 영화와 사진이라니.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콘텐츠임에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영역을 조금만 벗어나도 영화와 사진 또한 어렵게 다가온다.
바르다와 JR은 자신들의 예술 작업을 지극히 일상적인 것으로 치환한다. 사람들에게 예술의 아름다움과 감동을 쉽게 전달해주는 방식이기도 하고 두 사람의 가치관에도 들어맞는다.
이제 예술은 점점 더 일상 속으로 대중 속으로 걸어 들어와야 한다. 이미 다양한 질료와 생각들이 다양한 방법과 방식으로 표현되는 시대, 바르다와 JR의 사진작업은 그래서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아마도 당신은 포토트럭을 타고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ring by bell’ 을 따라 부르는 바르다를 보면서 저 노래는 그녀의 생 어디쯤에 자리 잡고 있을까 궁금해질 것이다.
장 뤽 고다르의 <국외자들 bande a part> 에서 루브르를 43초 만에 주파하는 주인공들을 따라 바르다와 JR이 상기된 표정으로 질주하는 장면은 사랑스럽고, 수 년 만에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찾아간 고다르의 집 문 앞에선 바르다의 심경이 고스란히 전해져 마음이 아파온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이렇게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무너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