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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짝이 내게로 온날 38] 데드라인의 저주

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수필가l승인2018.07.20 16: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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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픽사베이

[PD저널=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수필가] 원고 마감 날짜가 닥쳐오는데 며칠째 컴퓨터 빈 화면만 열어 놓고 소득이 없다. 하도 마감을 늦게 해서, 다음 달에는 조금이라도 빨리 보내자고 작심하고 한 달 내내 연마를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데드라인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급해져서 컴퓨터 모니터에 새 문서를 열어두고 껌벅거리는 커서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글 한 줄은커녕, 글자 한 자도 타이핑하지 못한 채 빈 화면을 닫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결정적으로 '꺼리'가 없었다. 마음은 조급한데 한 줄도 전진하지 못하는 답답하고 안타까운 상황이 며칠째 반복됐다. '데드라인'이 다가오면 어떻게든 내면의 외침에 응답하기 마련인데 갈수록 '그 분'의 응답이 없다.

어릴 때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라는 에디슨의 명언을 이해하지 못했다. 무수히 들어 문장은 외웠으나 영감(靈感)이라는 단어의 뜻을 몰랐던 탓이다. 영감, 창조적인 일의 계기가 되는, 번득이는 착상이나 자극 따위의 의미를 알지 못했으니, 왜 에디슨은 (나이 든) 영감을 들먹이는 것인지, 당최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철이 들면서 영감(inspiration)이야말로 예술가는 물론 사업가나 모든 사람들에게 절말 필요한 덕목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나는 어느 순간 영감을 '그 분'으로 칭하면서 깍듯하게 모셨다. 그 분은 내게도 절대적인 존재였다. 더욱이 나는 천재의 부류에도 끼지 못하는 수준이기에 아무리 노력을 쏟아 부어도 기발하고 탁월한 '영감'이 다가오지 않는 한 본전도 건질 수 없다.

날 찾아오신 내 님 어서 오세요 당신을 기다렸어요
(라이 라이야) 어서 오세요 당신의 꽃이 될래요
어디서 무엇 하다 이제 왔나요 당신을 기다렸어요
(라이 라이야) 어서 오세요 당신의 꽃이 될래요
사랑의 꽃씨를 뿌려 기쁨을 주고 서로 행복 나누며
(니 라이 라이 라이 라이야) 당신은 나의 나무가 되고
(니 라이 라이 라이 라이야) 나는 당신의 꽃이 될래요
(장윤정의 <꽃> 가사 중) 

대부분, '그 분'을 맞이하는 때는 마감 직전이다. 나는 늘 ‘데드라인’의 저주에 걸려 있다. 아무래도 대학시절부터 몸에 밴 습성 때문인 듯하다. 학과 공부와 대학신문사의 학생기자를 병행해야 하는 신분 때문에 학과와 신문사를 종종거리다 보면 리포트도 밀리고, 기사도 밀리기 일쑤였다.

선배 편집국장의 불호령이 따끔하고 무서웠던 시절이므로 "야! 빨리 기사 마감 안 해? 느네 그따위로 할 거야?" 등등의 날선 독촉이 편집실에 울려 퍼지면 빛의 속도로 원고지가 메꿔지곤 했다. 참 희한한 일이었다. 우리는 엄연한 인격체인데 어째서 선배의 다그침이 있어야만 약발이 듣는단 말인가.

그렇게 '욕 얻어먹으면서' 쓴 글이, 차분하게 쓴 글보다 더 잘 써진다는 것을, 아마도 나 말고도 상당수 동료나 윗 선배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며 슬그머니 위로해본다.

대학 졸업 후 8개월 정도 라디오 칼럼을 집필하는 방송 작가의 스크립터를 한 적이 있는데 새벽 방송 원고를 마감하기 위해 날 새는 일이 다반사였다. 인터넷도 없는 시절이었기에 오후 두 시 석간신문을 기다렸다가 밤 9시부터 10시까지 뉴스를 본 후 네 꼭지를 쓰기 위한 아이템을 결정하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집필(?)이 시작되는 강행군이었다.

작가 선생님은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으로 박학다식한 분이셨다. 작가 경력도 풍부하고 대단히 유능한 분이었는데도 20분 분량의 원고 네 꼭지를 쉽게 쓰는 법이 없었다.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데드라인'까지 닥쳐야 술술 풀리는 마법이라니! 선생님이 구술하면, 나는 진행자가 잘 읽을 수 있도록 복사지가 두 장 겹친 원고지에 꾹꾹 눌러썼다. 첫 장은 MC가 보고, 둘째 페이지는 PD가, 나머지는 기술 감독 등 다른 스태프가 보는 방식이었다.

선생님은 악필이었으므로 글씨를 잘 쓰는 조력자가 필요했고, 그 조력자는 각종 정보 수집과 방송에 필요한 자료를 조사하는 역할까지 도맡았다. 글씨를 잘 써야 함은 첫 번째 사항이고, 기획력과 감각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렇게 밤새워 쓰인 원고는 택시기사를 통해 PD나 MC 집으로 배달되거나 약간의 시간 여유가 있으면 제삼자가 지하철을 타고 방송국에 전달하기도 했다.

나도 가끔 원고 전달을 핑계 삼아 방송사 구경을 다닐 기회가 있었는데, 오가며 마주치던 연예인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방송사에서 먹던 점심은 당시 최고의 식단이었다. 다시금 회고하거니와 지금처럼 인터넷이 없던 시절, 최선의 방법이었다. 30여 년 전 방송가의 한 풍경이다. 최성수의 '동행'이란 노래가 엄청 인기였는데 나는 서울살이가 고달파서 외롭고 힘들었다. 그래서 그의 노래가 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아직도 내겐 슬픔이 우두커니 남아 있어요
그날을 생각하자니 어느새 흐려진 안개
빈 밤을 오가는 마음 어디로 가야만 하나
어둠에 갈 곳 모르고 외로워 헤매는 미로
누가 나와 같이 함께 울어줄 사람 있나요
누가 나와 같이 함께 따뜻한 동행이 될까
사랑하고 싶어요 빈 가슴 채울 때까지
사랑하고 싶어요 살아있는 날까지
(최성수 <동행> 가사 중)

'데드라인'의 마법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전주에서 일간지 기자가 된 나는 매일 데드라인을 건너고 있었다. 경제부처를 출입할 때는 5시~6시 사이 1차 마감을 지켰고, 중요한 이슈가 발생할 때는 1면 톱기사를 장식해야 했으므로 편집부 기자의 말 없는 종용 속에 시간과의 싸움을 했다.

반면 문화부에서는 사회면 마감을 제외하곤 대부분 오전 11시 마감이어서 출근해서 아침 회의를 마치자마자 원고지에 기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11시 마감이라고, 데드라인이 헐거운 것은 아니었다. 마감은 기사의 종류나 길이에 상관없이 늘 피 말리는 작업이었다.

방송이라고 해서 마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방송은 촌각을 다투어 청취자의 미세한 반응까지 캐내야 하므로 순간순간이 데드라인이 되곤 했다. 잠깐 음악이 흐르는 사이에도 역사는 바뀔 수 있고, 그 감각을 읽고 해석하고 메시지로 전환하는 작업이 매 순간 긴장되고 새로웠다.

간혹 활자매체로부터 청탁을 받아 주 또는 월 단위 칼럼이나 에세이를 쓰게 되면 데드라인의 강박이 더 심해진다. 한 달이 1주 같고, 1주가 하루 같은 주기로 돌아온다. 마감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또 다른 마감이 새 탈을 쓰고 내 앞에서 턱을 치켜들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데드라인을 미워할 수만은 없다. 데드라인의 긴장감과 경계가 바닥에 있는 나를 끌어올려 목표에 다다를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자력이 부족하다고 자책하는 나에게 데드라인은 일종의 극약처방을 자처하는데, 생각해보면 데드라인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그 분'이 오시지 않음을 불안해하는 것 같다. 밤새워 미친 듯 써대던 열정이나, 뭔가 가슴 속에서 용솟음쳐서 해갈하지 않으면 목이 타서 죽어버릴 것 같은 간절함이 없음을 한탄하는 것이다.

'그 분'은 대개 데드라인과 함께 임하시니, 데드라인이 어디 원고 마감에 국한될 것이랴. 인생의 데드라인이 곳곳에 숨어있는데 그걸 놓치고 산다. '그 분'과 데드라인은 위험한 동거인가? 앞으로도 데드라인을 탓하고 싶진 않다. 그 분이 오시기만 한다면, 데드라인쯤이야, 매 시간 단위로 닥쳐도 거뜬히 넘길 수 있을 텐데. '그 분'만 오신다면 말이다.

내 님은 누구일까 어디 계실까 
무엇을 하는 님일까 만나보고 싶네
신문을 보실까 그림을 그리실까
호반의 벤치로 가 봐야겠네
(라나에로스포 <호반의 벤치> 가사 중)

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수필가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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