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한 소리의 기억
상태바
허무한 소리의 기억
[무소음 세상 ⑬] 무의도로 가는 길에 만난 소리
  • 안병진 경인방송 PD
  • 승인 2018.07.20 14: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PD저널=안병진 경인방송 PD] 용유역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무의도로 가는 길이다. 이번 무의도 ‘소리 섬 여행’은 대중교통만으로 가는 콘셉트로 정했다. 섬 여행 시리즈를 녹음하다 보니, 죄다 그 소리가 그 소리 같아서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공항철도를 타고 가서 자기부상열차를 갈아탄 후 버스를 타고 걸어서 섬에 가는 것이다. 예상대로 자기부상 열차는 전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러다 기계식 안내음만 방송에 써야 할 판이다.

그나저나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는다. 언제 온다는 정보도 없다. 기다리다 지쳐 히치하이킹에 도전했다. 작가와 나 둘 정도는 태워 주겠지. 마침 차가 선다. 연세 지긋한 노인 세 분이 서울에서 무의도로 놀러 가는 길이다. 차에는 찬송가가 크게 틀어져 있다. 소리로만 치면 적어도 권사님 이상 급이다.

요즘 내겐 목소리나 소리의 형태로 그 사람을 파악하려는 버릇이 생겼다. 터무니없지만 나 혼자 재미있어하는 취미이다. 찬송가 소리 때문에 괴로웠지만 덕분에 땡볕에 고생길은 피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히치하이킹도 취재에 넣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배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소무의도로 향한다. 인도교를 건너 해안길을 따라 소무의도를 한 바퀴 걷는다. 섬이 좋은 것은 자연의 소리를 간섭 없이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심에서는 어디를 가나 자동차 소리와 공사 소리가 녹음을 망친다. 무의도도 여기저기 공사가 한창이다. 영종도와 무의도를 잇는 연도교가 완공되어가면서 섬의 면모도 바뀌고 있다.

영종도도 용유도도 원래 섬이었다. 두 섬 사이의 바다를 매립해 공항을 만들었다. 한밑천 챙긴 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리가 놓이면 섬은 더 이상 섬이 아니게 된다. 왕래는 쉬워지지만 다리를 통해 자본과 욕망이 몰린다. 무의도 해안가 어디를 외국 자본이 통째로 사서 개발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 팔미도가 보이는 소무의도 해변. ⓒ안병진 PD

평일이라 그런지 섬을 찾은 관광객들은 대부분 어르신들이다. 관광버스가 한 무리의 노인들을 쏟아낸다. 뽕짝 노래 소리가 들린다. 흥에 겨운 건지, 흥이 안 나서 억지로라도 만드는 건지 뽕짝 메들리는 홀로 꿋꿋하다. 섬에는 대부분 노인들만 남았는데, 섬을 놀러 오는 이도 이제 노인들이다. 섬 노인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섬을 찾는 노인들은 여유가 있다.

이런 저런 소리를 녹음하고 다시 버스를 탄다. 무의도의 자랑, 하나개해수욕장을 가기 위해서이다. 평일이라 그런지 해수욕장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물때를 잘 못 맞춰 바다도 저 멀리 있다. 우리처럼 물정 모르는 한 무리의 외국인들만 시끄럽다. 땡볕에 해변을 거닐다 돌아가기로 했다.

다시 버스정류장.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또 기다린다. 이럴 거면 차라리 취재차를 따로 가져올 걸 그랬나 하던 차에 아침에 우리를 태워 준 노인들을 우연히 다시 만난다. 더 볼게 없다고 돌아가는 길이라 하신다.

“어디가 좋으셨어요? 실미도도 가보셨어요?”

“볼 거 없어. 예전에 다 봐서….”

“우리는 여기 몇 번씩 와 봤어.”

몇 번씩이나 왔다면 좋아서 다시 온 걸 텐데, 노인들의 표정은 그저 무덤덤하다. 권태로운 표정이라고 하기에도 아무 감정 없는 얼굴들. 허무의 얼굴이 있다면 바로 이런 얼굴이리라.

“어디로 가?”

“저희도 이제 돌아가려고 버스 기다리고 있어요.”

“그러면 타. 태워줄게”

아침에 들었던 찬송가가 다시 흘러나온다. 마이크 들고 뭐하는 거냐고 묻는다. 라디오 여행 취재 중이라고 했더니, 요즘 방송사은 괜찮냐고 묻는다. 무슨 말인가 했는데, 현 정권이 방송사를 장악했다는 말씀이었다. 노인들과 설전도 귀찮고, 갑자기 분위기가 어색할까봐 나는 대답을 피했다. 정적이 흐른다.

노인들은 다시 나이가 몇 살이냐, 아이는 있느냐 묻는다. 아이를 안 낳기로 했다고 하면 또 이야기가 길어 질까봐 없다고만 했다.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 애가 없으면 없는 게 낫다고 한다.

“이제는 애 키워봐야 효자, 효녀 없는 세상이야.”

“안 나아도 되면 낳지 말아요. 다 소용없어.”

뜻밖의 대답에 어리둥절하다. 뭐라고 답해야 할까를 망설이는데 다시 침묵이 흐른다. 노인들은 각자 자기 할 말만 한 마디씩 하고는 입을 닫는다. 찬송가가 흐른다. 차는 달리는 게 아니라 천천히 부유한다. 갈 곳 없는 노인의 걸음으로 도로를 흘러간다. 속도기를 보니 20㎞이다. 도로가 아니라 시간을 떠가는 것처럼 노인들의 차는 천천히 움직인다. 뒤에서는 차들이 경적을 울린다. 나는 이러다 사고라도 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든다. 그래봐야 다 소용없다는 말이 자꾸 귀에 맴돈다. 찬송가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 그림자의 소리 ⓒ안병진 PD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건가. 영화의 한 장면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다. 어느 영화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코엔 형제 영화 같다. 비현실의 허무한 시간이 흐른다. 아니 시간은 흘러가지 않는다. 1분이 1시간처럼 느리다.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는 언제 그렇게 물이 빠졌는지 황토색 갯벌이 끝도 없다. 다시 바닷물이 들어오려면 1년은 기다려야 할 것만 같다. 아무도 말이 없다.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찬송가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린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내인 작가에게 묻는다.

“우리 지금 영화 속에 있다 온 거 맞지?” 

“응. 코엔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야 아니면 <그 남자는 거기에 없었다>야?”

‘어떤 영화였는지 알아봐야 다 소용없어.’ 노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물음을 멈출 수 없다. 돌아오는 길에 히치하이킹 소리는 다 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무에 빠진 노인을 위한 소리는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