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기 2 - SBS [뉴스추적 - 상류사회, 그들만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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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 2 - SBS [뉴스추적 - 상류사회, 그들만의 천국]
고소득층은 있어도 상류층은 없다
김영환
  • 승인 1998.04.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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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프로듀서연합회보를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감히 제작기를 쓰게 되었다. 신생 프로인 [뉴스추적]이 같은 시간에 방송되는 [pd수첩]을 시청률 면에서 몇 번 앞섰다고 일부에서 “기자가 pd를 이겼다”는 말도 나오는 모양인데, 참으로 쑥스러운 일이다. 시청률이란 변덕스러운 것이 아닌가? 그리고 시청률만 가지고 프로그램의 우열을 가릴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그러나 바깥에서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시청률이 방송인들의 의식을 얼마나 무겁게 짓누르는지는 아마 기자들보다 pd들이 더 잘 알 것 같다. 10년 넘게 기자생활을 하면서 매일의 기사싸움에 힘겨워하고 언론과 권력과의 관계를 고민해보기도 했지만 시청률을 가지고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은 없다. 그런데 기자와 pd의 영역이 교차하는 시사다큐 프로그램에 와서 비로소 시청률의 위력을 뼈저리게 느꼈다. 아무리 열심히 취재하고 의미 있는 내용을 집어넣어도 시청자들이 외면하면 나는 패배자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획단계에서부터 시청률을 중심에 놓고 일을 추진했다. 그 결과가 졸작인 ‘상류사회, 그들만의 천국’이다. 적어도 시청률이란 관점에서는 성공작이었다.‘상류사회…’를 만든다니까 주위에서는 죄다 “그거 재미있겠다”는 반응들이었다. 어떤 사람은 “상류사회 좀 화끈하게 고발해주세요. imf로 부도다 실직이다 해서 다들 고생하는데 자기들끼리만 잘 살면 답니까”라고 열을 올리기도 했다. 그것이 여과되지 않은 여론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취재기간 내내 위태로움을 느꼈다. 만일 이 프로그램이 가뜩이나 확산되고 있는 위화감과 계층간 갈등에 불을 지른다면? 지금은 평상시가 아니라 전 사회적인 비상상황인데….취재 초기에 아이디어 회의를 하면서 몇 가지 목표를 정했다. “상류층의 소비=과소비라는 단순논리를 벗어난다.” “대한민국 상류사회의 생활과 문화를 일단 있는 그대로 들여다본다.” “상류층 본인들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설득력 있는 비판으로 상류층의 자기반성을 유도한다”는 것 등이었다.그러나 상류사회의 취재는 역시 어려웠다. 자기들만의 높은 벽 속에서 대중매체의 접근을 거부했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한다”고 말해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채 고개를 설레설레, 최근의 분위기가 특히 상류층을 움츠리게 한 것 같았다. 결국 몰래카메라에다 연기자의 나이트클럽 ‘잠입작전’까지 써가며 여기저기 헤짚고 다녔다. 취재의 분위기가 기존의 ‘과소비’ 프로그램의 피하고 싶었던 모습을 점점 닮아갔다. 상류층 자제들이 어떻게 태어나 자라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모 산부인과 특실과 외국인 학교, 대학내의 ‘부르주아’ 서클도 취재했다. 그 과정에서 몇 명의 상류층 자제들을 인터뷰했는데, “집안이 별로면 정이 안 간다” “(신랑감으로) 개천에서 용 난 경우는 싫다” “시부모님과 치려고 대학때 골프를 배웠다”는 그들의 솔직한 말에 울적함을 느끼기도 했다.후반부 취재는 ‘상류층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비판’을 제기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조세형평의 문제, 사회에 대한 책임감의 결여, 병역기피 문제 등을 추적했는데 운 좋게도 특종(?) 하나를 건지기도 했다.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종에 부가가치세를 물리려던 세법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가 보류된 과정을 취재하다가 이들의 악착같은 ‘로비’를 입증하는 문서를 발견한 것이다. “징그러울 정도였다”라는 국회의원 보좌관의 생생한 증언과 함께.짧은 기간이나마 가까이서 들여다 본 상류층의 모습은 부럽다기 보다는 연민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잘 먹고 잘 입는다”는 것 외에 뚜렷한 문화를 구축하지 못한 우리의 상류층. 존경받기는커녕 끊임없이 주위의 눈치를 살펴야하는 상류층. 사회에 대한 기여를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할 지 방법을 모르는 상류층의 모습은 당당하지 못하고 초라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는 고소득층은 있어도 상류층은 없다”는 한 사회학자의 말에 공감을 느꼈다.방송이 나간 뒤 “충격적이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거기까진 괜찮다. 그러나 더 나아가 “삶의 의욕이 떨어졌다” “우리나라에 왜 지존파가 생겼는지 알겠다”는 시청자들의 반응에 접했을 때 씁쓸한 자책감을 느꼈다. 건전하고 존경받는 상류층의 존재가 그 사회전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볼 때, 다음 번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상류층의 위상정립을 모색하는 프로그램도 한번 만들고 싶다.끝으로 그런 졸작을 너그럽게 평가해 내게 지면을 할애해준 프로듀서연합회에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시청률’과 ‘의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해 지금도 고심하고 계신 pd 선후배들께 격려와 위로의 뜻을 전하고자 한다.|contsmar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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