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 아내를 두고 온 800살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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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 아내를 두고 온 800살 은행나무
[무소음 세상⑮] 볼음도 은행나무
  • 안병진 경인방송 PD
  • 승인 2018.08.2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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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안병진 경인방송 PD] 

“내일 볼음도에 갈 수 있어요?”

“갑자기…. 내일은 서울 가야하는데요. 그런데 무슨 일 있어요?”

“은행나무가 생일상을 받는데.”

”……“

많은 일들이 ‘갑자기’ 일어난다. 퇴근 무렵 심심해서 SNS를 기웃거리다가, 내일 볼음도에서 은행나무 생일상을 차리는 행사가 있다는 걸 갑자기 발견했다. 당나무에 제사는 많이 지내도 생일상은 또 무언가. 사운드 엔지니어 ‘유지방’이 시간이 안 되니, 혼자라도 다녀오기로 했다.

볼음도는 강화의 섬이다. 강화도 섬인데, 섬은 또 섬을 품고 있다. 강화 외포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가량 가면 닿는 NLL 안의 작은 섬, 볼음도. 북한 황해도 연안이 불과 8Km 밖이다. 이곳 볼음도 바닷가에는 추정 나이 800살이 넘은 은행나무가 있다. 천연기념물이다. 오늘 칠월칠석을 맞아 이 오랜 나무가 생일상을 받는다. 특별한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원래 이 나무는 황해도 연안에 있었다고 한다. 암수 부부 나무가 같이 살았는데, 어느 여름 큰 홍수가 나는 바람에 수나무가 뿌리가 뽑힌 채 이곳 볼음도 바다로 떠내려 왔다. 이를 볼음도 어민들이 건져 다시 심은 것이다. 그 후 어부들은 정월 초 풍어제를 지낼 때, 연안에 있는 어부들과 날을 맞춰 제를 지내줬다고 한다. 마을의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애틋하고 제를 지내준 사람들의 마음씨는 따뜻하다. 그렇게 오랫동안 이어진 마을의 전통이 전쟁 통에 맥이 끊긴 지 오래 되었다.

그런데 실제 은행나무 암그루가 황해도 연안 호남리 호남중학교에 있다고 한다. 북에서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 나무를 보호하고 있다. 분단의 현실과 맞물려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는 비현실의 낭만이 아니었다. 분단이 현실인 것처럼 이산의 아픔은 모든 자연 생명에게도 마찬가지다. 강화 교동도 무학리 은행나무도 이와 똑같은 사연이 있다. 유독 암수가 한 쌍인 은행나무는 헤어진 이들의 이야기와 많이 닮았다.

▲ 볼음도 은행나무. 북한에 있는 암나무 사진이 무대 뒤 대형 사진으로 출력되어 있다.ⓒ안병진 PD

은행나무 앞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생일 떡이 놓여 있다. 북에 있는 암나무 사진을 대형으로 출력해 수나무 옆에 세웠다. 나무는 말이 없고, 걸을 수도 없으니 이산가족 상봉 신청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월칠석, 남과 북에 헤어져 있는 은행나무의 상봉을 사람들은 민속행사로 대신한다.

나무의 큰 그늘 아래 살풀이도 하고 판소리도 한다. 탈춤도 추고 사물놀이도 한다. 주민들은 신이나 박수를 친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내년에는 남과 북이 함께 이 행사를 진행하고 싶다고 한다.

나는 이리저리서 녹음을 해본다. 사운드 엔지니어가 없으니 녹음에 자신이 없다. 은행나무의 소리. 은행나무가 들었을 소리. 아내를 두고 온 800살 할아버지의 소리. 분단으로 만날 수 없는 애달픈 소리. 이 소리도 아니고 저 소리도 아니다.

공연장과 멀어져 은행나무 뒤편으로 가보았다. 언덕에 앉아 은행나무를 바라본다. 곧고 우람한 은행나무. 그 그늘 아래 사람들은 나무의 안녕과 슬픔을 위안한다. 나무는 말없이 그 소리를 듣고 있다. 여름의 끝에 매미가 울고 참새가 운다. 나는 이 거대한 나무가 뿌리를 들고 일어나 저벅저벅 바다를 건너는 상상을 해본다. 저 바다 건너 살고 있는 아내를 만나러 가는 길. 바다가 갈라지고 온갖 생명이 뒤를 따른다.

행사가 끝났다. 사람들은 밥을 나눠 먹는다. 나는 아래로 내려와 이 행사를 기획한 강제윤 시인에게 시낭송을 다시 부탁했다. 행사 때는 시를 적은 마지막 종이 한 장이 바람에 날아가는 헤프닝이 있었다. 시도 바다 건너 암그루 곁으로 날아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 볼음도 은행나무 곁에 선 강제윤 시인. ⓒ안병진 PD

<볼음도 평화의 나무에 바치는 노래>

- 강제윤

섬은 봄날 서남풍이 불면 비가 왔다 
먼 산이 가깝게 보이면 비가 왔다
석양녘 서쪽 바다 붉게 물들면 비가 왔다 
섬은 머리가 가려우면 비가 왔다
쌍무지개 뜨면 비가 왔다
능구렁이 울면 비가 왔다 
8백 년 전이었다.
어느 여름 고려의 하늘이 뻥 뚫렸다.
온 천하에 천둥이 치고 태풍이 몰아치고 벼락이 떨어졌다. 
볼음도 건너 내륙 땅 황해도 연안군 호남리 바닷가
다정한 은행나무 부부 살고 있었다.
태풍의 시절, 은행나무 부부에게도 시련이 몰아쳤다.
태산도 날려버릴 듯 거대한 바람이 은행나무 부부에게 휘몰아쳤다.
남편 나무는 온몸의 가지란 가지는 다 뻗어 아내 나무를 감쌌다.
당신은 살아야해 나는 갈갈이 찢겨지더라도 당신을 지키겠어.
안간힘으로 아내를 부둥켜안고 있던 남편 나무, 기어이 뿌리가 뽑혀 날아가 버렸다.
광풍이 지나간 폐허의 땅 홀로 남은 아내 나무
초록의 이파리 다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아내 나무
남편을 애타게 그리며 피울음을 토했다.
태풍이 지나간 아침 볼음도 내촌 바닷가
고기잡이 떠났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망부석처럼 굳어가던 어부의 아내
해변으로 밀려오는 은행나무 한그루 보았다.
헤엄쳐 오듯 안간힘으로 가지를 뻗은 은행나무
기슭으로 기어올라 헐떡이는 은행나무 
어부의 아내, 은행나무 애절한 호소를 들었다.
남편도 어느 바닷가로 떠밀려 간 것일까.
정신이 번쩍 든 어부의 아내
저 나무 아직 숨이 붙어 있어 살려야해
고래고래 온 마을 사람들 다 불러 모아 은행나무 다시 심어주었다.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심었다.
남편을 돌보듯 양동이 물을 길어다 물을 주고 또 물을 주던 어부의 아내
하루 가고 이틀 가고 열흘 지나 보름째 되던 아침
은행나무 마침내 새싹을 틔워 올렸다.
남편도 어느 바닷가 언덕으로 떠밀려가 새 생명을 되찾았을까! 
한 달이 가고 일 년이 가고 삼년이 가도 남편은 소식 없는데
은행나무는 더욱 깊이 뿌리 내렸다. 
어부의 아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은행나무 찾아와 안부를 물으며 한 세월이 갔다.
남편은 끝내 소식 없고
어부의 아내는 은행나무라도 아내와 만나게 해야지 수소문에 나섰다.
볼음도 건너 육지 땅 호남리에 아내 은행나무 살아있다는 소식 들었다.
풍어제 지내는 날 어부의 아내 정성껏 음식을 장만해 
은행나무 생일상 차려 주었다.
그 상 남편의 생일상이기도 하였으리.
연안의 아내 은행나무도 한 날 한 시에 생일상을 받았다.
해마다 은행나무 생일상 차려주던 어부의 아내, 머리에 서리가 내리고
어느 가을 은행나무 아래 잠들었다.
은행나무 노란 잎 우수수 떨구어 어부의 아내 덮어주고 감싸 주었다.
은행나무 곁에 어부의 아내를 묻어준 볼음도 사람들
그 후로도 8백년 세월 은행나무 생일상 차려주었으니
그 아름다운 이야기 물길 따라 온 나라 방방곡곡으로 흐르고 흘렀다.
많은 섬사람들 태어났다 떠나고 또 태어나 떠나고
볼음도 사람들 온갖 기쁨과 슬픔 곁에서 지켜 본 은행나무
타는 듯한 여름 한낮에는 그늘을 주고 열대야로 잠 못 드는 밤에는 
섬사람들 불러들여 시원한 잠자리를 주었다. 
아이들은 가지마다 기어올라 자리 잡고 잠을 청했다.
은행나무 그렇게 섬사람들 돌보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해 여름, 큰 전쟁이 터지고
사람들 남북으로 나뉘어 살게 되니 은행나무 더 이상 생일상 받지 못했다
북녘의 아내 은행나무 소식 알지 못했다.
오늘 다시 생일상 차리고
북녘의 할마이 은행나무 무사하단 소식 전해 드리니
볼음도 은행나무 하라바이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겠네.
볼음도 은행나무여! 하라바이여!
무궁하시라 강녕하시라 이제 우리 겨레 평화 지키는 
평화의 나무로 우뚝 서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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