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와이프’ 판타지는 왜 불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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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 남성의 시선으로 그리는 와이프의 속사정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tvN <아는 와이프>가 <고백부부>와 너무 똑같은 설정이 아니냐는 우려는 금세 사라졌다. <고백부부>가 현재가 아닌 청춘 시절로 돌아가 그 때의 풋풋했던 일상들을 복고적 관점에서 그려냈다면, <아는 와이프>는 일종의 ‘인생극장’ 같은 가정의 상황극을 그린다.

일터에서 부대끼고 집에 와서도 거의 분노조절장애처럼 보이는 아내 서우진(한지민)에게 구박받는 차주혁(지성)이 어느 날 과거로 돌아가 이루지 못한 첫사랑을 이룸으로써 달라진 현재를 맞이한다는 이야기다.

그 첫사랑은 재벌가 딸인 이혜원(강한나)이다. 첫사랑이 이뤄지면서 깨어난 아침, 차주혁은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자고 있는 이혜원을 발견한다. 아내가 서우진에서 이혜원으로 바뀐 것이다. 일종의 상상을 통한 ‘다른 여자와 살아보기’라는 설정은 그래서 다소 자극적이다. 그런데 아내만 바뀐 게 아니다. 그의 삶 자체가 바뀌었다.

부자인 아내의 집안 덕에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아가고, 좋은 차를 끌고 출근하며, 회사에서도 장인어른의 뒷배 때문에 대우받는다. 누락된 서류로 한 업체와 50억 상당의 거래가 끊기게 되는 상황에서 차주혁은 장인에게 부탁해 그 문제를 쉽게 해결해버린다. 이러니 그가 회사에서도 대접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남성들의 술자리 농담에서나 나올 법한 판타지는 생각만큼 좋지만은 않다. 거의 데릴사위처럼 살아가는 차주혁은 자신의 부모님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이혜원에게 화가 나지만 뭐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매일 집에서 먹는 스테이크는 엄마가 챙겨주는 갓김치를 더해야 목구멍에 넘길 수 있을만큼 퍽퍽해졌다.

게다가 이혜원은 그의 돈을 노리고 접근하는 정현수(이유진) 같은 사기꾼의 마수에 걸려든다. 그 사이 자기 관리에 철저한 커리어우먼의 모습으로 차주혁의 직장으로 온 서우진에게 차주혁의 마음은 종잡을 수 없이 흔들린다.

▲ tvN <아는 와이프> 현장 포토.

<아는 와이프>는 결국은 본처인 아내가 더 소중한 존재였다는 걸 뒤늦게 알아가는 남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현실에 부대껴 본래 어떤 모습이었는지조차 까마득히 잊고 살아가는 남편들에게 당신이 안다고 생각했던 아내의 진짜 모습이 어떠했는가를 말하고 있다.

서우진이 멜로를 좋아했다고 여겼던 차주혁은 그것이 사실 ‘울고 싶은 일’이 많아 자주 봤을 뿐, 본래 그가 좋아하는 건 코미디였다는 걸 알게 된다. 분노조절 장애를 가진 ‘괴물’이라고까지 여겼던 아내를 보며 차주혁은 그 괴물을 만든 건 바로 자신이라는 뒤늦은 후회를 하게 된다.

이런 주제의식은 큰 문제를 담고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에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건 마치 ‘스와핑’을 떠올리게 하는 ‘바꿔 살아보기’의 불륜적인 요소를 판타지로 정당화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대한 문제는 일방적인 남성적 시선에서 생겨난다.

이 드라마는 전적으로 차주혁의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 판타지를 경험하는 주체가 바로 차주혁이기 때문에, 상황이 바뀌기 전 서우진과 지지고 볶던 부부생활의 기억을 가진 이는 차주혁뿐이다. 그래서 바뀐 상황 속에서 다른 아내와 살아가며 서우진을 다시금 발견하고 과거를 후회하게 되는 차주혁의 이야기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런 설정은 드라마의 이야기를 차주혁이라는 남성적 시선에 묶이게 만드는 한계를 지닌다. 서우진이나 이혜원은 차주혁의 시선에 따라 객체가 된다. 물론 귀엽고 ‘멘탈 갑’인데다 털털하기까지 한 서우진의 매력이 드러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차주혁의 시선에 포획되는 틀 안에서 비친다.

<아는 와이프>는 ‘난 본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어’라고 말하는 아내들의 토로를 담고 있지만, 그것조차 남편들이 알아봐줬으면 하는 수동적 시선에 머물러 있다. 이 드라마의 판타지가 불편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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