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문이 열리면 뱃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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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음 세상16] 인천항 갑문

[PD저널=안병진 경인방송 PD] 

“여기는 안면인식 시스템이에요.”

인천항 갑문 관제탑으로 올라가기 전에 인솔자가 나를 돌아보고 웃는다.

“오~ 영화에서나 봤지 안면인식 시스템은 오늘 처음보네요.”

“여기 보세요. CCTV 안면인식. 하하하”

농담을 건넨 거였다. 그래서 나도 장단을 맞췄다.

“아…. 수동식 안면인식이군요.”

“아니죠. 이게 진짜 인공지능이죠.”

인천항 갑문 시설과 그 기계들이 내는 소리에 대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세하게 설명해주던 직원 분이 농담을 건넸다. 이곳에 들어 온지 한 시간 만이다.

CCTV로 얼굴을 확인하고 문을 열어주는 것을 안면인식 시스템이라 농을 건넨 것이다. 나도 장단을 맞춰 자동이 아니라 수동이라고 했더니, 인공지능이 별건가 이게 바로 인공지능이라고 또 받아친다. 기계에 대한 설명도 척척 잘하더니 농담도 한 수 위다.

취재를 다니다 이런 분들을 만나면 참 반갑다. 자신의 일이 어떤 일이든 스스로 귀한 일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인천항 갑문 역사가 100년. 1974년 다시 지은 제 2도크, 지금의 갑문 설비들도 45년이란 나이를 먹었으니 대부분 노후한 시설들이다.

여기저기 설비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열쇠 꾸러미를 들고 다니다보니 ‘우리도 최첨단 장비가 있어’라고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오래된 것들을 좋아하고, 그것들이 내는 아날로그 방식의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저희는 최첨단 무소음 장비가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다시 농담을 건네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 인천항 갑문 관제탑.ⓒ안병진 PD

높이 18m 관제탑에 오르니 인천항 갑문 일대가 훤히 보인다. 거대한 선박들도 내려 볼 수 있는 곳이다. 거친 바다를 지나온 야수 같은 배들도 인천 내항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갑문에서 해수면이 맞춰지기를 얌전히 기다려야 한다. 갑문이 필요한 이유는 인천 앞 바다의 조수간만 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방을 쌓고 내항을 만들었다.

내항의 해수면 높이는 최소 7m. 내항으로 배가 들어와 정박하기 위해서는 내항과 외항의 해수면 높이 차이를 극복해야 한다. 그 역학을 하는 것이 갑문이다. 내항과 외항 양쪽의 바닷물을 철문으로 물샐틈없이 가로막은 갑문 사이 공간에 배를 묶어두고, 두 쌍의 갑문을 차례로 한쪽씩 열고 닫으며 해수면 높이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다.

문제는 갑문 작업에 이러다할 소리가 없는 것이다. 기계실에서 갑문을 열고 닫기 위해 거대한 모터를 돌리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소리가 없다. 모터 소리는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소리여서 무언가 다른 소리가 필요했다.

“다른 소리는 또 없을까요?”

“글쎄요. 충수할 때 나는 소리?”

“그건 뭐죠?”

“바닷물을 펌프로 끌어올리는 건데, 한번 가보실래요?”

인천항 갑문은 월미도와 소월미도에 위치해 있다. 월미도 전망대가 가까이 보인다. 걸음을 옮기며 새삼 경치에 감탄한다. ‘그래, 이게 바다이고, 항구이지.’ 학창시절 월미도로 놀러가다 보면 보이던 인천항. 길가에 철책과 야적한 컨테이너 때문에 바다를 볼 수 없었던 곳이었다.

버스를 타고 지나던 낡고 지저분한 이 길을 지나야, 그나마 바다를 볼 수 있는 요란스러운 월미도가 있었다. 철책 밖에서 보던 것과 달리 그 안의 세계는 그야말로 진짜 항구와 바다였다. 평소에는 출입이 어렵지만, 어린이날 하루만 갑문 시설을 개방해서 견학도 하고 바다그리기 대회도 했다고 한다.

인천항 갑문은 1918년 일제강점기에 축조됐다. 지금의 인천여상 앞의 섬, 사도와 육지를 매립해 큰 배가 들어올 수 있도록 접안 시설을 갖춘 것이다. 당시 엄청난 규모의 시설이라 인천항 축조는 일제의 위용과 실리를 모두 챙길 수 있는 일거양득의 공사였다. 이 시설을 견학하는 것이 관례가 될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의 인천항은 1974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지금의 월미도와 소월미도를 매립해 아시아 최대 규모의 제2도크를 축조했다. 이때 연안부두도 만들어 여객선과 어선, 화물선 등의 항만 기능이 연안부두와 소래포구 등으로 재편된 것이다.

“자, 엔진 돌립니다. 하나, 둘, 셋.”

엔진이 돌아가더니 어디선가 ‘지이이’하고 밸브가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인천 내항의 물높이를 높일 때 쓰는 펌프 소리이다. 외항의 바닷물을 강제로 끌어올려 내항에 물을 채우는 것이다. 펌프 소리가 요란하다. 밖으로 나와 바닷물이 게이트를 통해 들어오는 소리를 녹음한다.

댐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를 기대했는데,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물을 끌어올리는 작동이라 폭포 같은 장쾌한 소리가 나지는 않다. 바람이 강해서 녹음도 잘 되지 않는다. ‘이거 어쩌지’하고 있는데, 멀리서 묵직한 뱃고동 소리가 들린다.

▲ 인천항 갑문에서 녹음하고 있는 모습. ⓒ안병진 PD

“저기 중국 여객선이 들어오네요. 게이트로 가시죠.”

이틀에 한 번 인천으로 온다는 중국 위동(웨이하이) 여객선이 내항으로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다. 갑문이 열고 닫히는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게 생겼다. 기계실로 향했다. 갑문을 여닫는 시스템이 자동화되어 있어서 버튼만 누르면 모터 엔진이 돌아가고, 모터에 연결된 체인이 감기며 거대한 갑문이 움직인다. 모터 돌아가는 기계음이 굉장하다.

좁은 수로로 여객선이 들어온다. 갑문 주변에는 경고음이 울리고 갑문이 천천히 열린다. 갑문을 움직이는 체인 소리가 크지 않다. 예전에는 이 소리도 컸는데, 장비들이 좋아져서 조용해졌다 한다. 열린 문으로 여객선이 한발 더 들어오고 외항 쪽 갑문은 다시 닫힌다. 좁은 수로에 거대한 배가 이렇게 정교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도선사의 운전 솜씨가 대단해 보인다.

배는 거대한 로프로 사방을 고정한다. 좁은 수로에서 배가 넘어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작업이 끝나면 다시 내항 쪽 갑문이 서서히 열린다. 외항보다 해수면이 높은 내항의 바닷물이 밀려들어와 여객선의 높이가 좀 더 올라간 느낌이다. 이 작업이 30여분 걸린다.

녹음된 소리를 들어보니 바닷물 소리와 기계음 그리고 경고음이 들린다. 인부들의 말소리가 들리고 마이크를 치는 바람 소리가 툭툭. 배는 언제 지나갔는지 아침의 항구 소리가 평온하다. 나는 인천항만공사의 인솔자에게 농담을 건넸다.

“최첨단이라 아무 소리도 안 나네요. 저희는 무소음 기계들이 정말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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