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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선과 악이 공존하는 구승효

복합적인 캐릭터로 보여준 새로운 문법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l승인2018.09.04 12:2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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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TBC <라이프>의 방송 화면 갈무리. ⓒJTBC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사장은 악역으로 등장하기 마련이다. 노동자들의 입장으로 바라보면 그 인물은 한 가장 혹은 나아가 그 가족의 생계를 위협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도 그럴까. 다른 시각으로 보면 그 사장 역시 누군가 고용한 노동자일 뿐일 수 있다. 자신이 원해서 하는 게 아니라 그 위치에서 자신의 생계를 지키기 위해 또 자신의 본업을 수행하기 위해 선택해 하는 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진짜 피도 눈물도 없는 악덕 경영자들을 변명하기 위해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드라마나 영화가 어떤 인간을 너무 단선적으로만 그려왔다는 걸 말하기 위함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JTBC <라이프>는 지금까지 드라마나 영화가 다뤘던 인물에 대한 접근이 새롭다. 여기 등장하는 상국대학병원 구승효 총괄사장(조승우)은 이 병원에 오기 전부터 어느 강성 노조를 깼다는 걸로 악명이 드러난다. 그리고 실제로 병원에서 경영진단을 통해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 그리고 응급센터가 만성적자의 원인이라는 걸 알아채고는 이 과들을 지방병원으로 파견근무 보내려는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그런데 이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인물의 다른 면들이 보인다. 소아과 전문의인 이노을(원진아)이 데리고 간 소아병동에서 인큐베이터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아기들의 모습에 구승효는 마음이 움직인다.

그래서였을까. 지방병원 파견근무를 철회하면서 그는 은근슬쩍 의사들을 압박해 제약회사의 약품과 건강보조식품을 병원에 끼워 넣는다. 철회 결정은 이노을을 통해 알게 된 병원이라는 공간이 일반 사업체와는 다르다는 사실이 작용한 면이 있지만, 그러면서도 새로운 경영적 이익을 그는 끝없이 노린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동물병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구승효 사장은 경영적인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그래서 갑자기 유기견센터 봉사활동에 나선다. 그건 누가 봐도 상국대학병원에 동물병원을 세우기 위한 전초작업처럼 보인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구승효가 그 봉사활동이 끝나고 매몰차게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거기 있는 유기견을 집으로 데려와 돌본다는 사실이다. 경영적 선택으로 한 행동이지만, 그 안에서 세세하게 느끼는 사적인 감정들 또한 그의 진심이다.

이런 캐릭터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드라마에서 봐왔던 모습과는 달라 당혹스럽다. 때론 도대체 그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유기견을 키우는 구승효 사장을 보며 그 따뜻한 면을 발견했다 여기고 조금씩 마음을 여는 이노을은, 어느 날 갑자기 면직 처분을 받는다. 그 결정은 다름 아닌 구승효 사장이 내린 것이다.

보통의 멜로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반전은 그러나 <라이프>에서는 자연스럽다. 공적인 사안과 사적인 사안이 그렇게 별개로 선택될 수 있다는 걸 드라마는 드러낸다. 면직 처분을 받고 술에 취한 이노을을 애써 집까지 바래다주는 구승효 사장의 모습과 차에서 깨어나 도망치듯 아파트 현관으로 달려가는 이노을의 모습에서는 사장과 직원 사이의 관계와는 다른 사적인 감정이 느껴진다.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인간을 단순하게만 보고 있었던 걸까. 수많은 드라마가 실제 그런 악마가 존재할까 싶은 악역들을 내세워 극적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그 힘으로 굴러간다. 또 선한 주인공은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선한 모습만을 보여줌으로써 대결 구도를 만든다. 이것이 흔한 선악 구도를 담는 드라마의 방식이지만 어디 현실의 인간이 그러한가. 특히 요즘처럼 선악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시스템의 문제 속에 들어간 인물이라면.

알고 보면 구승효 사장도 결국은 화정그룹 조남형 회장(정문성)이 고용한 노동자다. 그래서 회장 마음대로 되지 않았을 때 언제든 두드려 맞는 게 당연한 위치에 서 있다. 결국 인간은 처음부터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는 것. 상황과 시스템이 그 인간으로 하여금 어떤 선택을 하게 만든다는 것. 너무 단선적으로만 그려왔던 우리네 많은 드라마들이 한번쯤 생각해봐야할 인물관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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