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2년 라디오 PD 세 명이 "좋아서 시작한" ‘팟캐스트’...어느덧 장수 팟캐스트 대열에

▲ 2012년 시작한 '씨네타운 나인틴'은 팟빵에서 꾸준하게 높은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PD저널=김훈종 SBS PD(SBS 파워FM<최화정의 파워타임>연출)] 대저 아무리 미물일지라도 그 기원을 알아보는 건, 썩 유쾌한 구석이 있는 일이지요. 비글호에 올라탄 기분으로 <씨네타운 나인틴>이란 팟캐스트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최대한 상세하고 솔직하게 기술해 보겠습니다.

2018년 8월 30일 현재, 323화 영화 <목격자>편 업로드. 회당 4시간으로 추려 계산해 봐도...헐 1,292시간. 물론 말콤 글래드웰이 인정하는 진정한 달인이 되려면 멀었군요. 계산해보니 내 나이 여든 다섯 살까지 방송을 해야겠지만, 그건 포기하렵니다.

2012년 <건축학개론>을 1화로 시작한 <씨네타운 나인틴>은 어느덧 현존 최장수 팟캐스트 가운데 하나가 되어버렸네요. 재위 기간은 최장인데 제대로 된 업적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는 초라한 왕의 심정이 이럴까요. 한 때 팟빵 종합 순위 2위를 달리던 성적을 주억거려봅니다. (에헴!) 폐허가 되어버린 왕궁 사이에 주저앉아 거미줄을 바라보는 참담한 기분이군요. 그 사이 <건축학개론>의 주인공 이제훈 배우는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탐정 홍길동> <아이 캔 스피크> <박열> <시그널> 같은 ‘띵작’을 줄줄이 남겼습니다.

2화로 <어벤져스>편을 업로드했는데, 그 이후 우리는 열여섯 차례나 스탠 리 할아버지의 신들린 명연기를 봐야했지요. 아이언맨, 헐크, 캡틴 아메리카, 토르, 스파이더맨도 모자라 앤트맨에 닥터 스트레인지까지 등장했습니다.

당시 SBS 라디오 파워 FM의 책임프로듀서이자 현 라디오센터장인 정태익 선배가 지상파 라디오의 위기를 온 몸으로 떠안고 신수종 사업을 찾아 광야를 헤매던 시절이었습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정태익 책임프로듀서는 <공형진의 씨네타운>을 담당하던 이승훈 PD에게 특명을 내리게 됩니다. “네가 IT에 좀 밝지 않니? 뭔가 새로운 걸 좀 만들어봐.”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승훈은 전자오락실을 참새 방앗간 드나들 듯 하다가 <철권> 게임 방송 해설을 한 게, IT 이력의 전부였습니다. 어쩌다 게임 덕후가 IT 전문가로 거듭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승훈에게는 마지막 한 마디가 가슴에 쿵! 문신처럼 박혀버렸습니다. “한 번 재밌게 만들어 봐. 단, 예산은 없다!” 예산은 없다... 예산은 없다... 예산은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옆에서 굴러다니는 이재익과 김훈종이 보였겠지요. 싼 값에 아니, 공짜로 사용 가능한 자원을 악착 같이 활용할 수밖에요. 현직 시나리오 작가 이재익과 전직 <한밤의 TV연예> 담당 PD 김훈종을 섭외하게 됩니다. 하지만 전문성이라곤 쥐똥만큼도 없는 세 명의 탕아는 되는대로 지껄이며 팟캐스트라는 사막에 내동댕이쳐집니다.

당시 IT 전문가(라고 쓰고 철권 덕후라고 읽는다) 이승훈의 담당 프로그램이 <두시 탈출 컬투쇼>였다면 <코메디 타운 나인틴>이 되었을 테고,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였다면 <뮤직타운 나인틴>이 됐을 테지요. 휴. 하지만, 뭐가 됐어도 큰 차이는 없었을 겁니다. 영화든 음악이든 소설이든 결국 다 사람 사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저희 세 명의 진행자는 323편의 영화를 공유합니다. 아니, 323가지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통해 세상을 읽어오는 7년 세월 동안 곡절도, 사연도 많았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러하듯 견디기 힘들었지요. 유가족 장훈 아버님의 붉게 멍울진 눈시울을 스튜디오에서 지켜보는 일은 정말이지 감내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2년 일하고 12년을 기다리느라 지쳐버린 KTX 김승하 해고 노동자. 그녀의 바스러질 듯 말라비틀어진 마음은 제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공범자들>이란 영화를 들고 온 최승호 감독과 김민식 선배의 넋두리는 언론인이랍시고 우쭐대며 살아온 지난 세월을 참회하게 만들었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숭고한 촛불 혁명의 한 귀퉁이라도 담당했다는 뿌듯함이 가장 크게 기억에 남는군요.

채널A <도시 어부>를 보다가 문득 무릎을 칩니다. 이덕화와 이경규. 소위 말하는 ‘선생님급’ 연기자들입니다. 이래라 저래라 디렉션을 주며 연출하기에도 면구스런 저 출연자들은 도대체 왜 저토록 열심히 촬영에 임하는 걸까요? 낚시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덕질이 돈이 되고, 덕질이 생업이 되는 세상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지상파 라디오 프로듀서로 각자 <최화정의 파워타임> <김창렬의 올드스쿨> <김성준의 시사전망대>를 연출하는 세 명의 PD가 굳이 시간을 쥐어짜가며 매주 영화를 보고, 모여서 입에 단내가 나도록 털어대는 이유를 누군가 물으신다면 같은 답을 드리고 싶습니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