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좀비보다 무서운 '원테이크 생방송'

▲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스틸 컷.

[PD저널=하정민 MBC PD]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의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낄낄대며 보다가 막판에 눈물이 찔금 났다. ‘생방송 원테이크 좀비물’이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콘셉트, 온갖 돌발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생방송을 이어가려 애쓰는 스태프의 발버둥과 안간힘... 그야말로 모두의 피, 땀, 눈물이 영화 내내 처절하게 펼쳐진다. 팔이 잘린 채 쫓아오는 좀비보다 무서운, 그것은 ‘이미 시작해버린 생방송’인 것이다.

PD가 된 지 벌써 10년이다. 언제 이렇게 됐나 아찔하다. 게다가 요즘 담당하는 <굿모닝FM 김제동입니다>는 출근길 프로그램이라 매일 생방송을 한다. 매일 조금씩 아찔한 일들이 펼쳐진다. 어떤 날은 섭외가 안 풀리고, 어떤 날은 전화 연결이 끊어져버린다. 또 어떤 날은... 윤상의 노래 가사에서처럼 ‘어차피 시작해 버린 것을, 창피하게 멈춰 설 순 없으니’ 겨우겨우 문제를 해결해나가며 두 시간을 채우고 한숨 돌리는 날이 이어진다.

처음 방송사에 들어왔을 무렵, 그때 막 10년차가 된 선배가 쓴 ‘나만의 것’이란 칼럼을 <PD저널>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개성을 누르려 드는 게 조직의 속성이니 나만의 것을 오래 지키길 빈다, 그렇지 못하면 웰메이드 PD는 될지언정 대한민국 방송을 휘둘러버릴 물건은 되지 못할 거라는 글이었다. 내 볼품없는 개성을 조직이 딱히 누르려고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지만, 어쩐지 자신감이 떨어져 힘들 때마다 찾아 읽고 또 읽어서 외우다시피 했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참으로 거창한 환영사였다. 이후 나는 방송을 휘두르기는커녕, 웰메이드 PD도 언감생심, 고작 생방송 중 ‘창피하게 멈춰 설 수 없’어서 멈추질 못하는, 좀 창피한 PD가 됐다. 한심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어느덧 10년 차이나는 후배들도 들어왔다는데 그저 그들에게 폐나 끼치지 않았으면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이다. 조금 알 것 같다가도 헛갈리고, 밀어붙이다가도 금방 주저앉아버린다. 최근엔 수많은 유행과 콘텐츠와 플랫폼이 순식간에 뜨고 지는 걸 지켜보고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하느라 나만의 것을 생각해낼 새도 없었다.

어떤 시절에는 방송을 만드는 매뉴얼이 있겠거니 했었다. 공부하면 배워지겠거니 했다. 근사해 보이는 선배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인기 프로그램의 선곡 몇 달 치를 분석해 그래프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그야말로 별 짓 다해봤지만 별다른 걸 알아내진 못했다.

퇴임한 어느 선배는 “이제 갓 들어온 PD가 나보다 연출을 더 잘 할 수도 있는 게 방송이 아닌가 싶어”란 알쏭달쏭한 말을 남기는 바람에 혼란만 더해졌다. 그저 지금은 방송, 특히 실시간으로 청취자와 함께 가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순간순간 판단의 총합이 있을 뿐 완벽한 원테이크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단 걸 조심스레 짐작할 뿐이다.

영화에서는 펑크 난 역할에 적절한 대타를 빨리 찾아내고, 술 취해 뻗어버린 배우를 일으켜 세워 어떻게든 움직이게 만들고, 고장 난 장비를 대신할 기발한 무엇을 찾아내며 우왕좌왕하는 사이 가까스로 생방송이 마무리 된다. 이곳저곳 조금 삐걱대긴 했어도 사고를 대비해 준비해둔 정지 화면이 나가는 불상사는 막은 셈이다.

순간순간 판단의 총합이 어땠는지에 대한 평가는 감독의 손을 떠났다. 땀과 웃음과 눈물이 엉망으로 뒤섞인 복잡한 표정을 들여다보면서, 그래서 나는 눈물이 찔금 났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