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걸그룹은 몇 명일까요” 묻는 공채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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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필독도서 ③] ‘당선, 합격, 계급’

[PD저널=오학준 SBS PD] 몇 달 전 동기와 함께 SBS <취준진담>이라는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생애 첫 연출작이었다. 우리는 취업이라는 좁은 문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취업 준비생과 인사 담당자들 사이의 전투를 최대한 정밀하게 그려내고 싶었다. 그래서 석 달 정도 되는 제작 기간 내내 취업 준비생들과 회사 인사 담당자들을 만나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서로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을 아쉬워했다. 취업 준비생들은 인사 담당자들이 자신들의 절박한 처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반대로 인사 담당자들은 취업 준비생들이 준비가 부족한 경우가 있었다며 씁쓸해했다.

그러나 이 다툼의 와중에서 서로가 동의하는 한 가지 지점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서로가 마주보고 있는 그 공채라는 좁은 문이 나름 괜찮은 인재 선발 방식이라고 말했다. 동의의 언어는 조금씩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이 제도를 통과한 사람들이 능력 있는 사람들이며, 언젠가는 통과해야 할 혹은 통과할 수 있는 과정이라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 나는 그 믿음을 공유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통과한 공채 제도가 정말로 사람들의 실제 업무 수행 능력을 평가하는 데 적절한지 쉽게 답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령 소설가와 소설 제목을 잇는 것, 걸그룹과 보이그룹의 인원수 합을 계산하는 것, 입말로 쓸 일이 사라진 맞춤법을 아는 것은 그 사람의 업무 수행 능력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 지난 6월 10일 방송된 <SBS 스페셜-역지사지 면접프로젝트 ‘취준진담’> 예고 영상 갈무리. ⓒSBS

소설가 장강명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공채로 기자가 되었다가 공모전으로 소설가가 된 장강명은 자신의 공채 시험 경험, 공모전 심사 경험, 그리고 이 제도에 참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터뷰를 한데 엮어 <당선, 합격, 계급>이라는 책을 냈다. 그는 이 책에서 공모전과 공채라는 한국의 독특한 시험 제도의 이면을 파헤친다.

저자가 보기에 공채 제도는 대한민국 사회의 독특한 인재 선발 방식이다. 대한민국은 과거 식민지 지배와 전쟁, 독재의 경험으로 인해 사회적 신뢰가 부족한 상태였다. 기본적으로 인적 자원이 부족했고, 있는 인적자원의 질을 판단할 수 있는 세밀한 분류 기법이 발달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몇 개의 자리들마저 각종 연고주의와 당파성에 따라 배정되곤 했다.

그 상황에서 공채는 일종의 새로운 사회계약으로 자리 잡았다. 능력만 있다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공채 제도라는 공정한 시험을 통과하기만 하면 가난한 집안 출신이든, 차별받았던 지방 출신이든 상관없었다. 이 시험이 실제로 업무에 적합한 인재를 뽑는 데 적절한 수단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외의 다른 요소들로 인생이 좌우되는 것보단 공정하다고 사람들은 믿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제도의 장점은 여기까지였다고 말한다. 공정함에 대한 믿음은 예상치 못한 부산물을 낳았다. 공채가 능력을 인정하는 사회의 유일한 기준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공채 제도를 통과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통과한 제도의 신뢰성을 의심하지 않았고,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실력을 의심했다. 사교육은 타인의 힘이라도 빌어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사람들의 욕망으로 부풀어 올랐고, 공채 제도는 더욱 단단한 벽이 되었다.

제도를 통과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거세질수록, 그 제도를 이루는 시험 단계나 문제들이 기묘하게 뒤틀려간다. 상식은 업무 수행 능력과 무관한 과정이 되어버렸고, 적성검사는 외워서 답하는 암기과목이 되어버렸다. 이 과정을 통과하는 사람은 무난한 사람이라는 것을 검증받은 것에 가깝지만, 기묘하게도 그 과정을 통과한 후에 사람들은 그를 ‘인재’라고 부른다. 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이는 스페셜리스트를 탈락시킨 후 평범한 사람을 인재라고 부르는 뒤틀린 명명법이다.

500명이 넘는 공채-공모전 지망생들을 인터뷰한 후, 저자는 저(低)신뢰 사회에서 탐색 비용을 줄이기 위해 선택해야만 했던 공채제도가, 실제 독특한 인재들을 선발하는 데 실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탈락자와 통과자로 이루어진 양면의 믿음을 기초로 새로운 ‘간판’이 되었다고 결론 내린다. 간판을 얻은 사람들은 안도감과 자만심을 바탕으로 혁신에 게을러지고, 반대로 간판 얻기에 실패한 이들은 취업의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비생산적인 일에 안간힘을 쓴다.

간판 대신 각자가 가진 실제 능력을 잘 활용할 수 있게끔 사회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하는 대신, 간판의 이름만을 바꿔단 사회. 이것이 장강명이 진단한 오늘의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능력 있는 사람들이 자학하고, 능력 있던 사람들이 게을러지는 사회, 이것이 과연 공채 제도가 약속했던 유토피아의 모습이었을까?

장강명 작가는 공채와 공모전이라는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때로는 날카롭게, 때로는 사정없이 이 사회에 만연한 기만적인 믿음의 윤곽을 드러낸다. 이 기만을 걷어내기 위해 내놓은 저자의 대안은 간명하다. 그는 공채가 사라진다 한들 새로운 믿음의 대상이 다시 나타날 것이기에 공채를 없애는 대신 지금보다 더 많은 정보를 공개해 사회적 신뢰를 회복해 나가자고 말한다.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을 테지만, 간판의 본질적인 힘을 허물어나가는 첫 발자국을 뗄 수는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낙관적인 전망에 비해 정보의 공개에 들어가는 비용을 조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들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 수단인지에 대한 논증이 치밀하진 않았다. 또한 로마켓의 사례처럼 한 분야에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해서도 광범위한 사회적 변화가 필요한데 이것은 얼마나 현실적인 가능성이 있을까? 책이 던지는 문제의식 자체가 폄하될 것은 아니겠지만, 약간의 아쉬움은 남는다.

책을 읽어 나가다보면 숨이 턱 막히는 지점들이 있다. 이 책이 휘두르는 칼날에 나를 겨누어보면 글을 읽어나갈 수 없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내가 공채라는 과정을 통과한 것이 어떤 ‘특권’도 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렇다고 최선을 다해 통과한 제도가 사실 그리 신성한 게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밥벌이 인생이 그리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시험은 단지 시작지점일 뿐이고, 너의 능력은 네가 평생 만들 프로그램들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으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기회를 부여하는 기준이 공채라면, 그 자의성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은 누구라도 계속 해 나가야 할 일이지만, 여전히 시작점이 어때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는 대답하기 어렵다. 책이 열어놓은 고민의 지점을 닫는 데에는 아직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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