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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음 세상 18] 마니산 참성단 개천제 소리

[PD저널=안병진 경인방송 PD] 헐떡거리는 ‘유지방’의 숨소리가 귀를 때린다. 시간은 지체되고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경사는 가파르다. 언뜻 발밑으로 보이는 바다와 섬 그리고 누렇게 익은 들판의 아름다움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개천절 행사에 늦지 않게 참성단에 올라야 한다. 마니산을 너무 만만하게 봤다. 물 한통도 챙기지 않아, 목이 탄다.

참성단 근처에 오니 등산객들이 모두 제자리에 서 있다. 계단 아래부터 위로는 한발도 올라갈 수 없다. 분위기로 보니 행사는 이미 시작한 모양이다.

“큰일이네. 어떻게 올라가죠?”

“헉헉.”

뒤를 돌아보니 유지방은 거의 실신 직전이다. 그때 뒤에서 비켜달라는 소리가 들린다. 예복을 갖춘 이가 제사에 쓰일 향로를 들고 조심스럽게 걸어온다. 향로 안에는 숯이 있는지 뜨거운 기운이 느껴진다. 모세의 기적이 이뤄진다. 물 샐 틈 없던 입구가 열린다. 이거다 싶어 그 뒤에 바짝 붙었다. 그렇게 참성단에 겨우 올랐다.

▲ 마니산 참성단 돌담.ⓒ안병진 PD

개천절 단군께 제사를 올리는 개천대제. 엄숙할 줄 알았던 예상과는 달리 취재진과 관람객들이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메우고 있다. 쪼그리고 앉아 녹음 장비를 꾸리는데, 제사는 언제 시작되었는지 주유문을 낭독하고 있다.

“아득한 반만년 전, 하늘 백성으로 태어나 신단수 정기어린 백두산에서 하느님의 성지를 받들어 사직을 바로하시고 백두기운이 용솟음쳐 그 정기 이곳 마니산에 서려있음을 헤아리고 ….”

“아휴, 밀지 마요~” 뒤에서 날카로운 외침이 들린다. 제문은 계속된다.

“여기에 천제단을 쌓으시고 국태민안과 홍인인간 이념 아래 우리 배달민족 억조창생을 한길로 따르게 하신 거룩한 단군 성조의 뜻을 받들어 민족통일의 염원을 이루고자 하나이다. 제단에 타오르는 성화의 불꽃은 하느님께서 이 나라 만백성을 이끄신 광명의 불꽃이오며 배달민족을 사랑하시는….”

“앞으로 나오지 마세요. 가리지 마세요.” 이번엔 앞에서 큰 소리가 난다.

스피커로 확성된 제사 소리와 사방에서 들리는 아우성 소리가 가관이다. 이래서 어떻게 녹음될지 걱정스럽다. 시끄러운 것은 현장감이라도 있는데, 확성기를 사용한 상황에서 동시 녹음하는 것이 제일 곤혹스럽다. 숨이 차올라 벌게진 ‘유지방’의 낯빛이 이번엔 하얗게 질리기 시작한다.

녹음은 ‘유지방’에게 맡겨놓고 나는 눈으로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산을 내려가면 숭조회에서 주관하는 단군대제가 한 번 더 있기에, 녹음은 그때 다시 잘 하면 되리라.

내가 찾는 이, 강화군수이다. 지금 제작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시리즈로 만들기 위해서는 강화군의 지원이 필요하다. 지붕 없는 박물관, 강화는 ‘소리의 천국’이기도 하다. 이런 날, 이런 곳에서 군수께 인사라도 잘 해 놓으면 좋으리라. 나는 예복을 입은 이들 가운데 군수의 얼굴을 찾기 시작했다. 일면식도 없기때문에 인터넷 검색을 해서 그의 얼굴과 현장의 얼굴을 대조해 보았다. 그런데 모두 예복에 관을 쓰고 있으니 사람들이 다 비슷비슷해 보인다.

'아니 내가 무슨 형사도 아니고….’

제사가 끝나면 군청 직원에게 물어 봐야지. 물도 좀 얻어서 타는 목도 축이리라. 다시 제사에 귀를 기울인다. 개천대제는 유교식 제례를 따른다.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한자어가 제사를 지배한다. 다행히 집도하는 이가 한자어 뒤에 한글로 그 의미를 풀어줬다. 나는 단군께 제작 지원이 잘 될 수 있기를 마음으로 기도하며, 군수를 만나면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이런저런 단어들을 떠올려 본다.

▲ 마니산 참성단 개천대제.ⓒ안병진 PD

눈치로 보아하니 강신례부터 합헌례까지 단군께 올리는 제사는 이제 마무리 되어가는 듯하다. 아뿔싸 그런데,

“자, 그럼 99회 전국체전 성화 채화 행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칠선녀는 앞으로 나와서….”

칠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온다. 참성단에 올라 부채춤을 춘다. 칠선녀의 미모에 사람들은 박수를 쏟아낸다. 언제부터 있었던 건지 스포츠복 차림의 성화 봉송 주자가 내 앞에 서 있다. 앞으로 그가 뛰어가야 할 걸 생각하니, 안 그래도 타들어간 나의 생목은 이제 찢어지는 기분이다. 10월이지만 아직 태양이 강렬하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강화군수는 또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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